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목포를 사랑한 사람들 7인의 이야기Ⅵ-메라콩 다리 박길수②]장애 딛고 불우한 사람 돌본 참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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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목포를 사랑한 사람들 7인의 이야기Ⅵ-메라콩 다리 박길수②]장애 딛고 불우한 사람 돌본 참 봉사자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3.01.1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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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방문객 무료 화물 보관소 설치 이용객 편의 증진 일익
목포역 불우청소년과 여성 위한 무료 쉼터 마련 사비 쾌척
짐 들어주기 길 찾아주기 등 목포역 봉사 파수꾼 일일일선

본지는 지역주의타파범국민실천위원회 배종덕 위원장이 집필한 목포 7인의 휴먼다큐 목포를 사랑한 사람들을 기반으로 ‘7인의 휴먼다큐 목포를 사랑한 사람들란 주제로 연재한다. 이번 연재는 배 위원장이 출간한 책에서 저자가 직접 작성한 글로서 61일 발행되는 신문부터 독자를 찾아간다. 30회에 걸쳐 보도될 이번 연재는 일곱 분의 인사 중 여석 번째 순서로 사회봉사분야 박길수 씨 편이 총 3회에 걸쳐 연재된다. 일곱 분은 종교복지분야 이남규 목사, 행정분야의 하동현 전) 목포시장, 사회복지분야 윤학자 여사, 산업경제분야 임광행 회장, 문화예술분야 차재석 전)목포예총지부장, 사회봉사분야 박길수 씨, 사회봉사분야 김환 전 백년회 이사장 순으로 보도된다.<편집자 주>

7인의 휴먼다큐 목포를 사랑한 사람들-메라콩 다리 박길수

무료화물 보관소 건립

멜라콩 다리가 생기자 목포사람들의 박길수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길수가 일약 봉사의 아이콘으로 뜨기 시작하면서, 박길수를 도돔바혹은 라콤파루시타라고까지 조롱했던 사람들까지도 박길수를 달리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박길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제2의 새로운 봉사거리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무료화물보관소의 건립이다. 당시 목포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장보따리와 짐 꾸러미를 들고 우왕좌왕 하는 일이 많았다. 이를 눈여겨본 박길수는 화물보관소를 건립할것을 결심하고 본인이 부담한 개인사채 4만원과 기부금 12천원을 들여, 1965331, 목포역, 구내에 아담한 무료화물보관소를 건립하였다. 해당기관인 목포역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을 멜라콩 박길수가 해낸 것이다.

무료화물보관소가 건립 되자 열차편을 이용해서 장사물건을 운반하던 목포역세권의 상인들이 대 환호를 보냈다. 그동안, 열차출발시간 전까지 화물을 보관할 공간과 남는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없었던 불편함을 무료화물보관소가 단번에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목포시 인근의 일로, 몽탄, 함평(학교) 멀리 나주(다시)시의 상인들이 큰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무료화물보관소는 목포역 주변의 상인들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해서 타 지역과의 장거리 상거래를 하던 목포시 인근 상인들에게도 큰 혜택을 주었다.

고교 재학시절에 무료화물보관소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 PNG그룹의 고호성회장의 무료화물보관소와 박길수에 대한 회고다.

당시 저는 목포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서울에서 발행되는 영어학습지를 목포시내 구독학생들의 가정에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영어학습지는 서울에서 출발한 야간열차 편으로 새벽에 목포역에 도착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 학습지를 수령해서 학생들의 집에 배달하고 학교에 등교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끔 늦잠으로 인해 기차도착 시간에 맞추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혹시 학습지가 분실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부랴부랴 역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역에 도착해보면 제 학습지는 한부도 분실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무료화물보관소함에 잘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박길수씨가 직접 보관해 놓으신 겁니다. 저는 그럴 때 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라고 머리 숙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박길수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눌한 말투로 그래, 고생이 많구나, 열심히 공부해라.”하셨습니다. 그때는 무료화물보관소가 박길수씨의 사비에 의해 설치되어 운영된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습니다. 5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무료화물보관소의 유용했던 점과 중증장애인 임에도 불구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시는 박길수씨의 따뜻한 마음씨에 대한 고마움은 잊을 수가 없네요.”

무료숙박소 건립

무료화물보관소가 건립되자 박길수는 평소 꿈꾸어 왔던 제3의 선행을 실천한다. 무료숙박소의 건립이다. 평소 목포역 보안관을 자처한 박길수는 갈 곳이 없어 역사를 배회하는 떠돌이 소년들이나 고향을 등지고 나온 섬 처녀들에게 최소한의 잠자리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역사 주변에는 갈 곳없는 청소년들이나 섬 처녀들을 납치하여 돈벌이를 하려는 불량배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길수는 이들의 안식처를 위해 목포역 관계자를 설득해 목포역사 부지 내에 조그마한 숙박소를 건립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박길수의 온정과 각고의 노력 끝에 1967년 목포역사 부지 내에 갈 곳 없는 떠돌이 청소년들을 위한 20평 규모의 무료숙박소가 건립되었다. 박길수는 무료숙박소 건립을 위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사비 5천원을 아낌없이 희사하였다. 멜라콩 박길수에게 딱 어울리는 봉사이자 박길수 선행의 완결판이었다.

목포역 관계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무료숙박소를 건립하는 도중에 박길수는 불량배들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심한 구타와 폭행을 당하였다고 한다. 불량배들에게 박길수는 최대의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화가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길수가 세상을 떠난 한참 후에 연극화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1891, ()세계마당아트진흥회가 주최하고 목포의 대표적 연극단체인 갯돌이 주관해서 멜라콩 박길수라는 타이틀로 막을 올린바 있다.

일년일선 일일일선

이상의 사례는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선행중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박길수의 선행은 이밖에도 시민들이 인지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사례들이 수없이 많다.

박길수는 선행을 하지 않고는 살아 갈수 없는 사람처럼 선행을 생활화 하였으며 차츰 선행중독증환자처럼 선행을 실천 하였다.

박길수는 이러한 선행의 실천을 위해 스스로 일년일선” “일일일선을 목표로 세웠다 일년일선의 대표적인 사례다.

박길수는 매년 년말이 되면 장애인과 불우한 이웃들을 돕기위해 생활필수품 전달식을 실시하였다. 본인이 준비한 사비와 독지가들의 후원을 받아서 모은 성금으로 구입한 생필품을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배포하였다.

일일일선을 위해서는 무슨일을 하였을까?

남의 짐 들어주는 일”,“애 돌봐 주는 일”, “길 안내해 주는 일”, “잃어버린 짐 찾아주기”, 등등 이러한 일들이 박길수가 실천하는 일일일선의 선행사례이다. 이러한 박길수의 모습에 대해 박길수만큼 불우한 소년기를 보낸 동양화가 청남 이원조씨는 박길수씨는 두가지면에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는 몸이 중증장애임에도 불구하고 자포자기 하지 않고 50여년간 쉬지 않고 일을 하였다는 점에서 많은 장애인들에게 귀감이 될만 하고, 또 하나는 그가 행한 모든 일이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고 모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하였다는 점에서 존경할만합니다.” 종교인도 아니고 사회복지가도 아닌, 오히려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도 박길수는 일년일선”, “일일일선을 실천한다는 목표로 희생과 봉사의 일관된 삶을 살았다. 박길수의 이러한 쉼 없는 봉사생활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박길수의 봉사활동에 대한 소식을 취재한 KBS가 박길수의 생애를 논픽션 드라마(멜라콩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으로 198917일 밤 1030분부터 60분간 방영되었다.)로 극화하여 198917일밤 1030분부터 60분간 전국에 방영하였다.

/다음호에 이어짐

-약력

목포 중.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 MBC PD / 에스콤 대표이사/ 제일기획(삼성그룹) 기획국장 / 통일민주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목포시지구당위원장 / 지역주의타파 범국민실천위원장 / 저서 나는 일하고 싶다’‘매향노라 불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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