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 학살자' 전두환 사망, 사죄·참회도 없이 죽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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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 학살자' 전두환 사망, 사죄·참회도 없이 죽다니…
  • 류용철
  • 승인 2021.11.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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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대통령서 `내란·반란죄' 무기징역, 전직 대통령 예우 박탈
발포명령자·군헬기사격·암매장 등 미완의 5·18 진실 두고 눈감아
헬기사격에 대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

[목포시민신문] 19805월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90)씨의 사망 소식에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분노와 허탈감에 빠졌다. 5.18 광주 시민 학살에 대한 진실규명도, 사과도, 용서도 없이 떠나 학살자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심판만 남았끼 때문이다.

여기에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진실의 문이 열릴 수도 있는 헬기 총기 발사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것에 대한 광주 재판을 앞두고 전 씨가 사망함에 따라 발포명령자 등 5·18 미완의 진실규명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사라졌다.

전두환씨와 5월 광주와의 질긴 악연은 4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살아 숨 쉬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197910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측근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직후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집권을 위해 광주, 5·18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역사적 악연의 시작이다.

전두환 신군부는 19805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정치인을 모두 체포하자, 다음날인 18일부터 광주에서 전남대 학생들을 시작으로 저항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전두환 물러가라, 비상계엄해제하라, 김대중 석방하라"고 외치는 광주시민들에게 전두환 세력은 공수부대 등을 투입해 총칼로 유혈진압을 한다.

10일간의 진압 과정에서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가 200여명, 부상자 등 피해자만 수천여명에 달했다. 당시 광주는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불순분자들의 소요사태로 왜곡돼 알려졌다.

전두환 세력은 이후 김대중이 폭동을 조종했다고 내란 혐의를 씌어 사형까지 선고받게 했고 광주시민들은 폭도로 내몰렸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광주, 5·18은 죽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진앙지로 부활한다.

80년대 전두환, 군부세력에 맞선 학생운동 세력은 광주를 되새기며 `반독재 투쟁'을 전개하고 결국 19896·10항쟁, 6·29선언을 이끌어 낸다.

5월 광주는 민주화운동의 논리적 근거이자, 나침반이된 것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공기처럼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민주화와 자유화를 이끄는데 가장 큰 자양분은 광주, 5·18이었다.

` 5·18 '로 집권한 전두환은 권좌에서 내려온 뒤 19885·광주청문회를 시작으로 5·18유혈진압의 주범으로 단죄의 대상이 된다. 광주청문회에서 전두환씨는 광주에서 군의 발포가 `자위권(自衛權) 발동' 이라는 답변으로 당시 민주당 초선 노무현의원으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기로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제정으로 5·18희생자에게 보상 및 희생자 묘역 성역화가 이뤄졌고, 1997'5·18민주화운동'은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반면, 전두환은 특별법으로 19961월 내란 및 반란죄 등으로 수감돼 1심 사형에서 2심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97년 특별사면으로 감옥에서 풀려 나온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 예우는 박탈된다.

당시 특별사면은 전두환씨가 광주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나 반성이 없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후 20172000여 장에 달하는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자신을 ‘5·18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주장해 광주시민들을 분노케했다.

전씨는 최근까지 회고록을 통해 1980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헬기사격을 직접 목격·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오는 29일 항소심 결심 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전씨의 사망으로 재판은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5·18 발포명령자, 헬기 기총 사격, 암매장, 행불자 등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는 5·18의 진실을 그의 입을 통해 듣기를 원했던 광주시민들은 허탈감과 함께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점에 선 전두환씨와 광주5·18은 이제 역사적 심판만 남았다. 다시는 국민을 총칼로 살상하는 무도한 정권이 들어서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하고 역사적 교훈으로 되새겨야 한다는 목소리다.

5·18 민주유공자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5·18기념재단은 이날 "전두환은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해 군사 반란을 일으켜 집권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뒤 1980년부터 1988년 초까지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다. 계속되는 거짓말과 왜곡으로 국민과 대한민국 사법부를 기망한 전두환은 반성과 사죄는 커녕, 자신의 회고록으로 5·18 영령들을 모독하고 폄훼하면서 역겨운 삶을 살았다"고 평했다.

이어 "그동안 자신이 5·18과 무관하다며 구차한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한 학살자 전두환은 지연된 재판으로 결국 생전에 역사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면서 "학살 처벌 책임자로서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상 규명은 진행 중이고 특히 발포 책임자를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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