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목포를 사랑한 사람들 7인의 이야기Ⅳ-보해 임광행⑤]사재까지 내놓는 목포 발전 헌신하고 사랑한 참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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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목포를 사랑한 사람들 7인의 이야기Ⅳ-보해 임광행⑤]사재까지 내놓는 목포 발전 헌신하고 사랑한 참 기업인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2.11.1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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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 등산로 정비 개인 땅 시에 기부
목포해양문화전시관 건립 자신 유택 기부
1982년에 목포시민의 상을 수상
1996년에는 목포대 명예경제학박사

본지는 지역주의타파범국민실천위원회 배종덕 위원장이 집필한 ‘목포 7인의 휴먼다큐 목포를 사랑한 사람들’을 기반으로 ‘7인의 휴먼다큐 목포를 사랑한 사람들’란 주제로 연재한다. 이번 연재는 배 위원장이 출간한 책에서 저자가 직접 작성한 글로서 6월 1일 발행되는 신문부터 독자를 찾아간다. 총 30회에 걸쳐 보도될 이번 연재는 일곱 분의 인사 중 네 번째 순서로 산업‧경제분야로 임광행 보해 회장 편이 총 6회에 보도된다. 일곱 분은 종교복지분야 이남규 목사, 행정분야의 하동현 전) 목포시장, 사회‧복지분야 윤학자 여사, 산업‧경제분야 임광행 회장, 문화‧예술분야 차재석 전)목포예총지부장, 사회‧봉사분야 박길수 씨, 사회‧봉사분야 김환 전 백년회 이사장 순으로 보도된다.<편집자 주>

■7인의 휴먼다큐 목포를 사랑한 사람들Ⅳ-보해양조 임광행⑤

임 광 행(1918 ~ 2002)

-사적 활동

사람들은 공적인 위치나 공적 공간에서 행한 일보다 사적인 위치나 사적 공간에서 행한 일에 더 감동하는 경향이 있다.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BC100년? 7월12/13일~BC44년03월15일. 로마의 정치가)가 죽었을 때, 로마 시민들은 시저가 갈리아를 정복하고, 이집트를 복속시킨 업적보다는, 자기 재산을 털어 시민들에게 금전을 나누어주고 주거환경을 개선해준 사적인 일을 더 기억하고 감동하였다. 임광행이 공적활동을 통해 목포사랑을 실천한 일을 목포시민들은 눈물겨워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임광행의 사적인 활동들이 하나둘씩 알려지기 시작하자 진정으로 감동을 받았다는 시민들이 더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다.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에 오르는 산책로에 포함된 땅을 아무런 조건 없이 시에 기증한 일이다. 당시 시장이었던 김동석(제20대 목포시장)씨(가수 진미령 부친)의 증언이다. “1990년 이전까지 유달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산책로가 조성되지 않은 오솔길이었다. 이곳을 정비할 것을 지시했더니, 조사결과 비용이 1천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등산로에 사유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유지는 보해양조의 임광행 회장의 개인 소유였다. 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판이었다. 사업을 추진하려면 그 땅을 매수해야하는데 시 예산이 부족한 관계로 무상으로 국가에 헌납토록 종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임회장은 유달산의 그 땅을 목포시민들을 위해 선뜻 내놓겠다고 말했다.”(매화향기를 맡으며, p.189) 목포의 상징 유달산, 목포의 얼굴 유달산, 정상으로 오르는 오늘날의 산책로가 이렇게 해서 확장 정비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시민은 많지 않다. 또 하나의 좋은 사례가 있다. 목포시의회 의원과 상공회의소 회원을 지낸 고 조경석씨가 그의 고희문집 “상유가”에서 밝힌 내용이다. “임광행 회장님은 1998년에는 목포와 신외항을 연결하는 다리를 세계적인 미항 호주 시드니의 상징인 하버 브릿지처럼 건설하여 세계적인 미항대열에 목포를 포함 시키려는 야심찬 의욕을 갖고, 사비를 들여 환경전문 미래학자 “김형국”(서울대)교수를 초청, 시드니를 견학 갔다온 집념을 보이셨다. 나는 당시 목포 정우회원으로서 임회장님을 모시고 시드니 견학여행을 동행했다.”(조경석, 상유가, p.36)침체된 도시, 목포의 재건을 위해 정관계 및 학계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임광행의 집념의 표출이었다. 이 역시 일반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임광행의 숨은 목포사랑의 사례다. 그렇다면 임광행의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목포사랑 중에서 첫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뭐니뭐니해도 ‘유택 기증’이라고 할 수 있다.

유택기증에 얽힌 사연을 살펴보자.

임광행은 용해동에 위치한 현 국립해양유물 전시관 자리에 유택을 위한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자리에 목포시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을 건립키로 한 것이다. 중앙정부에서 건축비까지 받아낸 목포시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시에서 임광행을 접촉하여 보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이에 목포시는 고심 끝에 중재자로 목포출신 중앙대학교 김성훈교수(1939년 목포출생. 중앙대 부총장. 농림부 장관역임)를 내세워 임광행을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김교수는 선친때부터 임광행과 담 하나로 가까이 살아온 관계이며, 목포시가 운영하고 있는 향토박물관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4,300여종의 조가비를 기증해서 목포시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인물이다. 목포시가 중재자로서는 매우 적절한 인물을 선택한 것이다. 김교수가 임광행과 큰아들 건우를 설득한 결과 천신만고 끝에 “그 땅을 목포시민에게 돌려주어야 하겠오.”라는 답변을 얻어냈다. 목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용단이었다. 나중에 이 얘기를 전해들은 20대 시장을 지낸 김동석씨는 “정말 범인들은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극찬하였다. 시민들이 알든, 모르든, 목포시 개항 이래 자기 유택마저 시민들의 위해 조건없이 내놓은 사람이 임광행 말고 또 누가 있었는가? 유택을 목포시민들에게 돌려준 임광행의 용단은 목포사랑의 극치이자 완결판이다. 임광행의 목포사랑에 대한 숨은 얘기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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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만 더 조망해 보자. 첫 번째사례다, 한라그룹 고 정인영 회장에게 점심밥상을 올린 일이다. 재계의 부도옹으로 불리운 고 정인영회장은 현대그룹 정주영회장의 첫째 동생으로 한라그룹을 85세에 창업하고 목포앞바다에 조선소를 건립하고 있었다. 지방 경제발전의 주역이 기업임을 잘 아는 임광행은 대불공단 인근에 조선소를 차린 한라그룹이 고맙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이는 본인이 2살 위였지만 그룹 회장인 고 정인영회장을 극진히 모셨다. 한번은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정회장의 바쁜 일정 때문에 도무지 약속이 되지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끝에 임광행은 한정식으로 유명한 광명식당(용당동 소재)에 부탁해서 아예 밥상을 차려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조선소현장까지 가서 점심을 대접하였다. 임광행의 목포사랑의 극치라는 표현 외에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일이다. 이때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정인영회장은 2011년 6월에 목포명예시민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두번째 사례다. 임광행은 신제품이 출시되면 술을 자동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다녔다. 목포시민은 물론이고 목포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이다. 정관계인사는 물론,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술을 맛보고 고마움을 표했다. 단순히 술을 선전하기 위한 상술이 아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은태 전 국회의원과 전 인천시장 최기선 등과의 일화를 전 시의원 고 조경석씨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조경석. 상유가, p.77~78)

목포사람들은 임광행의 목포사랑에 대한 크고 작은 수많은 선행을 다 알 수는 없다. 임광행은 1982년에 목포시민의 상을 수상하였다. 1996년에는 목포대학교에서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임광행의 목포사랑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 런지?

/다음 호에 이어짐

-약력

목포 중.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 MBC PD / ㈜에스콤 대표이사/ ㈜제일기획(삼성그룹) 기획국장 / 통일민주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목포시지구당위원장 / 지역주의타파 범국민실천위원장 / 저서 ‘나는 일하고 싶다’‘매향노라 불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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