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상흔…왜곡된 삶의 목포-일본人⑥]목포 하이쿠 역사성 연구 통한 한일 민간교류 초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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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상흔…왜곡된 삶의 목포-일본人⑥]목포 하이쿠 역사성 연구 통한 한일 민간교류 초석으로
  • 류용철
  • 승인 2022.12.02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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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기 박노식 하이쿠 스토리텔링 통해 문학 행사 필요
마쓰야마 시 시키기념박물관 등 목포문학축제 초청부터
일제강점기 상흔왜곡된 삶의 목포-일본

목포는 일제강점기 수탈항으로 역할을 하면서 번성했다. 식민지 수탈의 첨병 역할을 하는 일본인들과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몰려는 조선인들로 도시는 매년 몰려드는 인구로 급성장을 했다. 일제강점기 급성장했다 산업화 소외로 쇠퇴한 도시답게 일본 식민지 사회가 남긴 상흔은 도심 곳곳에 남아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가 돼 남아 있다. 이런 영향으로 근대도시 목포는 해방과 패망으로 서로 엇갈린 시각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해방과 함께 징용에서 귀국한 사람은 일제 침탈과 약탈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반면 패망으로 한반도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장기를 목포에서 보내다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인들의 왜곡된 삶을 살았다. 이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전쟁의 생채기를 후세에 알리고자 한다. 일제가 벌인 식민지 전쟁으로 왜곡된 삶을 살다 간 일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근대 도시 목포의 상처를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게재 순서>

혼돈의 목포 1945815

해방 후 목포의 일본인들

일본서 태어난 조선인의 인생

일본으로 돌아간 목포 일본인

하이쿠 시인 무라카미 교시

식민지의 상처 목포 다크 투어

[목포시민신문] 일제강점기 식민지 목포시와 현대 에히메현(愛媛縣) 마츠야마시(松山市)는 하이쿠(俳句) 문학을 통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적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돼 있다.”

에히메(愛媛)대학 나카네 다카유키(中根隆行)교수는 목포에서 에히메현에박노식무라카미 교시이 모모 오타코(李漢洙)’ 논문에서 밝히고 있다.

양세영 세한대 교수는 하이쿠의 문학이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의도로 내선일체의 문화통치 정책으로 목포에 자리를 잡았을 수 있지만, 무라카미 교시(村上杏史)로 인해 그 문학동인의 인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세한대 양세영 교수와 목포문화원 조상현 사무국장, 유용철 대표는 좌담회를 갖고 '일제강점기 상흔…왜곡된 삶의 목포-일본人'기획기사와 관련한 활용방안에 논의를 전개했다.

목포문화원 조상현 사무국장은 일제강점기 목포 거주 일본인들의 문학 활동은 하이쿠 동인 활동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함께 문학 활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방 이후에도 하이쿠 문학 활동이 무라카미에 의해 지속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본보는 23일 일제강점기 일본인과 화교 중국인들이 목포에서 활동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는 세한대 양세영 교수와 목포문화원 조상현 국장, 유용철 기자가 좌담회를 갖고 무라카미 교시의 하이쿠를 통한 한일 문화교류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유용철 기자 = 이번 일본 취재를 통해 본보는 해방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무라카미 교시가 고향 에히메현 마쓰야마 시에서 하이쿠 문학 활동을 전개하면서 일제강점기 목포에 거주한 일본인들과 조선인들 인적네트워크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왔음을 확인했다.

에히메(愛媛)대학 나카네 다카유키(中根隆行)교수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귀화한 일본인들의 남긴 체험수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를 했다. 무라카미 교시의 수기 삼천리도 다양한 방향에서 연구됐다. 식민지 사고를 바탕으로 확립된 목포 하이쿠 문학 활동이 무라카미에 의해 계승되고 에히메현에서 활동한 하이쿠 동인 카키()는 이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64년 한일협정 이후 일제강점기 목포 하이쿠 동인들이 카키 동인으로 참여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목포 하이쿠가 현대 에히메현 하이쿠와 맥이 닿아 있다.

양세영 교수 = 요즘처럼 한일관계가 정치적으로 꽉 막힌 시국에서 목포 하이쿠 인적네트워크 활성화는 한일 민간 문화교류에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70년대 산업화 물결이 비켜 감으로써 목포에 일제강점기 일본풍 건물 등이 남아 불행 중 다행으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일본에 하이쿠 동인들이 다양한 인적 관계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하이쿠 성인으로 불리는 시키(子規)가 태어난 곳이며 시키기념박물관이 위치한 에히메현과 목포시가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일본의 하이쿠가 하나의 문학 장르로 인정받고 동인들의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목포의 하이쿠 역사가 일본인들과 세계 하이쿠 동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

조상현 국장 = 일제강점기 일본인 하이쿠 동인과 달리 조선인 하이쿠 동인도 있었다. 무라카미 교시가 조선의 시키라 부른 박노식 씨다. 그는 강진 마량이 고향으로 목포 보통학교와 상업 전수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근무하면서 하이쿠 동인 깔따구에서 활동했다. 무라카미 교시가 1983박노식 하이쿠 집출간에 직접 관여했다. 이런 연휴로 국내에서 박노식 하이쿠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의 아들인 박기종은 해방 후 산업은행에 근무했으며 한일협정 이후 무라카미가 활동한 카키 동인으로 참여해 관계를 이어갔다.

박노식과 하이쿠에 관한 연구가 국내 학계에서 이루어지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역에서 박노식에 관한 관심과 하이쿠로 이어지는 인적네트워크에 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들에 관한 관심과 교류를 통해 일제강점기 침탈과 약탈의 식민지 목포의 아픈 역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한일 문화 민간교류를 모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본 에히메현 마쓰야마시를 방문해 수집한 무라카미 교시의 체험집 '삼천리'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체험집에는 무라카미 교시가 1945년 8월 15일 해방/패망 당시 일본으로 귀환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유용철 기자 = 시키기념박물관 등 마쓰야마 시에는 많은 하이쿠 관련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무라카미 교시를 추억하는 하이쿠 문학동인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일 민간 국제교류를 통해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목포 하이쿠에 관한 학계 연구 등을 통해 교류의 필요성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한국 하이쿠 협회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다. 이들은 하이쿠에 대해 교류를 하고 있다. 코로나 19 팬더믹 전에 이들은 에히메현과 교류를 했다. 부산 등에서 박노식과 하이쿠에 대한 강연도 있는 것을 보면 부산 등지에서 하이쿠를 매개로 한 한일 문학 민간교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목포에 하이쿠 문학 활동보다는 목포 하이쿠 역사에 관한 연구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를 기반으로 한일 교류도 이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양세영 교수 = 민간교류를 위한 지역에서 준비가 필요하다. 학계 연구도 당장 필요하지만, 민간교류를 뒷받침할 단체가 필요할 것 같다. 한두 번 정도 민간인들이 서로 교류를 통해 왕래하면 방향성이 만들어질 것이다. 에히메현은 고치현과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다. 고치현은 공생원 윤학자 여사의 고향이다. 현재 공생원 윤기 이사장이 거주하고 있다. 고치현는 목포 기독교 교회에 부임한 첫 목사가 이곳 출신이다. 에히메현과 고치현을 한데 묶어 목포와의 민간교류를 형성하는 것도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조상현 국장 = 목포에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소재는 많다. 하이쿠가 식민지 내선일체용으로 시작됐지만, 해방 이후 한일 문화교류로 활용된 것처럼 목포 관광 활성화에 활용할 가치가 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가 남겨놓은 일본풍 건물 등이 비극적 장소 탐방에 활용할 가치가 있듯이 하이쿠 등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은 근대도시 목포의 관광 여행을 풍요하게 할 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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