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 읽기-소설 본상 조계희⑦]아버지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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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 읽기-소설 본상 조계희⑦]아버지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3.2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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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안개 때문에 제대로 못 주무셨을 텐데 들어가십시오. 좀 더 살펴보고 내려가겠습니다.

-자네도 제대로 못 잤잖여. 혜인아, 네 아빠는 너보다 등대가 더 좋은가 보다야.

아버지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등탑 안의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릴 때쯤에야 등탑 꼭대기에 닿았다. 등탑 유리창 너머로 먼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먼 바다 빛깔과 섬을 둘러싼 바다의 빛깔은 서로 다른 푸른빛이었다.

아버지는 커다란 램프를 닦기 시작했다.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램프의 유리를 들여다보고 다시 닦기를 반복했다. 아버지는 내가 옆에 있는 것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반짝이는 램프 표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아버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가 먼저 유리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오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라.

아버지는 유리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바깥 난간에 몸을 의지한 채 안개 때문에 얼룩진 유리창을 닦았다. 바람이 아버지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바람이 아버지를 바다 저 멀리로 날려버릴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아버지는 물걸레와 마른 걸레를 번갈아가며 유리창을 닦았다. 유리창 안쪽에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아버지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한참만에야 등탑 안으로 들어온 아버지에게서 짭짤한 바람 냄새가 났다.

-아빠는 안 무서워요? 아빠가 날아가 버리는 줄 알았어요.

-하나도 안 무섭다. 지금보다 더 센 태풍이 불 때도 안 날아갔는데?

아버지가 당당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었다. 집에 왔을 때 초조해 보이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나는 섬에서 지내는 동안 학교 친구들과 바다에서 수영을 했고 바위에 붙은 보말이며 거북손을 따고 미역도 건졌다. 바위틈에서 작은 게와 소라를 잡았다. 아버지와 낚싯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하기도 했다. 섬에서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우리 네 식구가 다 같이 섬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다음 비번일 때 함께 섬을 나가기로 돼있었다. 할머니와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을 보는데 대형 태풍이 북상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아버지는 전날부터 집에 들르지 않았다. 그 날 저녁부터 무시무시한 바람이 불고 굵은 빗줄기가 지붕을 뚫을 듯 쏟아졌다. 천둥과 번개가 섬을 뒤집어엎을 것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할머니 옆에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바람소리는 밤새 잦아들지 않았다.

태풍이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던 그 날 밤 엄마와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태풍 때문에 배가 전혀 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비바람 헤치고 고깃배를 부리는 선장들의 집을 찾아다녔지만 섬을 나갈 수 없었다. 마루 끝에 앉아 숨죽이며 우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울었다.

따님이 먼저 어르신 방에 가 계셔도 됩니다. 아버님은 본인이 다 끝났다고 생각해야만 그만 두시니까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앉아 있던 내게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나는 요양보호사가 알려준 방으로 향했다. 화장실이 딸린 2인실이었다. 아버지 자리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벽에 등대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등대 사진들 밑에는 필터를 입힌 듯 흐릿해진 가족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젊은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유치원복을 입은 오빠와 다섯 살의 내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오빠 얼굴에서 다니엘의 얼굴이 보였다. 남편은 다니엘이 나를 더 닮아 불만스러워했다. 가슴 깊은 곳이 다시 쿡쿡 쑤셔왔다.

아버지가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침상에 걸터앉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두 손을 들여다보았다. 낯선 물건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버지, 저 혜인이에요.”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먼 바다를 바라볼 때처럼 아득한 눈빛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기억들을 소환해내기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아버지의 세계 속에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저 알아 보시겠어요? 혜인이에요.”

나는 침상 가까이 다가가 앉으며 아버지의 두 손을 맞잡았다. 아버지가 나에게서 두 손을 빼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아버지 손을 뿌리쳤을 때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등을 떼밀리기라도 한 것처럼 서운했다. 나는 아버지가 바라보고 있는 병실 안 허공을 바라보았다.

엄마와 오빠의 장례식을 마치고 온 날, 아버지와 나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두 사람이 사라진 공간은 바라보았다. 어떤 것으로도 다시 채워질 수 없는 공간 속에 아버지와 나는 나란히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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