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오후를 살아가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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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를 살아가는 기술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3.2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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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준 동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조 준 동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어느 자치단체의 국장으로 퇴직하신 이와 식사자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아직 정년이 남아 있는데도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명예퇴직을 신청해 지역 내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과수원을 가꾸고 농토를 구입하는 등 치밀하게 퇴직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연금도 노후를 살아가기에 충분하였고 자녀들도 이미 독립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하였다. 모든 것이 잘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가 퇴직하고 느꼈던 당혹감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생의 정점을 지나고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가는 것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늙어 간다는 것은 순간 순간 당혹감과 절망감을 가져다 준다. 어제 할 수 있었던 것을 오늘 하지 못하게 되고, 오늘 할 수 있었던 것을 내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보라.

영화 [은교]에서 홀로 사는 노시인 이적요는 이렇게 말한다. "너의 젊음이 상(償)이 아니듯, 나의 늙음 또한 죄(罪)로 받은 것이 아니다." 지금 20대 청춘이건 40대 중년이건 언젠간 우리 모두는 늙는다. 젊음의 절반이 지나면 나이듦의 절반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이듦에 남녀의 구분은 없다. 그러나 인생의 오후의 고단함은 남녀가 차이가 있다. 40대가 되면 육아와 가사에서 벗어나 인생의 후반전을 차근히 준비하는 여성들과 달리, 대부분의 남성들은 노후를 예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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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몇 살로 되돌아가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 여성은 30대, 남성은 50대를 주로 꼽는다고 한다. 여성에게 30대는 출산과 육아로 정신없는 때이고, 남성에게 50대는 정년 직전,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입이 절정에 달하는 때이다. 정점을 지나면 내리막길이 나오기 마련이다. 오후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는 여자보다는 남자가 문제다. 남자의 정년은 준비 없이 늦게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 사이에서는 더욱 나이듦을 거부하는 풍조가 만연한가 보다. 별안간 쿵하고 떨어지면 고통 또한 큰 법이다. 거기다 독신이라면?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긴 여성들이 혼자 살게 될 가능성이 더 많겠지만, 비혼, 이혼, 사별이라는 이유로 혼자 사는 남성들도 점점 늘고 있다. 황혼이혼이 늘고 있고, ‘졸혼’이라는 별거도 아니고 이혼도 아닌 신풍조도 나타나고 있다.

젠더 분야의 선구적 이론가이자 일본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 교수는 그의 책 「독신의 오후: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에서 인생의 오후를 맞이한 남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조언한다.

첫째,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라”. 약점이란 나쁜 점도 아니고 부끄러워할 점도 아니다. 과로하면 몸이 망가지고 궁지에 내몰리면 마음이 망가진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망가지지 않는 몸과 마음의 소유자는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다.나이듦은 약자가 되는 것이다. "아니에요, 별 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하며 강한 척하는 태도로는 받을 수 있는 도움조차 못 받게 되고 만다.

둘째, “자신만의 ‘제 3공간’을 만들어라”. 정년이 되고 나서 '가정으로의 회귀'는 좋은 코스가 아니다. 오히려 민폐가 될 뿐이다. 정년이 되고 나서 필요한 것은 직장도 아니고 가정도 아닌 제 3의 자신의 활동 거처다. 예전에 은퇴한 친구들끼리 지금은 추억으로 사라져가는 ‘다방’을 ‘아지트’로 삼고 날마다 출근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선택의 폭이 넓어 졌다. 공공도서관, 주민센터, 복지관, 평생교육원, 북카페, 각종 동호회 등등. 직장도 가정도 아닌 제3의 공간을 미리 미리 만들어 보자.셋째, “혼자임을 즐길 수 있는 ‘싱글력’을 길러라”. 늙어감에 따라 '혼자'있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인간은 사회적 집단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함께 있을 때 기분이 좋은 경우는 기분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뿐이지 않는가. 기분 나쁜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싱글력'이란 게 있다.싱글력은 성격뿐이 아닌 생활 습관의 산물이기도 하다.

‘우에노 지즈코’는 위의 세 가지 외에도 “노후에는 한 명의 절친한 친구보다 그냥 아는 사이인 열 명의 친구가 낫다”거나, “네트워크를 만들 때에는 자신의 전력, 학력, 가족력, 경제력을 말하지도 묻지도 않아야 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언젠간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오후가 찾아오고 만다. 언젠간 우리 모두 늙고, 또 언젠간 혼자가 된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최선은 인생의 오후를 미리 미리 준비하고 잘 대처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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