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53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목포한국병원 고광일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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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53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목포한국병원 고광일 대표원장
  • 최지우
  • 승인 2017.04.1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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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부가 사회적 약자의 공감과 연대 마중물 되길… ”
 

[목포시민신문=최지우기자]"전 세계적으로 빈곤, 질병, 자연재해, 경제적 위기 등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 1억5천만 명이 넘고 이들은 차별과 편견으로 고통 받으며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아 관심의 손길이 시급하다. 전 세계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고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길 바라며, 나의 기부가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이루어 낼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목포한국병원 고광일 원장이 전남 53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 노블리스오블리주 실천하며 지역사회 미담이 되고 있다. 지난 4일 고광일 한국병원 대표원장은 5년 동안 1억원의 성금을 기부하기로 약정하고 2천만원을 기탁하며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날 가입식에는 허정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노동일 전남 아너소사이어티 대표, 고삼수 전남 아너소사이어티 23호 회원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이번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은 그동안 기부와 봉사를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다. 고광일 원장이 이 날 아너소사이어티로 가입하며 기부한 2천만원의 성금은 부모를 잃고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아동들의 권익 보호와 복지를 위해 전액 지원된다.

고광일 원장은 평소 목포상동복지관을 비롯해 공생원, 목포아동원 등 소외된 지역을 찾아 꾸준한 봉사와 기부를 해오고 있는 지역 리더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아너소사이어티 가입도 그동안 해오던 기부와 봉사를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다.

 

고원장은 “그동안 꾸준히 관계를 맺어오던 목포공생원에서 고아의날 기념을 하면서 도움을 부탁했었다. 이왕이면 꾸준히 돕고싶은 마음에 결심을 하게 되었고, 전남아너소사이어티 대표가 학교 동문이다. 좋은 뜻을 이야기 하다 하게 된 것이다”고 가입 동기를 밝혔다.

고광일 원장이 대표원장으로 있는 목포 한국병원은 지난 88년 전남대학교 동기 4명이서 목포에 개업을 하며 첫 진료를 시작했다. 당시 목포에는 교통사고 환자나 외상, 자상 등 복합적인 치료를 할 수 있던 시스템이 많이 부족했었다. 24시간 응급환자 진료를 병행하면서 교통사고 하면 한국병원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소외 대박병원으로 꾸준히 성장을 하게 된다.

한국병원은 계속적인 재투자와 선진화된 의료기술 도입 우수한 의료진 배치로 명실상부한 전남을 대표하는 종합병원으로 우뚝 서며 지역의 대표 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사태에는 한국병원이 거점 병원으로 세월호 지원을 하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처음 개업 했을 때는 환자들이 밀려서 의사들이 잠을 못자고 몸을 혹사시키며 돌아가면서 환자를 진료했다. 가족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고 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지만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내가 가진 기술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일만 했다.” 고원장은 오직 병원과 환자 생각한 하며 지나온 젊은 시절이 가끔은 후회도 된단다.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시간이 되지 않아 사회운동 하던 이들과 친분을 쌓으며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 아너소사이어티 가입도 망설임 없이 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젠 사회도 돌아보고 지역 일에도 참여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앞만 보고 살던 젊은 시절엔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의 내 모습이나 한국병원은 혼자서 이룬게 아니다. 개인을 중심으로 조직들이 전체적인 힘으로 만들어가는 결과들이 폭발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개인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목포라는 사회를 뿌리로 한 한국병원 전체 직원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고 했다.

고광일 원장은 전남 전 지역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난 곳은 여수이지만 아버지의 교직생활 로 전남 일대를 옮겨 다녔다. 여수, 순천, 광주 등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의사를 꿈꾸게 되었고, 자신의 희망대로 의사가 되었다.

자신이 꿈꾸고 원했던 모습에 도달했느냐는 질문에 “여직 헛된 꿈을 꾸면서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만족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역에 자리 잡고 봉사하면서 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다. 

지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이제는 고향이 된 목포를 지키며 지역의료선도를 위해 애써온 고광일 원장의 지역발전을 위한 제언도 들었다.

“지역이 잘 살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발전할 수가 있고, 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사람이 돌아오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는 방법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이 도시에서 살면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살기 좋은 도시는 한 사람 한사람의 노력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고 했다.

지역을 위해 지역과 상생하며 지역민의 의료복지를 위해 애쓰는 고광일 원장이 지역의 큰 스승으로 큰 어른으로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천하며 사는 아름다운 모습에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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