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고통과 고독에 마음 기울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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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고통과 고독에 마음 기울여야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4.06.0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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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하자 북적거리며 눈물바다를 이룬 곳은 사고 현장에서 가까우면서 집단적으로 거주할 수 있었던 진도 실내체육관이었습니다.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몰려온 승선자들의 가족에서부터 관계 당국자들은 물론 봉사활동에 참여하려던 일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인파가 북새통을 이뤘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일부 구조자들이 나오면서 의료진이나 관계 부처의 공무원들이나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까지 운집하여 사고를 당한 당사자들의 가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서둘면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70여 명의 구조자들이나 그 가족들이 빠져나갔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곳을 방문하는 인파로 사람 수효는 줄지 않았습니다. 행여나 생존자의 구출이 가능할 것으로 믿었던 가족들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면서 체육관 마룻바닥에서 숙식을 이어가던 가족들은 옆에서 함께 슬퍼하고 비통한 눈물을 함께 흘리던 동병상련 자라도 있었기에 그래도 북받치는 서러움을 약간이라도 상쇄하면서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한 달이 지나자 생존자들의 구출은 완전히 절망에 빠지면서, 이제 시신이라도 안아보았으면 좋겠다는 또 다른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불행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한 구, 두 구의 시신이 바다에서 나오면 그거라도 다행으로 여기는 분통 터질 비극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면서 체육관 마루의 인원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여럿이 함께 당한 불행에 함께 서러워하던 슬픔은 상쇄할 분량이 적어지면서 더욱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갔습니다. 그처럼 북적대던 체육관, 시신도 찾지 못한 소수의 실종자 가족들은 이제 참으로 비통한 슬픔과 절대 고독에 잠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 문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는 것이야 이에 관례가 되었으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괴로움 중에 다른 사람들은 기뻐하는데 나만 슬퍼하는 것보다 더 큰 괴로움은 없고, 세상의 한스러움 중에는 나는 그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나를 까맣게 잊고 있는 것보다 더 한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答呂友濂東植)


다산이 강진 유배지에서 고향으로 해배된 뒤, 자신의 집 앞을 지나면서도 역적죄인이었다는 두려움 때문에 들르지 않던 옛날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입니다. 죽은 자식이나 가족의 시체를 찾은 것이 뭐가 그리 기쁜 일이겠습니까마는 시신이라도 찾아야 장례라도 치르고 다른 일이라도 시작하는 다행함이 있는데 대부분 가족들이 떠나고 극소수의 가족들이 커다란 체육관 마루에서 숙식하면서 시신 나오기를 기다리는 괴로움과 비애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시신 찾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떠나가는 그 슬픔, 그것도 기가 막히는 일인데 시신도 못 찾아 무한정으로 기다려야 하는 소수 가족들은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야 합니까. 그들의 고통이 바로 극한적인 괴로움이자 절대 고독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그들의 아픔에도 동참하면서 그들의 비애를 상쇄시킬 일에 사회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어야 겠습니다. 남은 기쁠 때 자신만이 슬프던, 그 큰 아픔과 고독에 괴롭던 다산을 생각해서라도 소수의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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