[베를린에서 온 편지] 자연재해를 줄이려면 성장을 멈춰야 한다

윤장열(성공회대학교)

2026-10-27     목포시민신문

[목포시민신문] 10월 13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자연재해 감소의 날이다. 이날의 의미를 짚는 언론 보도도 찾기 어렵지만,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우리의 관심은 대체로 대응과 복구에 집중된다. 물론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후변화는 폭염과 폭우 등 극단적인 기상현상의 위험을 키우는데, 네팔의 대홍수와 해마다 체감하는 이상기후는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제는 재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뿐 아니라, 재난의 위험을 키우는 원인을 논해야 한다.

왜 자연재해의 위험은 갈수록 커지는가. 그 위험을 만들어내고 피해를 불평등하게 분배하는 구조는 무엇인가. 자연적 위험이 재난으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인간의 경제활동과 사회적 불평등이 얽혀 있다.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투입해 생산과 소비를 끊임없이 늘리는 경제구조가 유지되는 한, 기후 위기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줄이기는 어렵다. 제방을 높이고 조기경보체계를 개선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위험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재난 대응 능력만 키우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보통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을 사용하고 친환경 인증 상품을 구매하는 일은 환경을 위한 실천으로 여긴다. 실제로 오래 사용할 수 있고 환경 부담이 적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친환경 소비가 생산과 소비를 줄이기보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가방이 이미 충분한데도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에코백을 더 많이 생산하고 판매한다면 어떨까. 소비자는 환경을 생각하며 구매하지만, 시장은 그 실천을 새로운 상품과 이윤을 창출하는 기회로 바꾼다. 친환경이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생산과 소비가 반복되는 것이다.

모든 상품을 친환경 상품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대안은 불필요한 상품을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친환경 소비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추가 생산을 정당화한다면, 소비의 형태는 달라져도 과잉생산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된다. 문제는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선택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해야 경제가 성장하고, 성장을 지속해야 경제가 유지된다고 여기는 체제 자체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탈성장을 주목해야 한다. 모든 생산을 중단하거나 빈곤을 감수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의 증가를 발전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관점에서 벗어나,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고 그 결과를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지 묻는 것이다. 생태적 부담은 크지만, 사회적 필요가 낮은 생산은 줄이고,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는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생산의 총량을 무조건 줄이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늘릴 것인지 사회적으로 결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이미 생산된 자원을 더 오래,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제품을 수리하고 재사용하며 공유하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거 문제를 살펴보면,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지만, 주택시장에서 자산을 증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주거의 사회적 필요보다 투자와 자산 가치의 상승이 우선되면, 주택의 생산과 거래가 늘어나더라도 주거 불안이 해소될 수 없다. 새로운 상품과 자산을 계속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사회 전체가 더 잘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결국 시장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사람을 위한 주택, 대중교통, 공공의료, 돌봄, 교육, 그리고 언론은 개인의 구매력에만 맡길 수 없는 사회적 기반이다. 이러한 공공서비스가 충분히 보장되면 사람들은 경쟁과 생존을 위해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재난에 안전한 주거환경, 폭염 속에서도 쉴 수 있는 노동환경, 위기 상황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교통과 의료체계는 재난 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한다. 공공서비스의 확대는 단순한 복지정책을 넘어, 자원 소비를 줄이면서도 삶의 질과 안전을 높이는 사회적 전환이 된다.

물론 생산을 줄이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특정 산업과 지역, 노동자에게 부담이 집중될 수 있다. 따라서 탈성장은 긴축이나 복지 축소와 구별돼야 한다. 과잉생산과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동시에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공공서비스와 돌봄 일자리를 확대하며, 산업 전환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줄여야 할 것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소비가 아니라 생태적 한계를 넘어서는 과잉생산이다. 생산의 규모가 작아지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발전의 포기가 아니라 발전의 기준이 바뀌는 일이다.

세계 자연재해 감소의 날은 재난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했는지만 돌아보는 날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에코백이나 전기자동차를 더 많이 생산해서 시장에 내놓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르는 격이다.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나누어 쓰고, 불필요한 생산을 줄이며, 사회적 필요를 시장의 논리에만 맡기지 않고 공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 반복되는 자연재해는 우리에게 무엇을 더 생산할 것인지뿐 아니라 무엇을 생산하지 않을 것인지, 무엇을 함께 사용할 것인지, 무엇을 사회적으로 보장할 것인지 묻고 있다.

더 많이 생산하는 능력을 강조하고 성장을 발전 척도로 삼는 사회에서는 재난을 줄이기 위해서조차 더 많은 생산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반복된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지.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생태적 위험을 감수하고 있으며, 그 피해는 누구에게 집중되는지. 자연을 소비하고 위험을 사회에 전가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더 적은 자원으로도 모두가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탈성장은 그 전환을 시작하기 위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