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 내변산, 직소폭포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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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경애 시인] 내변산, 직소폭포에 들다
  • 류용철
  • 승인 2022.01.28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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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2022년 임인년 새해 들어 세 번째 산행이다. 첫 번째 산행은 장흥 천관산, 두 번째는 영암 월출산이었다. 세 번째는 부안 내변산이다. 천관산은 가까이 있는데도 정상까지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억새가 장관이라 하여, 가을에만 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대봉 정상 봉수대에 올라섰을 때, 하늘과 땅, 동서남북 사방의 기운이 정신을 맑게 하였다. 새해 첫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고, 겨울 산행의 고요함도 좋았다. , 여름, 가을, 겨울 적어도 일년에 네 번은 오고 싶었다.

호남 5대 명산이 내변산, 내장산, 월출산, 지리산, 천관산이다. 월출산과 천관산만 정상까지 가 보았다. 올해 산행 계획은 호남 5대 명산 모두 정상까지 가보기로 했다. 밤새 눈이 많이 왔다. 내변산 직소폭포나 내소사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곳 모두 겨울에 가보기는 처음이다. 서너 번 가보았는데 두 번은 문학단체에서 문학기행으로 가 보았다. 대부분 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최대한 짧은 거리로 다녀왔었다. 이번엔 주차장이 아닌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등산길로 걷는다.

나는 등산을 할 때 산악인처럼 전투적으로 걷지를 못한다. 20대 때는 회사 산악회에서 첫 산행을 한라산을 오를 만큼 무모하게 다니던 때도 있었다. 물론 너무 힘들어 산에 오를 때마다 두 번 다시 등산은 하지 않겠다고 울면서 내려온 적도 있다. 몇 년 전부터 다시 명상하듯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3년 전쯤 나의 몸과 정신은 바닥을 친 것처럼 모든 것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유달산에 오르는 것조차 헉헉거리는 시간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을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1년 정도 걸으면서 문학 판과 사람들에 대한 원망, 미움, 실망, 자책, 환멸들을 조금씩 걷어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누구의 탓도 아닌,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3년의 시간 동안 시를 쓰지 못했다. 이제 서서히 다시 시작(詩作)하려고 한다.

예전 문학기행에서는 쌍선봉 삼거리에서 월명암, 직소보를 지나 직소폭포까지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반대편 원암에서 재백이고개를 지나 직소폭포, 직소보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지난밤에는 눈이 내렸지만, 이번에 걸을 때는 너무나 고요하고 청명한 겨울산이었다. 내변산은 그리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산책하듯 걸을 수 있어 좋았다. 파란 잉크빛 같은 하늘과 폐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바람, 보온병 같은 겨울 햇살, 산그늘의 늘어짐, 우리가 가지고 간 금빛 매취, 커피 한잔의 여유, 쇼스타코비치 재즈 왈츠 2번을 들으면서 마음이 평화로웠다. 그리고 천양희 시인의 직소포에 들다시를 낭독하며 시인의 정신을 다시 생각했다.

!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피안이 이렇게 가깝다/백색 정토淨土! 나는 늘 꿈꾸어왔다//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수궁水宮//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박수소리 같은 바위들이 몰래 흔들한다//하늘이 바로 눈앞인데/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여기 와서 보니/피안이 이렇게 좋다//나는 다시 배운다//절창絶唱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 직소포에 들다부분.

천양희 시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직소포에 갔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데 그곳에 가서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겠다는 굳은 각오로 다시 되돌아온다. 그렇다고 이 시가 바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직소폭포를 만난 지 십삼 년 만에 직소포에 들다라는 시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인의 삶과 운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시인의 산문과 시는 그의 인생이었다. 천양희 시인이 목포에 오셔서 한 번 뵌 적이 있다.

시가 안 된다고 엄살을 부리다가도 시인의 시를 읽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의 시정신을 닮고 싶지만, 나의 정신은 너무도 연약하다. 그럼에도 시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시집 한 권을 들고 산에 오른다. 돌아오는 길에 내소사에 들러 작은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가 이루어질 때까지 절창의 소리를 내기 위해 폭포 아래에서 부단히 정진하는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다.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다. 그러나 천천히 걷는 기도를 하듯 글도 그렇게 쉬지 않고 쓰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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