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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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풍경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3.1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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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희(전 정명여고 교사)
▲ 양승희(전 정명여고 교사)

3월 4일 토요일 아침 8시, KTX 열차를 탔다.

차창으로 내다 본 풍경은 아직 겨울빛으로 황량하다. 시속 300 km를 달릴 수 있다는 열차는, 먼지로 잿빛을 띠고 있는 앙상한 나무나 덩굴 줄기를 휙휙 날려버린다. 한참 창밖을 내다보다가 작년 일 년 동안 목포대 평생교육원에서 수업을 들었던 ‘들꽃교실’의 카카오톡을 열었다.

황호림 교수님이 승달산에서 봄소식을 전했다. 지천으로 핀 노란 복수초를 동영상으로 찍어 한참동안 볼 수 있도록 올리셨다. 복수초는 큰나무의 이파리들이 자라기 전에 온산을 노랑색으로 채우려는 듯 앙징맞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승달산의 이른 봄 물소리와 텃새인 박새 소리도 들려주신다. 산속의 냇물 소리는 청아한 아이들 목소리다. 박새의 맑은 소리도 피곤을 가시게 하는 치유의 소리가 된다. 선생님은, 지금 산속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자연은 어머니의 자궁이다. 자궁은 생명을 기르는 아늑한 배려의 장소로서, 안전하게 자랄 때까지 모든 것을 다 주고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더 주지 못해 안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찾아가는 것일 게다.

송정리에서 열차는 잠깐 정차했다. 20 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차에 오른다. 나이 드신 어른들 속에 젊은이들도 몇 오른다. 나이 드신 분들의 정장차림을 보니 아무래도 결혼식에 참여하는 인척들인 것 같다.  뒷줄에 앉으신 나이 드신 아주머니는 처음으로 ktx를 타신 모양이다.

“세상이 좋긴 하네. 이런 기차를 타 보다니.”

하긴, 무궁화나 새마을만 타본 어른이라면 시간당 300km에 가깝게 달리는 기차의 맹위에 신기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에서는 남자 어른들과 젊은이들이 시국에 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눈다. 어른들의 소리는 높고,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조금은 낮으면서 조심스럽다. 이분들은 광명에서 우르르 내렸다.
용산역에서 내렸다. 치과 의사를 하고 있는 제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자는 먼저 인사동으로 안내했다. 골목길 해설사여서, 서울의 골목길을 보고 싶어 부탁했던 것이다. 아침과 달리 바람이 살랑살랑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발걸음이 가볍다. 가족이나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흥겨웠다. 겨울을 통과한 것일까? 먹을거리 앞에는 사람들이 늘어섰다. 우리는 미술 전시장을 들락날락하면서 즐겼다. 백범과 안중군 의사를 비롯한 유화로 제작한  초상화는 요즘의 시국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먹거리가 즐비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수도약국 골목 인사동 8길 정선할매 곤드레밥 본점’을 선택했다. 짜지 않은 게장과 다양한 나물, 튀김과 무한리필이 가능한 곤드레밥을 먹고 나오면서 좋은 사람들과 다시 와야지 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일인당 만원이면 비싼 것도 아니어서 점심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나중에 찾아간 북촌의 기와집들보다도 더 연륜이 있어 보였고 소박한 건물들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가회동 북촌의 주택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특히 한복을 빌려 입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로 몰려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남녀가 서로 한복을 바꾸어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한복을 입고 미팅하는 여러 쌍의 모습은 단순한 흥미 위주의 볼거리만은 아니어서 멋져 보였다.

북촌길을 올라갈 때만해도 한산했던 헌법재판소는 이미 경찰차로 방호막을 쳐놓고, 경찰들은 조를 지어 만일의 사태에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광화문으로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일상이 된 나날들. 가슴이 저린다. 나이드신 아저씨는 맨앞에 서서 노래에 맞춰 박근혜 탄핵을 외친다. 사람들은 물밀듯이 그곳으로 오고 있다. 이미 여성들의 길거리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 본 행사 시간이 이른지라 무대는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대형 스피커에 가까이 가자, 악기 소리와 노래 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린다.  쿵, 쿵, 쿵, 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지금은 어떤 노래도 눈물난다.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서. 익숙한 노래는 우리의 익숙한 감정을 건드린다. 풍경과 음악과 기억이 하나가 된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농단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국민이, 혹은 시민이 가만히 있으면, 몇 사람이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것. 우리가 뽑은 대표가 수천 년 전의 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헌법을 농락하고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 때문에 다수의 국민은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소중한 시간과 재원을 낭비할 수 있다는 것. 가장 슬픈 일은 그들은 슬픔이나 책임이나, 최소한 도덕성도 없다는 것. 그 때문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가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서울은 또 하나의 거대한 자궁이다. 언제든지 건전한 생산이 가능한 곳. 떠났다가 돌아오고 다시 떠나는 곳. 대한민국의 심장, 아니 어머니의 자궁. 그런 의미에서 서울은 다른 나라의 수도와는 다르다. 멋지다.
그 날 저녁 우리는 다른 제자가 준비한 양평의 호텔에서 보냈다. 물에 목마른 서울 사람들이 양평의 물을 보기 위해 한 시간 가까이를 소비하여 찾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강물로 마음을 채우고 돌아간다고 한다. 넉넉하게.

나는 어느 곳에서나 바다가 보이는 목포가 새삼스레 소중해졌다. 그리고 거리거리마다 목포를 만나려고 오는 사람들이 넘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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