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 저 학교 그만 다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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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 저 학교 그만 다니고 싶어요!
  • 이경석 교장
  • 승인 2014.09.17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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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석 문태중학교 교장
K가 교장실을 찾은 것은 개학 후 삼일 째 되는 날, 오후였습니다. 그날 아침 등굣길에 만난 K는 유달리 침울해 보였습니다. 아침 인사를 건네고, 하이 파이브를 하는데도 표정이 없었습니다. 평소와는 매우 다른 태도였습니다. ‘어디 몸이 불편한 건가?‘

녀석은 의자에 앉자마자 울기 시작했습니다. 대뜸하는 말이, “교장선생님, 저 학교 그만 다니고 싶어요! 지금 집에 갈래요!”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몸이 아프길래!‘ 그러나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얘기였습니다.

줄거리는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같은 학급에 무리지어 다니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 녀석들의 위세에 눌려 힘들다했습니다. 불편함을 넘어서 두렵기까지 하다했습니다. ‘대체 무엇이 이 아이를 떨게 만드는 것일까?‘ 구체적인 얘기를 듣는 동안, 친구관계가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K에게는 단단한 관계의 친구가 없었습니다. 똘똘 뭉쳐있는 무리들 앞에 나약한 K였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그 무리의 힘에 스스로 오그라들었습니다. 급기야 그 무리만 보아도 공포감을 느끼게 되는 심리적 병약증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개학하자 더 심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만난 그 무리는 K가 감당하기에 버거웠나봅니다. K는 혼자이고, 그 무리는 다섯입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입니다.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교육은 관계입니다. 학교는 관계를 맺는 기술을 익히는 공간입니다. 교육이란 ‘사랑과 신뢰에 바탕을 둔 교사와 학생간의 깊은 관계맺음의 활동‘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정의를 좋아합니다. 자녀를 여럿 둔 옛날에는 가정 안에서 관계기술을 익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에서 그런 기술을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성공지수로 삼고 있는 NQ(Network Quotient: 관계지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단순히 타인과의 관계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 업무, 환경, 그리고 텍스트와의 관계까지 포함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해석 체계가 중요합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낸다는 말은 관계기술이 좋다는 얘기입니다. K는 심성이 곱고 선한 아이였습니다. 반면에 관계기술이 약한 아이였습니다. 관계를 깊히우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과 신뢰가 필요합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중요한 타자’와의 관계가 결정적입니다. K에게 있어 ‘중요한 타자’는 가정에서는 부모요,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입니다.

방학 전부터 학급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어쩌면 저렇게 말을 잘하나 싶었습니다. 그리도 서러운지 소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도 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아픔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상처가 곯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너를 아프게 한 것이 무엇이냐?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눈물과 함께 이어가던 말이 점점 밝아지더니 한 시간을 넘기면서 눈물이 멈추었습니다. 서서히 얼굴도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들어주기만 했을 뿐입니다. 단지 내가 K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입니다.

K는 웃으며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한 시간여 만에 세상이 바뀌었던 것입니다. 사무실 들어오기 전에는 슬픔의 세계였습니다. 나가면서는 희망의 세상일 것입니다. 걱정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K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바꾸어주어야겠습니다. K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내적인 힘을 길러야합니다. 한편으로 K에게는 ‘중요한 타자’가 필요합니다. ‘사랑과 신뢰‘가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특히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상담선생님께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똘똘한 선배 멘토도 소개해야겠습니다. 녀석이 또 다시 절망하지 않도록,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지금, 여기에 있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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