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명의 길, 실크로드는 언제 시작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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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명의 길, 실크로드는 언제 시작됐을까?
  • 정거배
  • 승인 2016.04.1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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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제대로 알자 <56>
▲ 장건이 개척한 실크로드는 중국인들은 시안에서 출발해 지금의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됐다. 동양과 서양이 경제교류 뿐 만 아니라 문화 접촉이 본격 이뤄지게 됐다. 더구나 중국에서만 생산되던 비단이 유럽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됐다. 특히 비단은 당시 중국만이 유일하게 뽕나무 재배와 양잠을 이용해 생산하고 있었다.

▲ 인터넷전남뉴스 기자/중국언어와 문화학 전공
시진핑 정부가 추진 중인 육·해상 실크로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계기로, 고대 동서 문명의 통로였던 실크로드에 대해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은 2013년 9월과 10월 시진핑 주석의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순방기간 중 처음으로 제시됐다. 실크로드는 동양의 대국인 중국과 서양이 만나는 문명과 물자 교역로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시진핑 정부는 팍스 아메리카와 대비되는 일대일로라는 전략을 구상해 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대상 국가도 동남아시아부터 시작해 동북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은 물론이고 유라시아를 넘어 멀리 아프리카까지 60여 개국에 이르고 있다. 중국정부가 밝힌 구체적인 방법은 해당국 간 정책적 소통, 통로 연결, 무역 활성화, 화폐 유통을 통해 마음과 마음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는 우선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첫째, 실크로드 해당국에 고속철도를 비롯한 SOC를 건설하는 등 해외투자를 통해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 과잉을 해소하려고 한다. 둘째, 중국내 생산능력 과잉의 문제를 해소하려고 한다. 철강과 시멘트 등 과잉생산 능력을 이들 국가에 수출함으로써 자국 내수시장의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면서 반대로 천연가스와 석유, 비철금속이 풍부한 이들 국가의 원자재를 대금으로 받는 등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문명 교역로인 실크로드는 언제 개설됐을까? 실크로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럽이 서로 물자들이 오고가는 교역로였다. 원래 실크로드라는 말은 그 당시부터 사용되던 용어는 아니다. '실크로드'는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1877년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연구하던 중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었던 것에서 착안해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쎄(Seiden Straße)로 이름 붙인 것이 계기가 됐다. 중국어로는 쓰처우즈루(絲綢之路)라고 부른다.

역대 왕조들, 북방의 이민족 때문에 골머리

실크로드는 먼저 2200년 전 중국대륙 북방을 차지하고 있던 흉노족을 설명해야 이해가 쉽다.
흉노족은 농사를 짓기 어렵기 때문에 유목생활을 했다. 북방의 추운기온은 그들에게 정착생활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목생활은 초지를 찾아 이동을 주로 하다 보니 어린 아이들도 말을 잘 다룰 줄 알았다. 기동성이 뛰어나 전쟁 시에는 상대를 압도했다. 중국대륙에서 천하 통일이 있기 전인 기원전 6세기 광활한 몽골고원 일대에 흩어져 있던 유목민족들은 하나로 뭉친다. 부족 단위로 흩어져 살아왔던 유목민족들이 하나의 국가형태를 갖추다보니 강대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혼란한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한 그 무렵, 북방의 유목민족국가 흉노가 출현했다. 기동력이 뛰어난 흉노는 중국대륙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흉노의 남침에 진나라에 이은 한왕조도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통일제국 진나라는 만리장성을 개축해야 할 정도로 흉노가 위협의 대상이었다. 15년 만에 진나라가 무너지고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고 나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나라 초기 깐수성 란저우에서 둔황에 이르는 하서주랑은 흉노 등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서역과 교역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한나라 조정은 북방의 강력한 세력을 흉노를 제압하기 위해 때로는 선제공격하기도 했다.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한나라 고조 유방은 산시성 핑성에서 흉노와 전투하는 과정에서 포위됐다가 가까스로 구출되는 일도 발생했다. 흉노와 형제관계를 맺으면서 한나라가 흉노에게 공물을 바치고 공주가 흉노의 왕 선우에게 시집가는 등 굴욕적인 외교관계가 형성됐다.

장건, 실크로드 역사를 만들다

한나라 무제 때 장건(BC ?~BC 114)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중국 역사서에 서역과 통하는 실크로드를 개척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그 당시 서역이라고 하면 지금의 신장 위구르와 ‘스탄’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금의 중앙아시아 나라를 가리킨다.  한 무제 때도 중원을 위협하는 흉노를 제압할 묘책을 짜내는데 골몰했다. 무제는 흉노에서 투항한 사람들을 직접 심문했는데, 흉노가 서쪽에 근거지를 잡고 사는 월지라는 종족을 공격해 왕을 살해했으며, 그의 머리를 술잔으로 사용하는 등 월지족은 흉노를 원수처럼 여기고 있으나 함께 공격할 세력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월지족은 지금의 깐수성 서쪽과 칭하이성 일대에 살고 있었다.

무제는 이 말을 듣고 월지에 사신을 보내기로 하고 황제 수행원 직책을 갖고 있는 시종관 장건을 선택했다. 그러나 월지로 가는 길을 흉노의 영내를 통과해야 하는 위험한 여정이었다. 기원전 138년 장건 일행의 사신단은 월지를 향해 한나라 땅을 떠난다. 그러나 흉노의 영내로 들어간 장건 일행은 흉노의 추장 선우에게 붙잡힌다. 장건 일행의 목적지가 월지라는 사실을 알아낸 흉노의 추장은 이들을 여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붙잡혀 흉노 영내에서 살아야 했고 장건은 흉노여인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10년 째 되던 해 장건은 가족과 함께 서쪽 월지족이 있는 쪽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수십 일을 걸어 지금의 파미르 고원 일대 대완이라는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장건 일행을 면담한 대완의 왕은 이미 한나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물자가 풍부하고 재물이 많다는 한나라와 내심 교역하기를 바라고 있던 터였다.
장건은 월지족을 찾아간다며 그간 사정을 설명하면서 대완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대완 왕은 신하들로 하여금 장건을 지금의 키르키즈스탄지역인 강거라는 나라로 안내하게 했다. 강거라는 나라는 실크로드 문명사에 기록된 페르시아의 소그드족이다. 장건 일행은 강거로 들어가 월지족과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월지의 왕은 흉노와 전쟁에서 패하면서 죽임을 당했고 부인이 왕이 돼서 통치하고 있었다. 문제는 흉노와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월지족은 흉노와 패하면서 더 서쪽으로 밀렸으나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비옥하고 물자도 넉넉해 부디 흉노에게 복수할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장건은 한나라와 연합해 흉노족을 제압하자고 설득했으나 그들은 응하지 않았다. 결국 빈손으로 한나라로 돌아오게 됐다. 그러나 장건 일행은 귀국 길에 흉노에게 다시 붙잡힌다. 천신만고 끝에 흉노 영내에서 탈출해 기원전 126년 한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기원전 138년 월지를 향해 길을 떠난 지 13년 만이었다. 함께 출발했던 100여 명 가운데 돌아온 이들은 장건 등 2명 뿐이었다. 장건이 월지와 연합을 성사시키지 못한 채 돌아왔지만 소득은 있었다. 한나라 서쪽에 그동안 소문으로 들었던 대완, 대월지, 대하, 강거 등 나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유럽으로 향한 길을 열다
      
그 뒤 한나라 조정은 다시 기원전 119년 장건을 서역으로 파견한다. 이들 나라와 교역 등 우호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흉노를 고립시키고 압박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300여 명의 인원과 대규 물자를 실은 사절단은 대완, 강거, 대월지, 대하 그리고 현재 이란의 북동부에 해당하는 나라까지 순방하게 된다. 출발 4년 만이 기원전 115년 장건 일행은 한나라 수도 시안(장안)으로 돌아옴으로써 서역과 소통하는 교역로가 열리게 된다. 이것이 실크로드가 됐다. 장건이 개척한 실크로드는 중국인들은 시안에서 출발해 지금의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됐다.

동양과 서양이 경제교류 뿐 만 아니라 문화 접촉이 본격 이뤄지게 됐다. 더구나 중국에서만 생산되던 비단이 유럽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됐다. 특히 비단은 당시 중국만이 유일하게 뽕나무 재배와 양잠을 이용해 생산하고 있었다. 중국은 춘추시대 이전 상나라 시대부터 비단과 자수 제작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또한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음악, 춤, 회화, 조각, 건축기술 등의 예술과 천문, 역학, 의약 등도 중국으로 들어왔다. 여기에다 불교와 마니교, 그리고 기독교의 일종인 경교까지 중국에 전해지게 됐다. 중국에서 세계 최초 발명한 화약과 나침반, 제지술 등이 실크로들 통해 유럽으로 건너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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