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양승희 칼럼니스트] 미용사를 꿈꾸는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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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양승희 칼럼니스트] 미용사를 꿈꾸는 제자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10.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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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선생님, 영국의 비달사순에서 미용 공부하고 왔어요!! 서울로 갑니다.”

제자 C의 짧은 전화였다. 밝고 힘이 들어 있다. C2학년 때 내 반 학생이었다. C는 공부하기를 싫어했다. 아니,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선천적인 병을 고1이 끝날 때쯤에 알게 되었다. 복용한 약에 취해서 수업 시간에 졸고 앉아 있기 일쑤였다.

선생님들께 C의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C를 교실 뒤쪽으로 앉혔다. A의 옆자리였다. A는 학교 수업에 관심도 있지만, 문학을 좋아해서 틈틈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 A에게 C를 챙기라고 했다.

C는 결국 2학기에 가출했다. 짜장면 집에서 일하고, 고시원에서 칼잠으로 잤다. 그래서 C는 고 3 때부터 미용 전문인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늦은 나이에 대학원 공부를 하시는데요, 입시생인 나보다도 더 열심히 해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2월이었다. C가 서울에 올라가 있다며 전화를 했다.

선생님, 미용실 오늘 휴무에요!

선생님, 한 달 봉급이 25만원이어요. 같이 일하는 네 명이 각각 4만원을 내서 주인의 며느리에게 줘요. 주인의 며느리가 일주일의 쌀을 사서 주면, 우리들은 밥을 지어서 함께 먹어요.

처음에는요. 김치 한 가지에 밥을 먹으면서, 엄마 생각하고 울었어요. 그럭저럭 지내다가 주인 할머니의 흰머리를 뽑을 때가 있어요. 그런 날은 엄마와 아빠에게 한 번도 흰머리를 뽑아드리지 못해서, 마음에 걸려 죽겠어요! 게다가 쉬는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고, 지독히 우리를 부려먹기 때문에 미용사를 포기하고 싶어요.”

C의 목소리가 점점 우울해진다.

선생님, 이미 아빠가 서울을 다녀가셨어요. 실은 남대문 시장에서 한 달에 90만원 받고, 물건 파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빠가 올라오신다는 말을 듣고 부리나케 이 미용실로 옮겼던 거예요. 선생님도 아시지만, 2학년 때부터 부모님을 설득했던 것이었잖아요! 부모님께 대학을 가지 않고, 반드시 미용을 배워 성공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것이었잖아요.

그런데 이 미용실에 있으면 성공적인 미용사가 절대로 될 수 없잖아요. 그러니 당연하게 다른 미용실로 옮겨 갈 생각이에요.”

나는 미용이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직업도 아니다. 미용은 손끝에 아름다움이 살아나는 예술이다. 이런 업종을 여전히 무시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C의 부모님은 딸의 꿈을 받아들여 준 것이다.

세상을 쉽게 사는 법을 어른들이 가르쳐 줘서도 안 되겠지만, 부디 어려운 길을 애써 가려는 아이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따뜻하게 배려하고 도와주고 살펴주는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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