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 읽기-수필 조문자]목포항 ②
상태바
[목포문학상 읽기-수필 조문자]목포항 ②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5.21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창가 잇대어진 골목 집
조문자 작가

[목포시민신문] 항동시장이 붐비는 이유는 꼭 음식 맛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 사이 오가는 인심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찰진 인심을 찾아 외로운 사람들이 몰려드는지도 모른다. 그 식당에 가면 식사 후 어김없이 다디단 인스턴트커피 한잔을 다정하게 건네주는 넉살 가득한 곱슬머리 영감이 있다. 벽에 착 달라붙은 세 개짜리 전등 아래서 목포항에 관한 구닥다리 이야기를 틈만 나면 들려준다. 시시콜콜한 내 이야기도 들어줄 것만 같다. 만나기만 하면 손주 자랑하는 그 친구는 흉보는 척 자식과 남편 이야기를 꺼내 장편으로 끌고 가다가 끝내는 자랑으로 마치는 속셈을 내가 모를 리 없다. 자랑할 것 없는 내 기를 죽여놓는 그 친구를 오늘은 맘먹고 곱슬머리 영감에게 일러바치고 싶은 심정이다.

가게 문이 열릴 때마다 맑고 자그마한 소리로 딸랑딸랑 종이 울린다. 살아 있는 것들은 위풍당당하다. 살려고 꿈틀거리는 생명은 눈이 부시다. 바닷물이 담긴 고무대야에서 낙지와 주꾸미들이 여덟 개의 다리를 굳세게 흐느적거린다. 해풍에 말린 쪼글쪼글하고 꺼들꺼들한 건어물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꾸덕꾸덕 말린 민어, 농어 장대, 서대, 우럭은 소쿠리에 가래떡처럼 누워있다. 목포항에서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이쪽으로 가도 저쪽으로 가도 풍광이 죄 비슷하다. 길을 잃어봐야 비싸고 맛있는 아귀, 갈치, 병어는 물론이려니와 가마솥 뚜껑만 한 홍어, 넙치, 준치, 조기가 있는 가게 어디쯤이다.

목포항 건너편 골목으로 잇대어진 집에서 살았다. 간이 닿을 만큼 야들야들한 비밀 사랑 나눌 술집이 내 집 뒷담과 옆집 앞뜰과 옹기종기 경계를 맞대어 있었다. 보자기만 한 창에 주홍빛 알전등이 켜지면 산도둑같이 생긴 남자가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췄다. 아릿한 사과 향내를 풍기는 언니와 나눠 마신 술잔 끝엔 독이 들어 있었던가. 염천에 늘어지는 엿가락처럼 목청을 길게 뽑다 입씨름이 벌어진다. 맞고함으로 번져 시월 상달로 접어든 밤공기를 흔들다 급기야 골목으로 나와 서로 패대기치며 엎어지곤 했다. 바람 따라 뒤집혔다가 그 바람 따라 가라앉곤 하는 바다를 닮은 포주 아줌마는 눈자위를 삼엄하게 치뜨고 구경꾼들에게 냉큼 물러나라고 손사래 쳤다. 삶을 영위해가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늘 그렇게 있었다. 인간의 깨끗한 면, 부끄러운 면, 지저분한 면을 책이 아니라 뒷골목에서 배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