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과 밀정사이(친일과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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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과 밀정사이(친일과 망각)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4.2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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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뉴스타타 기자들이 취재 내용과 후기를 엮은 것으로, 그 취지는 ‘친일 청산’과 ‘과거 극복’이다. 저자들은 친일 부역배 청산 작업이 해방 직후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본다. 부역배들은 조직적으로 저항했고 엘리트 계층으로 살아남았다. 친일 후손 대부분은 그 물적·정신적 기반을 계승하고 있다. 일부는 현재 “(대한민국의) 영구지배를 꾀하는 저강도 쿠데타”를 진행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이를 옹호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이러한 일이 자행되는 이유는 국민의 망각 때문이다. 저자들은 “불의가 정의를 대체하고 사도가 정도를 능욕하는 배반의 역사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뉴스타파’의 해방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4부작 <친일과 망각>은 이 같은 이유로 제작됐다. 

따라서 이 책은 다분히 계몽적이다. 계몽의 방법론은 탐사보도다. 3명의 기자들은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반민규명위)가 친일파로 판단한 203명의 후손 1,177명을 찾아냈다. 반민규명위는 참여정부 때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 출범했다. 2005년 5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활동하며 친일파 1,006명을 확정, 발표했다. 뉴스타파는 8개월간의 추적 끝에 찾아낸 1,177명 중 350명과 접촉했다. 이 중 40여 명만 취재에 응했고 나머지는 거부했다. 공개 인터뷰에 응한 이는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경근 자그레브 한인교회 목사,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3명이었다. 접촉 성과가 크지 않은데 대해 저자들은 “친일 후손들이 선조의 과거에 대해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탐사보도의 결과물은 친일 후손에 대한 사회 인구학적 분석이다. 뉴스타파는 1,177명의 교육 수준, 거주 지역, 직업 등을 분류해 이들이 ‘금수저’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은 27%였으며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 1/3 가량이었다. 이들이 소유한 주택 475곳을 확인한 결과 수도권(서울 300곳, 경기도 100곳)에 85%가 몰려있었다. 그중에 ‘강남 3구’(강남·송파·서초)에 소재한 주택은 130곳으로 집계됐다.

뉴스타파가 조사한 친일 후손 대부분은 엘리트 집단에 속해있다. 기업인이 376명(32%)으로 가장 많았고 교수는 191명, 의사는 147명이었다. 그밖에 공직에 55명, 언론계에 46명, 정치 분야에 31명, 법조계에 30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1,177명 중 국적 포기자도 346명이나 된다. 국적 포기자는 통계상 2000년대 들어 급증했는데, 친일파에 대한 공적 조사 작업이 착수된 시점과 맞물린다. 반민규명위 등 4개 관련 국가위원회가 그즈음 발족됐다.

뉴스타파가 친일 후손의 삶을 규명하려 노력한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작업은 처음부터 한계가 명확했다. 저자들은 반민규명위가 선정한 1,006명의 친일파 중 가장 유력자였던 203명을 고른 뒤 그들의 후손에 대해서만 조사했다. 애초부터 금수저 집안을 취재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친일 후손들이 선조의 물적 기반을 발판삼아 엘리트로 성장했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전수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이 왜곡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한계점에 대해서는 저자들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가장 큰 한계는 저자들의 작업이 책의 취지에 반(反)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친일 청산과 과거 극복은 결국 누군가에게 ‘폭력’ 또는 ‘숙청’으로 되돌아온다. “정의는 부정되고 가치는 전도됐다”며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진단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은 ‘부정된 정의’의 이름으로 친일 후손들에게 자기고백이라는 ‘진정한 화해’를 강요한다. 과거 극복은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친일 후손들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숨어버렸다. 저자들이 얘기하는 ‘올바른 교육’은 그들에겐 가치관을 뒤흔드는 ‘이단’으로 간주되며 친일이 단죄의 대상인 세상에서 자기고백은 잃을 게 없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하다.

계몽주의적 서사는 필연적으로 옳고 그름의 이분법을 내포하고 있다. 이분법은 세상을 보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에 자주 이용된다. 하지만 그 구도에서 벗어난 이들의 삶은 조망하지 못한다. 친일 청산을 부정한다거나 민족주의적 역사 교육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엄혹한 시대를 사는 기자에겐 한가한 소리일수도 있다. 다만 친일 구조의 재생산 과정을 세밀하게 탐사하고 묘사하는 일에 이분법은 그다지 좋은 시각이 아니다. ‘암살’보다는 ‘밀정’이 좀 더 멋진 영화라고 느껴지는 이유다.
서평자 : 문동성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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