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작가 이성관의 두근두근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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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작가 이성관의 두근두근 옛이야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2.09.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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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소재 아름다운 우리 동요
▲ 이성관 작가

할머니

주름살 은머릿결 손마디야 거칠어도
손길은 다사로와 봄날 아침 양지쪽
손자들 느는 재롱에 눈꽃 환히 핍니다

깨물어도 싫잖을 듯 안아주고, 얼러주고
떼를 써도 재롱인 듯 치마폭 감싸주고
어쩌다 아빠 화내면 아서라, 말려주고.

비 온 날은 아픈 허리도 씻은 듯 나은 걸까
때 놓칠까, 산밭 들밭 모종 내고, 거름 주고
흥건히 온 몸 젖어도 이랑마다 푸른 꿈.

밤마다 졸라대면 ‘옛날옛날 옛적에―.’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자장가가 되었지
얘기 속 산짐승들이 꿈 속 함께 노닐고.

아파도 괜찮은 척 걱정될까 숨기시고
고기반찬 오른 날은 자꾸만 밀어내고
누군가 앓아누우면 머리맡에 잠 안 자고

식구 중 밤 깊어도 소식없이 들잖으면
숟갈 아예 안 드시고 눕지도 않으시며
오가는 발길마다에 귀 세우는 할머니.

옷 다숩게 입어라, 찻길 조심하여라
할머니 눈길에는 아빠도 아기실까
사랑에, 아빠 빙그레 발길 한결 가볍고.

닳도록 쓸고 닦아 온 집 안이 거울같다
꿀벌처럼 개미처럼 자식 위해, 할머니
가없이 태운 사랑이 햇살보다 다숩다.


고인이 되셨건, 생존해 계시건 할머니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누구나 눈시울이 젖어들 때가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에서 열까지 당신은 없고 자식만 있는. 물불 가리지 않고 오직 자식사랑에 온 생을 다 바친 삶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생각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고, 아울러 울컥한 감정과 함께 가슴이 훈훈해 지는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

위 작품은 80년대 중·후반. 당시는 해상교통이 여의치 못하여, 많게는 여섯 시간 이상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외딴섬에 근무하면서 하숙집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저는 할머님을 일찍 여의어 기억이 없기에?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그리며 쓴 작품(동시조)입니다.

70년대 전후까지만 해도 어느 가정이나 자녀들이 평균 대여섯 명으로, 한 가정에 10명 안팎의 식구가 대부분. 그 많은 대가족의 빨래 하며 모든 걸 자급자족해야 하는 음식준비. 거기에 가족들의 옷가지를 만들기 위한 길쌈 등의 집안일과 적지 않은 농사일.

지금 생각하면 당시 시골 형편은, 거의 대부분이 가난을 면치 못하는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감히 초인적(?)이라 할 만큼 많은 일들을 감당해야만 했기에, 시골의 할머니나 어머니의 손마디는 남자 이상이었으며 거칠기가 말이 아닐텐대도 자식들에게 그보다 더 따뜻한 손길이 어디 있으며, 그렇게 힘든 생활 중에도 손자만 보면 싱글벙글 싱글벙글.  이 세상 가장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시던 우리들의 할머니.

긴 가뭄 끝에 단비라도 내릴라치면 옷이야 젖든말든 환히 웃으며 들로 나가시던 모습 하며, 철없어 바보같이 눈치 채지 못했던 ‘고기반찬 오르는 날’의 픙경에, 아무리 자식이 나이 들어 아들 낳고 딸을 낳은 어른이 되어도 부모님 앞에는 아이로만 보여, 집 밖을 나설 때마다 이런저런 당부를 참지못하는 우리 모두의 조부모님, 부모님!

당신이 계시어 저희들은 행복합니다.

오늘의 저희가 이렇게 설 수 있음에 손 모아 머리 숙이며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 어디서나 진실되게 행동하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제가 동요에 발을 내딛게 된 동기와 지금까지 경사(?)가 있을 때마다, 청중들에게 말씀드리곤 했던 어머님 이야기를 다시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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