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 '남진 마케팅' 강화…기념관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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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 '남진 마케팅' 강화…기념관 조성
  • 최지우
  • 승인 2016.12.2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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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5천만원 투자 관광객 유치 통한 원도심 활성화 기대

목포시가 남진 야시장 개장에 이어 남진 생가에 기념관 조성 등 목포 출신 가수 남진을 테마로 한 '남진 마케팅'을 이어가 주목을 받고 있다.

목포시는 남진을 테마로 한 남진 마케팅을 착안, 지난해 12월 삼학동 자유시장안에 남진야시장을 개장했다.

당시 남진은 박홍률 목포시장으로부터 남진시장 취지를 듣고 "내이름을 조건없이 써도 좋다"며 적극 성원했다.

매주 금·토요일 오후 6시에 개장하는 남진야시장은 지금까지 17만여명이 찾았다.

요즘은 하루 평균 1천700여명이 찾고 있는데 3분의 1은 외지인이다.

남진야시장이 성공했다고 판단한 시는 여세를 몰아 최근에는 호남로 남진 생가에 남진 기념관을 조성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생가는 1층(12㎡), 2층짜리(190㎡) 목조 기와 2개동으로 현재는 남진의 친척이 살고 있다.

시는 남진 동의를 받아 1억5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일단은 생가를 임시 기증받아 활용할 방침이다.

양측이 원만히 합의된다면 아예 생가를 사들이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기념관에는 남진의 일대기를 보고 들을수 있는 키오스크 설비, 카페. 휴식공간, 파고라, 포토존 등을 갖출 예정이다.

특히 생가에 남진의 연예계 관련 소장품도 다수 보관돼 있어 본인이 동의하면 이들 소장품 전시관도 마련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14일 "남진야시장 사례로 미뤄 남진 기념관도 목포의 명소가 될 것으로 본다"며 "내년에는 남진기념관을 개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남진은 1945년 전남 목포에서 지역신문 발행인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3남4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잘생긴 외모를 갖추고 유복한 집안 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유년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

그 꿈을 쫓아 1964년 목포고를 졸업한 뒤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연예인'을 반대해 한양대 영연과도 몰래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대학생활 중인 1965년 가수로 대뷔, 몇곡의 노래를 불렀지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967년 작곡가 박춘석이 지은 '가슴 아프게'가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남진'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다.

특히 그해 제작된 동명의 영화 '가슴 아프게'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등 배우로서도 탄탄대로에 들어선다.

1968년 해병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1971년 전역과 함께 가요계로 돌아왔다.

당시 영남 출신 나훈아와 함께 70년대 우리나라 가요계의 양대 산맥을 이룬 '국민가수'로 자리매김 했다는 평가다.

그는 지금도 노익장을 자랑하면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최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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