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장판사의 조용한 커밍아웃-합리적 개인주의자의 사회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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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장판사의 조용한 커밍아웃-합리적 개인주의자의 사회를 꿈꾸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1.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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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목포시민신문]한국사회에서 개인주의자란,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저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 또는 양보나 협동심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는 공동체정신 부재자와 거의 동일하게 오해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개인주의자라고 선언까지 하는 건 좀 위험해 보인다. 다소간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저자 문유석은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최대 야심’인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다. 이 책은 그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인 sns나 신문 등에 기고한 자신의 경험과 우리사회에 대한 단상들의 모음집이다.

“나는 사람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라는 다소 위악적인 고백으로 그의 선언은 시작된다. 우습게도 이 시니컬한 첫 문장은 묘한 안도감을 준다. 선언문 특유의 비장미나, 웅변조의 강요가 제거되어서 인지는 모르지만, 차마 대놓고 발설 못한 속마음을 대신 표현해 준 것 같아 후련한 기분마저 든다. 책을 펼쳐 반쯤은 정신없이 읽었고, 나머지는 아껴가며 야금야금 읽었다.

그는 ‘한국사회는 정치제도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인 개인주의는 제대로 체화되지 않았으며, 우리사회의 전근대적 집단주의 문화가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라고 진단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꾼다. 그가 말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양보하고 타협해야 함을 깨닫는 합리성을 지니며, 자신의 비합리성까지 자각할 수 있고, 사회 속의 타인과 연대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개인주의, 합리주의, 연대성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라고 정의하며 개인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해 또는 편견에 통쾌한 한방을 날린다.

사실 자신의 비합리성까지 자각하는 합리적 개인이 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객관화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나만큼 상대를 존중하며 타협하고, 연대하는 것 역시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이 모든 것을 나의 행복을 위해 합리적인 선에서 타협하고 연대하고자 한다.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커밍아웃은 쇼킹하다. 하지만 한꺼풀 확 벗어던지고 내어 놓는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일갈들에 ‘아하!’를 연발하며 공감하게 된다. ‘누구나 생각은 하면서도 튈까봐 하지 않는 이야기’를 논리정연하게 풀어내고 있다. 칼럼 자체도 재미있지만 곳곳에 인용된, 주제를 넘나드는 다양한 책들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개인의 서재를 소개하는 포털에 그의 서재를 낱낱이 파헤쳐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격하게 강요하지 않는 그의 선언을 읽다보면, 독자도 그의 「개인주의자 선언문」에 살포시 이름 석 자 얹으며 은근슬쩍 서명이라도 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살그머니 손잡고 연대하고픈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조금은 소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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