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치앙마이 일과 쉼 잇는 세계의 일터가 되다

저렴한 체류비·빠른 인터넷에 자연·문화·공동체 도시 결합 ‘펀스페이스’ 중심으로 디지털노마드 생태계 형성 눈길 장기체류 비자 뒷받침…목포도 ‘지역다운 경험’ 설계해야

2026-10-27     이윤서 기자

[목포시민신문] 일하는 장소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업무와 휴식을 결합한 ‘워케이션’이 체류형 관광과 지역소멸 대응의 새로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풍부한 섬·바다·근대문화유산을 보유한 목포는 여전히 잠시 들렀다 떠나는 관광도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목포시민신문은 창간 기획특집 ‘슬로시티 목포, 일과 쉼 잇는 워케이션 도시로’를 6회에 걸쳐 연재한다. 1회에서는 워케이션이 주목받는 배경과 가능성을 짚고, 2회에서는 업무공간과 숙박, 교통, 야간 콘텐츠, 섬 접근성 등 목포의 현주소를 점검한다. 이어 부산시와 경남 남해군, 제주도와 강원 속초·양양의 운영 사례를 통해 성과와 한계를 살펴본다. 5회에서는 태국 치앙마이의 코워킹 공간 ‘펀 스페이스’를 찾아 디지털 노마드가 머무는 도시의 조건을 확인한다. 마지막 회에서는 근대건축물을 활용한 코워킹 허브와 섬 연계 리트릿, 숙박·교통 통합상품 등 목포만의 실행 전략을 제안한다.

이번 기획은 단순한 사례 소개를 넘어 항구도시 목포의 정체성을 재해석하고, 슬로시티의 여유와 일상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체류도시의 미래를 모색한다.<편집자 주>

<글 게지 순서>

① 왜 지금 목포관광 워케이션가

② 목포형 워케이션 인프라 점검

③ 제주도‧속초시 워케이션

④ 부산‧남해군 워케이션

❺ 태국 치앙마이 펀 스페이스

⑥ 목포형 워케이션 가능한가

태국 북부 치앙마이 올드시티의 위앙 깨우 거리에 들어서자 울창한 나무 아래 검은색 단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외벽에는 ‘PUNSPACE’라는 흰색 글자가 단정하게 적혀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았지만 마당은 작은 숲처럼 고요했다. 나무 사이에는 해먹이 걸려 있고, 야외 테이블에서는 한 외국인이 노트북을 펼친 채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정원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화상회의를 하는 사람, 이어폰을 낀 채 모니터를 바라보는 사람,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한쪽 벽을 채운 세계지도에는 이곳을 다녀간 이용자들의 사진이 빼곡하다. 유럽과 미주, 아시아, 아프리카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치앙마이라는 한 도시에서 연결됐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태국 치앙마이는 세계적인 디지털노마드와 워케이션 목적지로 꼽힌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비교적 저렴한 생활비, 빠른 인터넷만으로는 이 도시의 경쟁력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치앙마이는 일할 공간과 장기간 머물 숙소, 지역문화 체험, 외국인 공동체, 제도적 지원이 맞물리는 생태계를 만들어 왔다. 노트북 한 대를 든 원격근무자가 낯선 도시에서도 불편 없이 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시 전체가 하나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셈이다.

△치앙마이 최초 코워킹 공간, 도시의 새로운 문을 열다

펀스페이스는 치앙마이 최초의 코워킹 스페이스 브랜드다. 방콕에서 정보기술 개발자로 일했던 피크·유암 부부가 원격근무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창업했다. 단순히 책상과 인터넷을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라 스타트업 창업자와 프리랜서,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협업할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했다.

취재진이 찾은 위앙 깨우점은 대화와 협업이 가능한 공간, 소음을 최소화한 집중업무 공간, 야외 정원으로 나뉘어 있었다. 장시간 노트북으로 일하는 이용자를 위해 별도 모니터를 빌려주고, 음료와 커피·간식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갖췄다. 회의나 온라인 콘퍼런스를 위한 회의실, 개인 업무에 적합한 지정좌석 등 근무 형태에 따른 선택지도 제공한다.

퐁사톤 락틴 펀스페이스 매니저는 이용자들이 업무에만 매달리지 않도록 주변 여행과 생활정보, 각종 편의시설도 안내한다고 설명했다. 요가 수업이나 지역 관광 프로그램과의 연계도 이뤄진다. 실내에서 일을 마친 뒤 정원에서 쉬거나, 올드시티 골목과 사원·시장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구조다. 일터와 휴식처, 관광지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생활권 안에 연결돼 있다.

취재 당시 펀스페이스 이용료는 하루 289바트, 일주일 1699바트, 한 달 3899바트였다. 한화로 환산하면 각각 약 1만2000원, 7만2000원, 16만7000원 수준이다. 장기 이용할수록 부담이 낮아져 며칠 머무는 관광객보다 수주에서 수개월 체류하는 원격근무자에게 유리하다. 펀스페이스 공식 홈페이지도 현재 핫데스크와 지정좌석, 개인사무실, 회의실 등 업무 목적에 따른 공간을 안내하고 있다.

치앙마이에는 이 같은 코워킹 스페이스가 20여 곳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공간마다 입지와 성격도 다르다. 도심 접근성을 앞세운 곳이 있는가 하면 카페와 정원, 숙박시설, 운동·명상 프로그램을 결합한 곳도 있다. 원격근무자는 가격과 업무환경, 공동체 분위기, 주변 생활 여건을 비교해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선택한다.

퐁사톤 락틴 펀스페이스 매니저는 “코워킹 공간이 지역경제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의 창업자와 프리랜서가 한 공간에서 일하며 협업 기회를 만들고, 이들의 장기 체류가 숙박과 음식점, 카페, 교통, 관광 소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공간 운영에 필요한 현지 인력 채용 역시 지역 일자리를 만든다. 워케이션이 관광객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다양한 업종에 소비를 확산하는 구조다.

△관광객 아닌 ‘생활인구’…장기체류 문 연 비자 정책

치앙마이의 성장은 민간 코워킹 공간만의 성과가 아니다. 태국 정부는 원격근무자와 전문인력의 장기 체류를 유도하기 위해 비자 제도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제도가 ‘목적지 태국 비자(Destination Thailand Visa·DTV)’다. 디지털노마드와 원격근무자, 프리랜서 등이 신청할 수 있는 복수입국 비자로 유효기간은 5년이다. 태국 외교부의 전자비자 안내에는 워케이션을 DTV의 주요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고소득 전문직과 숙련 인력 등을 겨냥한 장기거주비자(LTR)도 있다. 최대 10년의 비자 체계와 세금·행정상 혜택을 통해 해외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정책이다. 태국투자청은 LTR을 생활과 비즈니스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 태국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제도로 설명한다.

이러한 정책의 핵심은 외국인을 짧게 여행하고 떠나는 관광객이 아니라 도시에서 생활하고 소비하는 장기 체류자로 바라본다는 데 있다. 몇 달 동안 머무는 원격근무자는 숙소를 임차하고 식당과 카페를 이용하며 교통비를 지출한다. 요가와 트레킹, 요리 수업, 축제에도 참여한다. 방문객 한 명의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의 범위는 넓어지고 지역사회와의 접점도 많아진다.

코로나19로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을 때 치앙마이가 주목한 것도 이런 체류형 수요였다. 단체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빠져나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도시 안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관광과 노동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의 변화를 지역경제 회복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업무 공간만으로 부족…지역에서만 가능한 경험 프로그램

코라완 상카콘 치앙마이대학교 관광연구개발센터장은 치앙마이가 워케이션 도시로 성장한 배경으로 저렴한 생활비와 자연환경, 도시 인프라, 외국인 친화적인 문화를 꼽았다.

치앙마이는 산과 숲에 둘러싸인 관광도시이면서도 공항과 기차역, 백화점, 의료·생활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송크란과 로이크라통처럼 세계적으로 알려진 축제도 열린다. 외국인 방문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직원과 외국인 친화적인 서비스가 축적된 점도 강점이다.

코라완 센터장은 “치앙마이를 찾은 외국인들은 아파트나 콘도를 빌리고, 일을 마치면 관광을 하거나 식당을 이용한다”며 “장기 체류가 부동산과 음식점, 관광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침체했던 지역 관광산업도 워케이션과 디지털노마드 수요가 늘면서 충격을 일부 완화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책상과 의자, 무선인터넷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어느 도시에서나 복제할 수 있는 시설보다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업무 이외에 관광과 힐링 프로그램을 함께 연계해야 한다”며 “치앙마이는 요가와 트레킹 등 지역의 자연·생활문화와 워케이션을 결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통 문제도 강조했다. 디지털노마드는 개인 차량이 없는 경우가 많아 코워킹 공간과 숙소, 관광지를 편리하게 오갈 수단이 필요하다. 치앙마이는 대중교통 체계가 완벽하지 않지만 비교적 저렴한 차량호출 서비스와 오토바이 임차 등 다양한 이동수단이 이를 보완하고 있다.

△목포에 던지는 질문

치앙마이 사례가 목포의 관정정책에 몇가지를 시사점을 준다. 워케이션은 건물 하나를 조성하는 사업이 아니라 도시에서 일하고 머물고 관계 맺는 전 과정을 설계하는 일이란 점이다.

목포 역시 KTX와 항만을 갖추고 있으며 근대역사문화공간, 유달산, 고하도, 해상케이블카, 다도해, 남도음식 등 체류형 콘텐츠로 발전시킬 자원이 풍부하다. 원도심의 빈 건물이나 유휴공간을 업무·숙박 거점으로 바꾸고, 섬과 바다·음식·예술·야간관광을 연결한다면 치앙마이와는 다른 ‘항구도시형 워케이션’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시설을 먼저 만들고 이용자를 기다리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원격근무자가 필요로 하는 안정적인 통신망과 조용한 업무 공간, 화상회의 시설, 장기 숙박, 세탁·식사·의료 정보, 짐 보관, 편리한 이동수단을 촘촘히 갖춰야 한다. 혼자 온 이용자가 지역 주민과 창작자, 청년 창업가를 만날 수 있는 정기적인 공동체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펀스페이스 벽을 채운 세계지도와 수많은 얼굴은 워케이션 도시의 경쟁력이 결국 ‘사람의 연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치앙마이는 방문객에게 책상만 내준 것이 아니라 일할 환경과 머물 이유, 다시 찾을 관계를 함께 제공했다.

쉼과 일터를 잇고자 하는 슬로시티 목포가 배워야 할 것도 바로 이 지점처럼 보인다. 속도가 느린 도시라는 이미지를 넘어, 바다를 바라보며 집중해서 일하고 골목과 섬을 걸으며 쉬고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생활방식을 제안해야 한다. “목포다운 시간과 경험을 하나의 상품으로 완성할 때 관광객은 하루 머무는 손님에서 도시의 일상을 함께하는 생활인구로 바뀔 수 있다”고 관광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치앙마이=이윤서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