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의 희망편지] 하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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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희망편지] 하얀 돌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10.1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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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몰라요. 어쩌면 매일 그날만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어요.

매일 강가의 돌덩이를 주워다 깨끗하게 닦았죠. 돌덩이가 반짝반짝 광이 날 정도로 닦았어요. 집 뒤 뽕밭에 석불이 있었거든요. 그곳에 돌덩이를 쌓으려고요. 어둠이 내린 세상에 빛을 내는 것을 바치면 어떤 소원도 이루어주실 줄 알았어요. 별빛을 한 아름 따다가 쌓아놓고 싶었는데, 지상에는 빛을 바칠 수 있는 게 없었죠. 밤하늘 별빛을 닮은 것은 오직 반들반들한 돌덩이뿐이었어요.

제 인생이 세상에 내 버려진 삶이래도 괜찮았어요. 저는 다만 제 아우가 어머니 곁으로 무사히 갈 수 있기를 바랐어요. 반년 전에 역병으로 죽은 네 살배기 용덕이는 열이 펄펄 끓던 순간에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았어요. 제가 온종일 아우 곁에 붙어 있어도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할 순 없었죠. 그 어린 것이 병아리 부리 같은 조그마한 입술로 벙긋벙긋 어머니를 부르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사람이 아플 때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저는, 모든 게 어설픈 형이었어요.

지게를 지고 장에 다녀온 날, 방안은 고요했어요. 평소라면 형아 왔냐며 손을 흔들었을 아우의 몸이 차갑게 식어 있었어요. 울부짖으며 신령님을 찾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죠. 아우는 저 소원대로 어머니 곁으로 영원한 소풍을 떠난 거예요. 그런데 그 어린 것, 겨우 네 살배기 꼬맹이가 길을 잃으면 어떡해요? 그래서 매일 밤 돌을 닦아다 석불에 쌓았던 거예요. 부디 어머니 곁에 무사히 갈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런 어느 날, 그 석불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어요. 백석사의 스님께 여쭤보니, 일본인 부호가 석불을 훔쳐 가버렸다고요. 저는 조선 땅에 터를 잡았다는 일본인 부호 집으로 달려갔어요. 대문 앞에 선 그 집 노비들의 모진 욕설과 수모에도 꿋꿋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어요. 그때 장마가 시작되어 수일동안 비가 내렸어요. 발이 잠길 만큼 비가 쏟아졌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날이 왔어요. 그날은 장마도 끝나 하늘에 수많은 별빛으로 그득했죠. 부호는 석불을 돌려주겠다고 했어요. 백석사에 둘 테니 가라고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몇 번이나 허리를 숙였는지 몰라요. 이제 아우를 위해 소망을 쌓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참 무심하게도, 백석사에서 석불은 찾을 수 없었어요. 석불을 맡았다는 스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죠. 사람들이 수군거리길 석불은 방죽에 던져졌다고 했어요. 가슴이 무너져내렸어요. 안돼!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방죽으로 달려갔어요. 방죽은 며칠째 내린 장맛비로 물이 꽤 불어나 있었어요. 저는 주저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어요. 오로지 달빛에만 의존한 채로 석불을 찾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석불은 보이지 않았죠.

차가운 물에 온몸이 얼어붙을 무렵이었어요. 저 멀리 물가에 어머니가 서 있었어요. 한 손에는 용덕이의 손을 잡고요. 선한 두 미소가 어찌나 밝던지, 주변은 어스름하게 비추던 달빛보다 더 환해졌어요.

용수야, 집에 가자.

어머니가 웃으며 제게 손짓했어요.

어머니!

어머니를 보자 그때야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 용덕이가 무사히 어머니 곁에 갔던 거예요! 제가 울자 어머니와 용덕이가 제게 다가왔어요. 따뜻한 품들이 제 몸을 안았죠. 어머니, 저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왜 이제야 오셨어요? 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제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었죠.

그날 하늘은 별빛으로 찬란했어요. 석불에 닦아 올렸던 수많은 돌만큼, 별빛도 어둑한 밤하늘에 그득그득 차올랐죠. 제 몸과 영혼도 하얗게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밤하늘 별빛처럼, 방죽 주변으로 하얗게 반짝이는 빛들이 흩어졌죠. 저는 꽤 오랫동안 지상에 흩어진 하얀 돌들을 바라보았어요.

이제 지상에도 별이 생겼어요. 달빛에 비친 저 하얀 빛들이 길 잃은 자의 앞날을 환히 밝혀 주겠죠? 그러자 마음이 한결 포근해졌어요. 백석골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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