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터·창고’만 등록문화재… 문서 발굴조사 전무
[목포시민신문] 1897년에 설치된 목포해관 자료가 최근 발견된 가운데 관련 기록 문서에 대한 체계적 연구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구 목포세관 본관 터 및 창고’는 국내 최초 자주개항의 상징성으로 2020년 6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반면, 목포해관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상태여서 기초자료 발굴이 시급한 상황이다.
목포대 사학과 최성환 교수는 지난달 자신의 SNS에 “목포해관은 1897년에 설치돼 업무에 들어갔는데 목포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며 “자료를 뒤지다 보니 그동안 못보았던 초기 목포해관 문서를 확인해 틈틈히 살펴봐야겠다”고 보다 체계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영국인 Amour(阿莫爾)가 초대 관장을 엮임한 목포해관은 개항 직후 목포를 출입했던 용세龍勢호, 해룡海龍호(이상 범선), 현익顯益호(윤선) 등 우리나라 선박들의 이름들이 있는 문서에 목포해관직인이 찍혀 있다.
최 교수는 “비슷한 시기 개항한 인천은 해관문서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는 반면, 목포는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앞으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이 문양으로 뺏지나 기념품을 만들어 세관창고 체험관이나 목포개항장 거리에서 활용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해관’은 중국 청나라에서 들어와서 중국에서 사용한 용어로, 그 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일본에서 사용한 ‘세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1883년 설치된 인천세관에 이어 우리나라 두번째 세관인 목포세관은 1897년 10월1일 목포 개항과 동시에 해관(海關)이라는 명칭으로 관세업무를 시작했다. 목포항은 당시 고종황제의 칙령에 의해 자주적으로 개항해 다른 항구의 외세에 의한 개항과 차이가 있다.
목포해관은 1907년 세관으로 개칭된 뒤 목포진에서 1908년 현재 위치(항동6-33)로 옮겨와 건립됐다. 당시의 세관본관은 1950년대 멸실되고 1955년 신청사가 신축돼 1967년 목포세관이 삼학도로 이전하기 전까지 관세업무를 보았다. 이후 완전히 멸실돼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지지난해 국가 등록문화재 지정 직후, 목포시는 “목포세관은 최초 자주개항의 상징성을 지닌 장소로 이번 문화재 등록을 통해 목포는 다수의 근대도시와 다른 차별성을 갖게 됐다”며 “전국 유일의 역사성을 지닌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활용해 목포 근대문화유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목포시는 등록문화재 목포세관을 장소와 건물 등 ‘관광’ 측면으로만 접근하고 있는 반면, 해관 문서나 기초자료 발굴조사는 전무해 “보존·활용이 내용물 없이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꼴”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한편, 목포시는 오는 4월 개관 예정인 ‘구)목포세관창고 복합문화공간’(가칭)의 명칭을 지난 25일까지 공모에 나섰다.
목포시 관광과가 주도하는 이 사업은 큰 창고를 음식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푸드랩과 스몰푸드존으로, 작은 창고를 구)목포세관 역사전시 공간 및 관광 정보와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스마트관광플랫폼으로 각각 활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