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국악, 박제된 음악에서 대중 앞에 서다
상태바
[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국악, 박제된 음악에서 대중 앞에 서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12.10 0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포시민신문] 장충동의 국립국악원은 나의 아비투스를 은근히 확인시켜주는 곳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학창시절, 가끔 남산을 더듬은 후 신당동 떡볶이집에서 저렴하게 배를 채우고 장충동 쪽으로 한참을 걸어왔다. 오는 길목에서 국립국악원을 만나게 된다. 훗날, 매주 토요일 열리는 판소리 완창무대의 객석 한자리를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차지하고 있으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최근 우연히 텔레비전의 국악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경쟁적으로 기획한 건지 다른 채널에서도 국악 경연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었다. 공통적으로 전통국악이 아닌 국악 크로스오버, 즉 기존의 판을 엎는 음악 경연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왠지 낯선 조합이라고 느끼면서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점점 묘한 분위기에 끌려 들어가게 되었다. 분명 국악인데 또 그렇지 않은 이렇게 애매모호함이 또 있단 말인가? 분명함과 애매모호함이 완벽하게 공존하는 특이한 분위기는 새로운 음악이 세상 밖으로 나왔음을 알리는 듯해 보였다. 국악은 가요와는 창법이 다른 장르이지만 접목과 저변확대 또한 생존을 위해 시도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정통 국악인들은 이렇게 고유성이 뭉개지는 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국악을 포함한 전통문화는 물론이고 문화, 예술, 심지어 관광의 시각에서도 진정성 또는 고유성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고유성을 훼손하느냐 여부는 전통을 고수하려는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으로 하여금 50년 동안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게 한다. 고통과 갈등의 시간이다. 장엄한 기다림이다. 그 국악 경연을 보면서 느닷없이 고도를 떠올렸다. 고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스타탄생을 기다리며 가슴 벅차게 시청하는 국악 애호가들도 있었을 것이다. 심사위원석에는 고향출신 신영희 선생님, 그리고 송가인도 있었다. 미루어 보건데 국악인들 모두가 이런 유형의 시도를 진정성과 거리가 멀다 하여 반대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 짐작하였다.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한켠에서는 고귀한 식견을 갖춘 학자들이나 원칙주의 국악인들이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을 준엄하게 나무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모든 문화 특히 대중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새로운 문화가 될 수도 있다. 고급문화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문화 말이다.

민속악의 바다 진도에 풍덩 빠져 살면서 문화와 관광의 시각에서 국악을 포함한 전통문화를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풍류대장등 국악 크로스오버 경연은 범상치가 않았다. 무속과 민속음악이 발달한 진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탓에 지금도 국악에 대한 편식이 심한 편이다. 무속음악에 몰입하면 내 정체성마저 의심케 된다. 풍물과 민속음악은 가슴이 뛰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민속악은 한때 국악계 내부에서도 전통음악으로 인정받지 못한 천덕꾸러기였다. 이로 인해 국악원의 레퍼터리 구성이 정악 일색인 시기가 있었다.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한 박제된 음악은 국악 전공자들만의 발표회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국악만큼 한국적인 것도 없는데 국악만큼 한국인으로부터 외면받아온 것이 또 있을까? 주류 국악인들이 외면하던 민속악이 80년대에 탈춤과 풍물을 중심으로 저항음악으로 자리매김한 적이 있었다.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우리 국악이 소비되던 시절이다. 나비의 가벼운 날개짓은 지구 대척점 우루과이에서 폭풍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정통 국악인들로부터 냉대받던 민속악이 해외공연을 통해 큰 반향을 일으켜 국립국악원의 공연양상에 변화를 불러왔다고 이진형 교수는 ˹우리 음악의 상품화와 소비˼에서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우리 것을 폄훼하였음을 역설적으로 입증해준 대목이다. 고유성 짙은 민속악이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양지에서 우리 음악을 즐기게 된 것이다. 국악 경연 프로그램 출연자들 또한 날개짓 대열에 동참한 셈이다. 출연자들 대부분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다다른 듯 보였는데도 음악활동에 온전히 매진할 수 없단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만 한다니 가슴 아픈 일이다. 많은 대중이 우리 국악을 신명나게 즐길 수 있는 날, 그들도 생계를 위한 고민을 멈추게 될 것이다.

국악이 오늘을 소비하지 않는다면 지나온 과거는 그냥 과거로 묻히게 된다. 고유성의 훼손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오늘의 국악 소비현장을 경연 프로그램은 보여 주었다. 재즈가 처음부터 오늘의 모습이 아니었듯이 훗날 우리 후손들은 아마도 지금과는 다른 음악을 국악으로 소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소비하며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관객과 공연자 간 소통과 공감이 뛰어난 국악의 특성에 비추어 인종은 장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서양음악이 연주될 때는 숨소리나 마른 침 삼키는 소리조차 면구스럽다. 반면, 우리 굿판은 휘모리장단이 관객들을 한껏 고조시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가 쏟아지고 잘하요!!”, “얼씨구!!”가 터진다. 매우 고차원적인 인간중심적 음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실존적 고유성을 경험할 수 있는 문화의 도가니이기도 하다. 주관적 의미로서의 문화체험이 가능한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우리에게는 친숙한 듯 외면받아온 국악은, 지구인의 시각으로 보아도 다양성과 비합리성의 영역을 확장시켜 줄 것이다. 국악이라는 전통문화와 관광을 융합시키면 거대한 굿판이 탄생하리라 믿는다. 민속문화특구인 진도와 목포 등 풍류 남도가 유념하고 발전시켜 나아갈 대목이다. 옴니버스식 갈라공연이 주류를 이루는 향토문화회관과 체험시설을 갖춘 국립남도국악원이 환골탈태하여 문화관광의 성지로 거듭나기를 꿈꾸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