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 읽는 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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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읽는 문화 이야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2.09.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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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보스턴 차사건 (Boston Tea Party)

▲ 보스턴 차사건
 茶 감세가 미 독립전쟁으로
커피 애용 애국적 행위 미 전역 유행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

17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처음으로 차가 판매된 후 궁정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차는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후 중국으로부터 직접 차가 들어오기 시작한 18세기 에는 그 수요가 점차 증대되어갔다.

이 시기에 영국 차의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이름은 토머스 트와이닝 (Thomas Twining) 이다. 그는 1701년 런던의 동인도회사의 상인 밑에서 일하다가 1706년 ‘톰의 커피하우스’를 열었고 고객은 다양하게도 상류계급은 물론 학생, 변호사, 성직자 등이 모여 들어 커피, 차를 함께하며 토론을 즐겼다.
 
이와 더불어 영국정부는 세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차 보급에 적극적 이어서 비례하여 홍차의 판매 비율은 늘어났고, 더불어 영국인의 해외 진출과 함께 홍차도 세계각지에 전파됐으며 이시기에 트와이닝사(3대사장 리처드트와이닝)가 감당하기 힘들어 감세를 주장하고 있었던 상황에 결국 차에 대한 세금이 미국에서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보스턴 차 사건  (Boston Tea Party)

신대륙에서 처음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뉴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계 이주민들에 의해서다. 1664년 영국이 이 땅을 빼앗아 도시 이름을 뉴욕으로 바꿨고 이때부터 홍차는 미국 상류사회에 친근한 음료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18세기 후반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신대륙 미국도 차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그리하여 미국에서는 동인도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중국에서 차를 밀수입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영국의회는 1773년에 동인도회사를 구제하기 위해 미국에 차를 팔 때 동인도회사에 독점적인 판매권을 부여하고 관세를 없애 밀수업자들보다 싼 가격에 차를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차 조령’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 내 차 밀수입업자들을 자극하게 되고 결국 이에 대항하여 미국에서는 차 상인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1773년 12월, 미국인들의 반대 집회를 무시하고 차를 실은 동인도회사의 배 세척이 보스턴 항에 입항하자 새뮤얼 애덤스가 거느리는 50명의 주민들은 아메리카 인디안으로 변장하고 배에 뛰어올라, 342상자의 차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 보스턴 차사건
이것이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이다. 이에 즉각 영국은 변상을 요구하며 보스턴에 군대를 주둔하지만 미국은 1774년 대륙회의를 열어 영국에 대립했으며, 이는 마침내 1775년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인간의 꿈이 인간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라면 카페는 그 동력을 만드는 현장이다”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애국적 행동으로 비춰졌고 차를 마시는 것은 미국인답지 못한 짓으로 여겨져 커피의 존재는 신세계에서 그 어떤 음료도 넘볼 수 없는 지위에 올랐다.

일례로 1789년 새로 대통령으로 선출된 조지 워싱턴이 뉴욕에 왔을 때 뉴욕 주지사와 시장이 주최한 환영행사가 열린 곳이 그 당시 뉴욕을 대표하는 ‘머천츠 커피하우스’였다. ‘머천츠 커피하우스’는 오늘날 월스트리트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현재 전미커피협회 (National Coffee Association) 본부가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 글 : 부나블룸 커피 대표 이창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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