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 강강술래보존회 김순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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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 강강술래보존회 김순례 회장
  • 최지우
  • 승인 2017.02.2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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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시 강강술래 보존회 김순례 회장

[목포시민신문=최지우기자]강강술래는 강강수월래라고도 하며, 1965년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되었다. 예로부터 우리 지역을 비롯해 신안 섬들마다 고유한 강강술래가 전해질 만큼 널리 행해졌지만 현재는 해남군, 진도군 신안군 일부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 같은 연중행사 때, 달 밝은 밤 부녀자들이 모여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과 노래를 함께 하는 원무형태의 춤이다.

강강술래의 역사는 그 기원이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간다. 중국 고대문헌에 의한 강강술래의 역사는 무려 2,000년 전의 마한의 농촌 풍습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조선시대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사놀이로 창안했다고도 한다, 달맞이와 추수 감사 의식에서 나왔다고도 하며, 한자어로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에서 강강수월래라는 이야기도 있다.

강강술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문헌은, 조선 말기 정만조(鄭萬朝)가 쓴《은파유필》이 있다. "높고 낮은 소리를 서로 주고받으며 느릿느릿 돌고 돈다. 한동안 섰다가 이리저리 돌아가네. 젊은 여인들의 마음에는 사내 오길 기다리네. 강강술래를 하니 때맞추어 역시 사내들이 찾아오네. 이날 밤 집집마다 여자들이 두루 모여서 달을 밟으며 노래하는데, 한 여성이 선창을 하면 여러 여성들이 느릿느릿 소리를 받기를 강강술래라 한다

원래는 강강술래의 역사와 유래가 여성을 상징하는 동그란 모양과 함께 밤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야하므로 힘이 많이 들어서 젊은 여성들만 할 수 있었고 그것은 가임 연령 여성들의 특권이기도 했다는 설도 있다.

섬에서의 강강술래는 엄격한 유교문화에서 젊은 처자들에게 허락된 하룻밤의 공식적인 공개데이트 자리였으며,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구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이기도 했다.

▲ 강강술래 하는 모습.


이렇듯 오랜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담고 있는 강강술래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우리지역의 민속놀이로 점점 사라져 가고 잊혀져 가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는 뜻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목포시는 지난 4일 유달예술타운에서 강강술래 회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통문화 강강술래 보존회(회장 김순례) 발대식이 있었다

보존회 발족은 다도해 지역에서 전승 보존된 강강술래를 보존하여 목포의 전통 문화예술 정신을 계승하고 예향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함이다.

강강술래보존회 김순례 회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김순례 회장은 목포 양지회, 바르게살기회, 생활개선회, 신목련회 등 지역 여러 단체를 이끌어 오면서 나눔과 봉사로 한 평생을 살아온 봉사인이다. 비금이 고향인 김회장은 26세 때 목포로 이주하면서 부터 봉사를 시작했다. 많이 가져서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나누는 소박한 봉사였다. 티 나지 않고 유별하지 않게, 음지를 찾아다니며 40여년이 넘게 봉사를 하며 지역을 이끌어 오고 있다. 강강술래의 시작도 봉사활동을 하며 시작되었다.

목포시 생활개선회 회장을 엮임 하던 중 김회장의 주선으로 경북 영주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렇게 시작된 영주시와의 자매결연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영주시와 교류를 하게 되면서 목포를 위해 무엇인가 뜻 깊은 것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처음 강강술래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활달하고 리더십이 강한 성격이었던 김회장은 여러 사람들을 이끌면서 지역 특색을 살릴 수 있는 강강술래가 자신한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처음 강강술래를 해야 겠다 결심하면서 진도의 강강술래문화재를 찾아 진도까지 다니면서 강강술래를 배웠어. 처음엔 소리가 되지 않아서 애먹었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목이 터지면서 소리가 나오드라고.
그렇게 강강술래를 처음 시작 했어”

김순례 회장은 칠순을 앞두었지만 아직은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정확한 기억력으로 강강술래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혼자서 강강술래 교습을 받던 김회장은 신안군의 지원을 받아 재목 신안군향우회 회원들과 함께 강강술래단을 조직하게 된다.

처음엔 진도에서 선생님을 초빙, 강습을 시작했지만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래서 김회장이 직접 프로그램을 짜고 소리도 하면서 강강술래를 지도했다.

그러다 목포시 바르게살기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목포에서도 강강술래단을 조직강습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던 2009년 해남 우수영에서 열린 2009 명량대첩축제 제2회 전국강강술래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참가 권유를 받고 경험이 없어서 망설였지만 참가 결심을 하고서는 철저히 준비를 했제. 프로그램 구성도, 안무도, 소리도 다 내가 하면서 열심히 연습을 했어, 그런데 막상 경연장에 가보니 화려한 차림새의 다른 팀을 보니 기가 죽더라고, 그런데 다른 팀들의 프로그램을 보니 우리강강술래가 훨씬 좋았어. 마지막 대상을 발표가 늦어지면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마지막에 우리팀을 호명하는데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 그동안 고생했던 것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많이 울었어”

전국적으로 강강술래지도자의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목포시의 지원이 없어지면서 강강술래는 그렇게 조용히 멈춤 상태에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다시 강강술래보존회를 시작하며 김회장의 감회는 새롭다. 

지난 4일 유달예술문화타운에서 열린 강강술래 보존회에 강강술래 강습을 하기 위해 찾아온 젊은이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매주 2~3회씩 연습을 통해 4월에 있을 유달산 꽃축제와 이순신 탄신축제에 그 결과를 선보일 계획이다.

김회장은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기능을 후배 양성을 위해 쓰고 싶다. 아직은 내가 건강하니까 교습이 가능하다. 그리고 남을 도와 줄 수 있어서 항상 감사하다. 앞으로도 사는 동안  보존회를 이끌어 갈 것이며 어려운 이웃들과도 더불어 살고 싶다. 현재 하고 있는 봉사도 후배들과 계속 할 것이다”고 했다.

봉사는 내가 즐거우니 하는 것이고, 남을 돕는데 뭐가 아까울 것이냐는 김순례 회장은 요즘도 새벽 2~3시면 하루를 시작한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나눌 줄 아는 넒은 마음으로 하루 일과표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적는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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