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목포도시화 100년을 말하다⑦]목포서 최초의 교통사고는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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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목포도시화 100년을 말하다⑦]목포서 최초의 교통사고는 언제?
  • 김영준
  • 승인 2022.05.2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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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월 기생 태운 차 아이 치어
목포에 자동차 21년 1월 처음 등장
신호등은 74년 4월 오거리 첫 점등
오거리 뒷골목 문화와 관련하여 1970년대 재현된 선술집을 볼 수 있으며 목포 출신의 이난영, 남진, 조미미 등 다양한 가수와 노래, 문학 등을 보고 들을 수 있다.

[목포시민신문] 목포에서 최초의 교통사고는 언제 발생했을까?

1925122일자 시대일보 보도에 따르면 19251월 목포 영명관 앞에서 기생을 태운 자동차가 어린아이를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생들이 탄 자동차가 영명관을 향하여 왔는데 아이들이 이것을 신기하게 여겨 그 뒤를 따라 영명관 앞에까지 왔다가 자동차가 급회전하는 바람에 뒤에 붙어 있던 어린아이가 자동차 바퀴에 깔려 바른편 가슴과 어깨를 다치는 사고가 났던 것이다. 다행히 생명의 위험은 없었다고 한다.

이는 각종 문헌과 언론 보도에 나타난 목포 최초의 교통사고 기록으로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이 엮어 낸 사고였다. 그럼 목포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때는 언제일까?

1920511일자 동아일보와 박노찬씨가 1974년에 펴낸 목포사에 따르면 호남에 자동차가 등장하기는 남평의 죽전 자동차부에서 192055일 영업을 목적으로 새로 구입한 포드식 차량 두 대의 시운전이 아마 처음이었다. 목포에서는 그 이듬해인 19211월에 경정 1정목에 자리 잡은 환일 자동차가 처음이었다. 19253월에는 대화정에 조일자동차부가 생겨 환일자동차와 경쟁했다. 19283월에는 불이자동차부, 같은해 6월에는 죽동에 목포자동차부가 각각 설립되면서 경쟁을 벌여 나갔다. 1926년 공진회가 개설될 무렵에는 시내 일원에 택시제도가 생겼다.

1937년 작성된 목포시가지계획 중 목포부 차량수표에 따르면 1926년도 자동차 대수는 8대이고 지금의 오토바이인 자동자전거가 8, 자전거는 604, 인력거는 42대였다. 1930년도 자동차 대수는 23, 자동자전거 11, 자전거 995, 인력거 36대였고 1933년도 자동차 대수는 29, 자동자전거 11, 자전거 253, 인력거 27대였다.

목포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때는 1921년이지만 목포의 교통 사정은 자동차 증가나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했다. 목포에 교통신호등이 최초로 세워진 때는 19744월로, 자동차가 들어온 지 54년이 흐른 뒤였다.

전남매일 1974411일자 보도에 따르면 1974410일 무안동 소재 오거리에 목포 최초의 교통신호등 4개조의 점등식을 가졌다. 이 신호등은 설치된 첫날에는 이곳을 운행하는 운전자들이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목포의 낙후된 현실은 도로율에도 나타난다. 1975년도의 도로율은 2.8%, 포장율은 34%로 전국도시 평균 5.5%에 못 미쳤다. 인구 20만 규모 도시에 대한 내무부 기준이 각각 11.4%, 43.6%였는데 비하면 목포시는 여기에 훨씬 못미치고 있었다.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거론되던 일이지만 목포의 교통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당시 16만여 명에 달하는 목포시민들이 1925년 인구 5만일 때 계획된 당시의 도로를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1925년에 비하면 196811월에는 보행자가 약 50, 자동차가 1,200배로 늘었지만 교통여건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1970년대의 열악한 도로망 중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761229, 교통사고 다발 노선인 광주-목포 간 도로확장 공사 기공식을 거행한 일이었다. 이 공사는 이듬해 12월까지 총공사비 197400만원을 투입해 광주-목포 전 구간 81.2를 폭 16m, 포장 7m의 완전 고속화 도로로 개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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