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동 보리마당 할매들의 평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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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동 보리마당 할매들의 평상이야기
  • 최지우
  • 승인 2016.12.2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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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하요~ 혼자 심심하니 있지 말고 평상으로 나오제”

서산동 할매들이 만들어가는 평상위의 작은 세상
집안일, 자식일, 자신들의 일상 공유하는 교류의 장
지난 추억 곰삭히며 현재 수용 더 좋은 미래 기대해


 

 

오늘도 이곳 온금동 보리마당 할머니들은 하나 둘씩 평상으로 모인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연일 헉헉대며 지내던 지난여름 사방이 뚫린 이곳에도 습기 가득한 높은 온도의 공기가 미동조차 하지 않아 평상에 둘러않은 할머니들 손에는 부채가 하나씩 들려있다. “아까 바람이 좀 부는 것 같더니, 당최 꼼짝도 안하네 징하게 덥네” 하며연신 부채를 부친다. 서산동 보리마당 그늘진 곳에 자리 잡은 평상은 이 동네 어르신들의 수다 방앗간이자 옛 우물터 역할을 한다. 

날마다 모이다 어제 안 나온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오늘 안 나온 할머니는 뭐하나 궁금해 한다. “나는 어제 겁나 피곤해서 빨리 잤어” “골목 끝집 새며느리는 동네 사람들 얼굴을 빤히 보고도 인사도 안하데” “뭣 하러 그런 것을 신경 쓴당가 요세 젊은 것들이 인사하면 고맙고, 안하면 그런가보다 하면 되제 그래도 우리 아들한테는 누구네 아들이요~하고 꼭 인사하라고 당부 한당께”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릴라 치면 할매들의 수다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진다

“오메 아침에 죽고살고 고추를 말려놨더니, 오늘 소나기 땜시 거의 말라가던 것이 다 젖어 불었어. 아무래도 하나님은 내편이 아닌가벼” 하는 원망 섞인 푸념을 한다.

다른 할머니도 “나도 다섯 시에 일어나서 토란대를 널었는디 잘 마르다가 비를 좀 맞았어. 저번에도 그러더니 요상하게 내가 토란대만 널면 비가 오네. 땡볕 뜨거워도 가을걷이 한 것은 바짝 말리는 것이 최고여”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할매들의 삶의 지혜다.

제일 고령이신 86세 할머니는 당신이 소낙비 오기 전 앞집 고추 말려놓은 것을 치우라고 일러줘서 소낙비에 고추가 쫄딱 젖는 참상을 면했다고 자신의 이웃에 대한 특별한 관심도 알린다.

이렇듯 할매들의 평상에선 매일 만나도 매일 다른 듯 다르지 않는 이야기가 끝없이 계속된다. 수다삼매경으로 외로울 틈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서산동 보리마당 평상에 모이는 할매들의 얼굴엔 생기가 돌고 건강하다. 

할매들이 가장 활기차고 행복해 보일 때는 자식 자랑 할 때다. 

광주 사는 큰 아들이 바쁜 일제치고 삼계탕 먹자고 들려서 먹었다고. 복날가면 대접을 제대로 못 받으니 하루 전날 가서 먹고 왔다는 한 할매의 자랑에 너도 나도 한 가지씩 자식자랑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동네 누구네 제사가 있는 날은 평상에서 작은 잔치가 벌어진다. 

떡, 나물, 식혜 등 고루고루 내온 제사 음식으로 할매들만의 즐거운 수다와 함께 살아있음을 만끽하게 된다. 독특한 할매들의 음료수 의식 “부라자~” 부라보를 재미나게 바꿔서 건배를 한다. 마시기 전에 ‘브라자’~~ 해야 한단다. “팬티하지 말고 브라자!!” 위트가 넘치는 할매 개그다 “상진이네를 위하여~애경이네를 위하여~” 식혜 한 잔으로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며 샴페인처럼 우아하게 마신다. 

맛있게 먹고 나면 제사의 주인공에게 “누구네 할아버지 잘 먹었습니다~” 인사도 빼놓지 않는다. 나중에 나오신 할머니들은 저녁 먹고 나왔는데, 이런 잔치음식이? 하며 밥 먹지 말고 나올 걸 아쉬워한다. 

평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방파제쪽 공사에 대한 할머니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아니 근디 저기 바닷가 방파제쪽을 평화광장처럼 꾸미고 주차장 만든다고 하드랑께”

“뭔 주차장?” “차 세우는 주차장을 만든다드만” “음마! 염병하네~”

“누가 얼마나 차를...(여기다 댄다고...)”

“주차장 해놓으면 만약에 바람이 불면...태풍 오면 차 다 때려불제...‘

“아니..그냥 놀 때 주차하것지”

“그랑께...암 것도 없는디 주차장만 만들면 뭐하냐고~ 차를 멈춰놓고 뭐하냐고~”

“여기를 시에서 사서 공원으로 꾸미면 좋것다! 이훈동 공장..”

“그라믄 좋제~~”“시에 돈이 없대~”“아이...도로나 내면 쓰것다...개발은 안 되더라도...”

“그랑께 말이다!” “공원 만들면 좋것소..여기다...먹자골목도” “도로가 이리 나면 다 공원으로 들어가...뒷이...” “아이고 시가 빚만 창창이 얹었다는디...”“개발되면 얕찬데 가서 한번 살아봐야제 높은 데서만 사니까 징글징글해 여그는 올라오기가 힘든께 그라지...그래도 공기는 좋아~”

“미란네 집은 뜯길라 하면...허....이렇게 큰 집이 저기 얕은 데 있어야 한디...이렇게 놓은 데가 있어갖고..”

“누구집? 응~ (미란네 집은) 별장식으로 지어 부렀어”

“어떻게 저렇게 지었을까~”

‘안에 가서 보믄 그렇게 좋아~“

“안에 겁나 넓어~이층도 있고....”

“뚝 띄어다가 저 아래쪽에 내려다 놨으면 좋것네~”

 

요즘엔 서산동 할매들도 다들 핸드폰이 있어서 자식들과 목소리로 안부를 묻고 필요사항을 체크한다. 옛날 방식 평상에 둘러앉은 오래 살아 온 할매들에게서 울리는 최신식 이동전화가 변해가는 세월을 일깨워주고 있다.

“팔월(추석) 돌아온다고 시장가자고 애들이 전화했어?”

“아니~ 내가 열무 한 단 담은다고 하니까, 마트에 가면 이만한 것이 어찌게나 비싼지 ....못 산다고 해~ 나 살 때 같이 산다고..”

“청호시장에 이만한 것 팔천 원...또 박스에 담아 펴놓은 건 만 이천 원..”

“그런 것(박스에 담은 열무)이 맛있어~ 부드럽고 자잘한 것...그런 것이 맛있어~”

“그래그래”

“우리 나이가 적었을 때는 명절 돌아오라고 손가락 하나씩 세면서 기다려도 안 돌아오더니...지금은 달려부러~”

“응 (어렸을 때는) 밤낮 손꾸락으로 시어~ 허허허 옷 한복 한 벌이라도 해놓으면... 자랑하고 돌아다니고...”

“맞어~”

“옷 하나 사면 입었다 벗었다~ 허허”

“응~~허허허”

“우리는 ..팔월(추석) 오면 여기가 지금은 (마을 뒤 유달산 자락) 이렇게 우거졌는데, 그때는 바우가 있었어. 이 뒷산으로 장만한 것 수건에다 싸갖고...한가치 수건에다 싸갖고 저 산에 가서 먹고 놀고 그랬어. 여가 모다 친구들이제~ 다 (여기서)산께. 쩌거...강강술래 한다고 자락치매 딱 입어서 허리에 꺼멍 허리띠를 매고 삘간 댕기 따갖고 저 조선내화 앞에서 놀고 그랫제. 진짜 재미 졌었어”

서산동은 독특한 공간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좁고 길고 경사진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삶의 최소화된 구성은 매우 흥미롭고 기발하게 다가왔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되묻게 된다. 흔히 삶의 생동감이 압축된 현장인 시장에 가면 마음에 위안과 힘을 얻는다고들 한다. 온금, 서산동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손때 묻은 창작수준의 생활소품을 보며 따뜻함과 어여쁨을 느끼게 된다.

최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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