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대통령 서거9주기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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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대통령 서거9주기를 맞이하며
  • 류용철
  • 승인 2018.08.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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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정(김대중 전대통령 국장묘역공사책임자, 풍수지리 문학박사)
석물 설치후 최종 완성 김대중 묘소전경

8월 18일은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9주기가 되는 기일이다. 어느덧 9년이 흐르고 있지만, 그 당시 국장 묘역공사책임자를 맡았던 필자로서는 안장식 관련 전 과정의 역사가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시절 제7대 대통령 선거(1971.4.27)에서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참겠다 갈아치자!’ 선거벽보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처음 보았다. 우리 호남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어린 마음에 간직하여 왔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꿈은 그 후로도 4수끝에 26년이 더 걸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실현되었으니, 정말 멀고 기나긴 당선이었고 우리 호남인의 한을 풀었던 쾌거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7년 발생한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 사태를 1년 반 만에 조기극복하여 경제위기에서 조국을 구출하였다. 2000년 6월 남북평화분위기를 조성하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5남북정상회담을 이루어,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퇴임 후에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은 전직 대통령님이었다. 일부에서는 집권 5년 동안 지역발전에 더 큰 사업을 많이 끌어오지 못하고, 오히려 호남역차별 받았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은 어느 정도 호남인의 차별과 설움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2009년 8월 18일(화) 오후2시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가 공식 발표되었다, 필자는 당시 해남군청 서울사무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중 비보를 받고,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향하였다. 지하빈소에 내려가서 유족대표인 차남 김홍업 전국회의원을 만나 묘역공사책임자로 선임되었다. 이튿날 19일(수) 공사 장비와 인력을 확보하면서 작업추진계획서를 작성하였다. 곧바로 ‘장례식은 국장으로 하고 장지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으로 결정한다’는 국무회의 의결이 있었다. 필자는 유족대표로부터 정식으로 ‘국장묘역공사책임자 선임계’를 받아 국방부에 제출하면서 묘역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1979년 박정희 전대통령 현직 대통령 서거 이후, 두 번째 국장이었다. 법정으로는 7일간 가능하나 공휴일이 길어지면 민생 불편이 있다고 하루 짧게 6일간(2009.8.18.∼8.23)으로 하였다. 30년만의 국장이지만 국방부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과거 국장자료가 폐기되고 없었다. 모든 국장자료는 새로 만들면서 기일 내에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서울 동작동 현충원 안장지는 이미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 사전 답사하여 보아둔 자리가 있었다. 김홍업 유족대표의 매장지 현장 확인을 시작으로 법정 80평 규모의 국장 안장공사를 시작하였으나 실제 공사일은 20(목)∼22(토)일 단 3일에 불과하였다.

국장 컨셉은 ‘봉분을 제외한 모든 묘소주변을 녹색잔디로 깔아서, 대형태극기에 덮힌 대통령님의 관이 선명하게 입장하는 안장식’으로 하는 것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생중계되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전직 국가원수로서 위대하게 돋보이면서도, 동시에 묘소 조성은 고인의 뜻대로 소박하게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20일(목) 첫날부터 야간조명을 설치하고 새벽2시까지 작업을 하였다. 첫날 작업으로 어느 정도 묘소 윤곽이 순조롭게 나왔다. 그날부터 나의 생활은 집에 가서 그날 작업 내역을 정리하고 다음날 계획서를 짜고 점검하고 취침하는 일정이니 국장기간 내내 매일 딱 2시간 자는 나날이었다.

묘역 광중 파려고 틀을 설치

‘국장시 묘역선정 및 조성에 관한 작업지침’을 조문화하면, 그 지침에 따라 단계별로 작업을 안전하고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21일(금) 2일째 작업으로 국가원수묘역 외곽사성이 반원형태로 완성이 되고 파란 잔디가 곱게 깔렸다. 대통령 묘역답게 안정된 계단식으로 크고 웅장하게 보였다. 관을 안장하는 묘역 앞 마당 공간을 조성하여 품격을 높였다. 앞 마당과 묘역 아래 큰 길을 연결하는 임시 계단 설치가 급한 작업이었는데, 현충원에서 맡아주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길 아래는 안장식장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고, 연결 계단 설치 작업은 철제용접으로 신속하게 마무리하여 23일 안장식에는 차질이 없어 보였다.

22일(토)은 공사 3일째이며 안장일 하루 전으로 사실상 국장 준비를 끝내야 했다. 아침에 일찍 김홍업 유족대표의 사전확인이 있었다. 다행히 유족들은 묘역 조성에 매우 만족하였다. 오후에 주변 정리를 깨끗이 하고 관이 들어갈 자리를 1차 파보는 외광작업을 진행하였다. 가로 세로 3미터 나무틀을 짜서 묘역중앙에 놓고 곡괭이와 삽으로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였다, 긴장된 상태에서 허리 깊이 정도 파들어 가자 땅기운이 선명하게 들어오고 뭉쳤다는 오색혈토가 나오기 시작했다. 타조알 크기의 빛나는 오색혈토 덩어리를 기자단과 참관인들에 보여주면서 명당이라고 확인시켜드렸다.
예상한 6자 깊이를 한꺼번에 모두 파서 광중을 조성하면 땅 기운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그 날은 4자 깊이에서 일단 작업은 마무리하였다. 나머지 더 깊이 내광을 파서 하관작업을 준비하는 것은 운구가 도착하기 2시간 전까지 완성하면 되는 것이었다. 혹시 비 올 것에 대비하여 광중 위에 사각형으로 천막을 치고, 광중 위를 천막으로 철저하게 잘 덮어두었다. 삼엄하게 밤샘경비를 하였다. 국장의 모든 과정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기록하는 전담직원이 있어서 매일 작업 시작부터 종료시점까지 비디오 촬영을 하여, 한 점의 의혹이 없게 녹화하였다.

드디어 2009년 8월 23일(일) 안장일이 밝았다. 아침 일찍 현충원을 걸어 들어가는데 하늘도 맑고 모든 일이 잘 될 것 이라는 좋은 느낌이 들었다. 오전에 광중에 들어갈 김대중 전대통령의 일생을 기록한 지석을 다시 점검하고, 내광 흙파기 작업에 착수하였다. 최종 관이 들어갈 자리를 파고 깨끗하게 정리하여 하관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다시 정밀하게 분금 작업을 하고 조심스럽게 파들어가는데, 내광의 흙이 단단하여 부서지지 않았다, 지기에너지가 뭉쳤다는 증거이며, 지기에너지가 다이어몬드 형상으로 선명하게 입력되는 선들이 보였다.

광중 판 후 하관 점검 작업

단단한 비석 비토 정말 명당의 전형적인 오색혈토가 출토되었다, 내광 흙은 오염되지 않게 한편에 깨끗하게 보관하여 하관 후에 다시 덮는 흙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마지막 하관 예행연습을 하고,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와서 광중에 대한 최종 감식을 하였다. 단장은 이상이 없고 좋은 자리라고 확인하였다. 운구차는 동교동을 거쳐 시청광장을 지나 오후5시 현충원에 도착하였다. 안장식은 의장대의 주악 연주 속에서,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종교의식을 거쳐 6시경 하관하였다. 대형 태극기에 덮혀 3군 의장대가 운구하는 대통령님의 마지막 모습은 엄숙하고 장엄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하관한 직후 바로 내광에 내려가서 패철로 분금을 확인하고 올라왔다. 이어서 관을 흙으로 덮는 허토작업을 진행하였다. 가족, 국무위원, 동교동 비서진, 정동영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순서로 국화를 바치고 삽으로 관위에 흙을 뿌렸다. 참석하는 모든 분들이 마지막 작별을 하면서 울고 슬퍼하셨다. 흙을 파낸 역순으로 평토작업을 하면서 지석을 묻었다. 봉분을 묘소 주변 폴리스라인에서 안장식 장면을 보고 울고 계시는 수 많은 애도 국민들을 보면서 진정한 우리의 대통령님이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날이 어두워져서 일단 봉분만 만들고 종료하였다.

24일(월) 이후 묘역공사 작업은 국방부 규격에 따라서 봉분을 만들고, 봉분에 잔디를 심었다. 묘앞 마당을 안정화시키는 자연석 석축을 5.5미터 높이로 쌓았다. 묘 둘레석은 광중에 물이 들어갈 우려가 있어 설치하지 않기로 하였다. 소박하게 조성하라는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공법이기도 하였다.

공작새 형태 명당이므로 공작새알 모양의 큰 돌을 묘역 마당 앞에 놓아서 석축쌓기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묘역 출입로는 대통령님 막내 동생의 말씀대로 휠체어가 출입하기 편하도록 묘소 옆으로 조성하였다. 소나무 사이로 걷는 운치가 있는 출입로가 되면서, 계단을 설치하지 않아서 공사비를 크게 절감하였다.

임시 묘 완성 후 필자

9월 1일 대통령님 고향 신안 하의도에서 하의면 부면장이 1박2일에 걸쳐 하의초등힉교 교정에 있는 큰 배롱나무를 실어왔다. 기념식수 행사는 한화갑 대표와 주장배 신안군의장이 참석하여 거행하였고, 우리 작업단을 격려하여 주었다. 정말 음지에서 일하는 우리 는 힘이 났다. 마침 대통령님이 좋아하시는 빨간 영산홍 80년생 나무 2그루와 상징나무라 할 수 있는 우산형 소나무가 적시에 구해졌다. 저의 고향 해남에서 김병욱 도의원이 묘역공사책임자 고향 상징나무라고 작은 배롱나무를 2그루를 가져와서 조경작업을 마감하였다.

묘역공사 마감작업은 10월 6일 49재에 맞추어 석물을 설치하였고, 11월 9일까지 40일간 계속되어 완벽하게 마무리하였다. 신라 왕릉이 2천년을 가듯이 김대중 전대통령님의 묘소도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평화통일과 민주화 상징으로 영원히 보전될 것이다. 그 당시 48세인 필자가 막중한 국장묘역공사책임자를 맡아서 국가원수묘역을 조성해낸 것은 제 인생에 큰 업적이었다. 내년이면 벌써 김대중 전대통령님이 서거 하신지 10주년이 된다. 앞으로는 우리 지역 언론사 주최로 김대중 대통령기념관에서 ‘국장사진전’을 1주일 기간으로 열리면서 추모하는 행사가 매년 개최되기를 기대해본다.

 

필자 박경정 김대중 전대통령 국장묘역공사책임자 프로필
 

 

- 1962년 해남 황산출생, 황산동초등학교, 황산중학교, 광주인성고등학교(5회),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81학번)와 전남대학교 경영대학원(1985∼88년, 경영학석사) 졸업, 공군장교(사관후보생 80기, 공군중위 전역)복무
- 동서증권주식회사 10년 근무(1988∼1998년), 자유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상근 농림해양수산정책 전문위원(1998〜2004년), 민주당 정책위원회 농림해양수산전문위원(상근, 2007〜2008년), 김홍업 국회의원 등 보좌관 역임(3년). 해남군청 서울사무소장 역임(2008.9∼2010.12)
- 장안대학교 산학협력단 화성시 지역발전연구센터 책임연구원(2014〜2015년)으로 수원군공항 대응방안, 농업6차산업화방안, 화성시 상징 꽃․나무․새 연구, 화성시 메모리얼파크 운용 및 활용방안 등 연구실적
-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수산업발전방안, 농어촌 뉴타운의 풍수지리분석 등 농수산분야 학술연구실적 20여편.
- 2008년 경기대학교 국제문화대학원에서 「조선왕릉 동구릉에 대한 풍수지리적 고찰」로 풍수지리학 석사학위 취득,
- 2015년 2월 건국대학교 대학원 문화정보콘텐츠학과 문학박사 학위취득(세계유산 조선왕릉 입지 및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
- 2009년 김대중 전대통령 國葬(8.18~23) 묘역공사 책임자(2009.8.19~11.9) 역임
- 2015년 김영삼 전대통령 國家葬(11.22~12.2) 묘역공사 책임자(11.22~12.2)를 역임한 풍수지리전문가(연구 경력 1992~2013년 현재)
- 2015.3월〜2017년 2월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풍수문화학과 객원교수
- 2017년1월〜현재, 서울시립대학교 평생교육원 전담교수(취업과 창업에 필요한 풍수지리사주). 풍수지리 ․ 선거컨설팅 전문가, 창업지도사로서 ‘명당 상권 분석 및 실내인테리어기법’ 전문 강사 활동 중
- 2018년 현재. 해남군립도서관 문화의집(해남군청 문체사업소 소관)에서 「풍수지리 활용론」강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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