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왜 사라지나? (한국은행 목포본부장 김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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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는 왜 사라지나? (한국은행 목포본부장 김한중)
  • 김한중
  • 승인 2015.06.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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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 목포본부장 김한중
최근 신문, 방송 등 매스컴이나 인터넷에서 ‘전세 값이 미쳤다’거나 ‘전세가 사라진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전세 값이 오르고 있고 그나마도 전세물건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도대체 전세 값이 왜 이렇게 오르는가? 그리고 값이 오르면 공급이 많아져야 하는데 왜 전세물건은 사라진다고 할까? 경제원리에 반하는 듯한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사실 전세제도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주택임대차형태이다. 세계에서 제일 방대한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 ‘전세’를 영문으로 ‘Jeonse’라고 표기하여 한글 발음을 그대로 쓰고 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세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법적으로 인정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 라고 전해지고 광복 후 미군정시기인 1949년에 그동안 관습으로 성행하던 전세를 서양의 모기지(mortgage)와 유사한 형태로 인식해서 민법상 물권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전세는 우리나라의 주도적인 주택임차형태로 자리잡았다.

선진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의 일반적인 주택임차형태는 대략 3개월치 정도의 보증금을 지급하고 매월 사용료를 내는 월세형태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전세제도가 발달하였을까? 무릇 모든 제도라는 것은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다면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다. 결국 전세제도도 임대인(집주인)이나 임차인 모두에게 유리하였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세는 매달 월세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전세계약이 끝나면 보증금을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저렴한 가격에 주거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세입자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세입자에게 유리하다면 임대인, 즉 집주인은 불리한가? 과거 우리나라의  상황을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을 보면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계속 상승하였기 때문에 집주인은 집을 팔기보다는 계속 보유하면서 임대하는 것이 수익에 더 도움이 되었다.

또한 정부의 수출주도형 산업육성정책의 영향으로 은행에서 주택구입자금을 빌리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집을 사려는 사람들한테 전세는 개인간의 주택금융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럼 최근의 우리나라 여건은 어떠한가? 주택보급률이나 인구구조로 볼 때 앞으로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또한 예금이자율도 연 1%대로 초저금리 상황이다. 따라서 집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주택가격은 오르지 않고 전세금을 받아도 운용할 곳이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주택보유에 따른 감가상각, 재산세, 수리비용 등을 부담해야하는 상황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하여 집주인은 전세 값을 대폭 인상하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나 전세 값은 폭등하고 전세물량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저소득, 저수익률 현상이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는 데서 유래하였지만, 넓게 보면 사회 경제여건에 따라 새로운 제도가 과거 유력한 제도를 대체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주거형태에서의 전세비율은2008년 55%였으나 2014년에는 45%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과거 고성장기에는 전세가 유력한 임차형태였으나 저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월세형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이후에는 전세보다 월세가 표준적인 임차형태로 정착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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