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서 옹 “항아리 머리에 이고 다녀”
[목포시민신문=김영준기자] “옛날에 물동우 이고 장사한 옥단이… 나 살아생전에 여러 번 봤지요. 거기도 잘못된 거예요. 옥단이 그분이 꼭 옛날에는 저런 동우(옹기 항아리를 가리킴)에다 물을 받곤 했거든. 꼭 한동우를 머리에 이고 다녀요.” 올해 97세인 기대서(奇大舒) 옹의 주장이다.
‘물지게 진 옥단이’, 목포의 근대역사문화 공간에서 목포의 명물로 자리잡은 캐릭터이다.
하지만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던 옥단이가 ‘물지게 진 옥단이’ 골목길 캐릭터로 만들어지면서 물지게를 진 모양으로 등장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기대서(奇大舒) 옹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물지게 진 옥단이가 아니라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던 옥단이가 맞다”고 주장했다.
기 선생은 “‘물지게 진 옥단이’는 차범석의 희곡 ‘옥단어’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차범석 선생도 어린 시절 자기 집에 다니던 옥단어를 본 적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희곡을 쓸 때는 ‘물동이’를 ‘물지게’로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연극의 현실적인 상황을 배려한 것이라 이해했다. 이러한 연유로 옥단이의 이미지는 ‘물지게’로 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기대서 옹은 전남 장성 출신으로 1924년생 갑자생이니 올해로 97세다. 장성에서 서당과 보통학교를 다닌 후 1939년 16살에 목포에 왔다. 그는 이때 ‘옥단이’를 여러 번 보았다고 한다.
옥단이는 일제 강점기 목포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다. 유달산 자락 달동네 비탈길을 마다치 않고 골목 안까지 물을 길어다주고, 허드렛일로 인정을 베풀며 곳곳을 누볐다. 가진 것이 없고 바보스럽지만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순박한 처녀였다. 이런 옥단이를 유달산·삼학도·유달해수욕장 등과 더불어 목포의 4대 명물로 꼽기도 한다.
목포 출신 극작가 고 차범석(1924∼2006)은 옥단이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말년인 2003년 희곡 <옥단어>를 쓰기도 했다. ‘옥단어’는 말끝을 길게 늘여 빼며 사람 이름 ‘옥단’을 장난스럽고 친근하게 부르는 토박이 말투다. 차범석은 “옥단이는 만인의 벗이었다. 천대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며 남을 위해 베풀다가 생애를 마친 불행한 여인 옥단은 우리 민족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옥단이 스토리는 이웃의 얘기이지만, 사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강하다.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도 스타나 위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현재, 목포시는 문화재청 공모사업인 생생문화재 프로그램 ‘목포명물 옥단이! 잔칫집으로 마실가다’를 지난달 30일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에서 개최했다. 이 공연은 9월과 10월에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