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도시 목포 왜 다도해 모항 목포 희망만들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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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도시 목포 왜 다도해 모항 목포 희망만들기인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7.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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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희망 만들기’를 위한 ‘인문처방’

희망의 흐름은 항시 흐르기 마련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인식하는 것이 모든 처방의 출발점이다. 이를 일러 ‘인문처방’이라 할 수 있다.

먼저 한중 국교수립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은 국교수립을 공표하고 그간 단절되었던 양국관계의 회복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어느덧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의 반열에 올랐고, 한국의 대중국 무역 규모가 1위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한중수교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대한 의미를 가지지만 서해안의 도시들에게는 더욱 각별할 수 있다. 1949년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차단되었던 서해의 바다가 다시 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중수교는 ‘서해안 시대’, ‘환황해시대’라는 요란한 구호와 함께 왔고, 그 변화의 추세는 인천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고 있다. 그 추세는 화성과 평택을 거쳐 충청도의 당진과 서산까지 당도하였다.

그리고 군산은 새만금의 간척 공간을 내세워 변화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념이 없다. 그런데 목포에서는 아직 미동조차 느끼기 어렵다. 중국으로 이어지는 바다는 열렸는데 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목포의 인문처방은 서남해 다도해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고 그 의미를 성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에 3단계 인문처방을 제안한다.

제 1단계 처방은 역사적 성찰을 통해서 서남해 다도해의 의미를 확고하게 인식하는 일이다. 먼저 9세기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건설하고 서남해의 다도해를 통로 사아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주름잡았으며, 해남과 강진 일대에 대규모 청자생산단지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장보고의 유산은 고려로 계승되어 영산강유역의 회진포와 상대포가 국제항구로 명성을 떨쳤고, 장보고가 씨뿌린 청자는 고려청자로 화려하게 꽃피운다. 이것이 서남해 다도해의 첫 번째 흥성기였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에 해금과 공도의 정책을 채택하여 지속적으로 강행하면서 서남해의 다도해는 퇴락하게 되는데, 이것이 첫 번째 쇠퇴기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식민지배정책으로 다도해가 되살아났고, 그와 함께 목포가 다도해의 관문, 해륙 중계도시로 급성장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를 두 번째 흥성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 서남해 다도해는 국제적 고립 공간으로 전락하고 목포는 다시 퇴락했다. 서남해 다도해의 두 번째 쇠퇴기였다.

그런데 근래에 새로운 희망의 기운이 감돈다. 1992년 한중 국교수립을 맞아 서남해 다도해가 개방의 공간으로 다시 열리면서 다도해와 목포는 세 번째 흥성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목포가 역사적 성찰을 통해 ‘다도해의 모항’이라는 화두를 목포의 정체성으로 수용하고 이를 확고히 인식하며 공유 확산해 가는 것, 이것이 ‘목포 희망 만들기’의 제 1단계 처방이다.

제 2단계 처방은 세 번째 흥성의 기회를 살려 ‘희망 만들기’를 실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목포가 앞장서서 탈경계의 정책을 적극 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목포의 경계에 안주하지 말고 인근 지자체를 포괄하여 ‘목포권’이라는 광역 생활권을 설정하고 긴밀한 상호 협력관계를 선도적으로 구축한다. 그리고 서남해 다도해를 껴안아 그 에너지를 집결시키고 국내외로 확산시켜 공영의 길로 안내하는 ‘다도해의 모항’, ‘해륙 중계도시’의 기능을 회복한다. 이를 통해 목포는 ‘대한민국의 섬의 수도’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다.

제 3의 처방은 다도해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용시키기고 ‘발전’시키려는 시도이다.1) 이제 산업화 패러다임은 흘러간 옛 담론이 되었다. 21세기는 생태문화 패러다임의 시대이다. 동남권이 20세기 후반 산업화 패러다임의 시대에 각광받는 장소성을 가졌다면, 21세기 생태문화 패러다임의 시대에는 서남해 다도해가 가장 적합한 장소성을 가진다. 서남해 다도해는 20세기 산업화시대의 무분별한 개발에서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아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의 보고로 남아 있다.2)
먼저 생물다양성이 살아있는 다도해의 생태적 가치는 국내외적으로 널리 공인받고 있다. 서남해 다도해(신안군, 진도군, 완도군, 고흥군, 여수시 등)는 이미 1981년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그 생태적 가치는 일찍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공인받았다. 전라남도는 2008년에 서남해의 갯벌을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하고 국립공원으로 승급 지정하기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더 나아가 문화재청은 서남해의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는 2009년에 신안군 다도해를 제주도와 설악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였다.

문화다양성의 측면에서도 서남해 다도해는 단연 독보적이다. 바다와 섬이 열려있던 고대~고려시대에 다도해의 섬에는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완도 청해진, 진도 용장성, 그리고 흑산도에 고대 국제해양도시의 흔적이 대표적인 예이다. 고대의 고분과 산성이 많은 섬에 산재해 있기도 하다. 바다를 금지하고 섬에서 사는 것을 금지했던 조선시대에 섬에는 육지에서는 사라진 득톡한 ‘섬 민속’이 남겨져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 허다하다. 진도의 다시래기, 비금도의 뜀뛰기 강강술래, 섬 도처에 전하는 초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남해 다도해에 보존되어온 생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는 21세기 생태문화의 시대에 부합하는 최고의 자산이다. 목포는 철지난 산업화 패러다임의 미몽에서 벗어나서 서남해 다도해를 껴안고 생태문화 1번지로 띄우며 가치를 극대화하는 일에 매진하여 ‘모항’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서남해 다도해를 생태낙원(Eco-Paradise)으로 가꾸어 ‘세계 다도해공원’으로 거듭나게 하는데 선두에 서야 한다.

다도해는 21세기 패러다임에 걸 맞는 생태문화 산업의 현장이다. 갯벌바다는 탁하지만 더러운 바다가 아니라 비옥한 바다, ‘沃海’이다. 옥해의 소금은 그 우수성이 입증되고 있다. 옥해의 수산물 역시 맑은 바다의 수산물에 비해 맛과 영양이 우수하다. 청정, 해풍, 게르마늄 토양의 은택을 입고 자라는 섬 농산물은 육지의 그것에 비해 우수하다. 이미 명품인 옥해산 수산물과 섬산 농산물은 명품으로 공인받는 형식적인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

서남해 다도해는 국경을 초월하는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고려시대까지 중국의 저우산(舟山)군도와 중요한 파트너가 되어 한중 문물교류의 현장으로 기능하였다. 신안선이 그 역사적 물증이다. 1323년 저우산군도의 중심 항구인 寧波港에서 출발하여 일본으로 향하던 중 신안군 증도 해역에 침몰했던 무역선을 1970년대 발굴한 한 것이 바로 신안선이다. 신안선은 중국의 다도해와 우리의 다도해를 이어주는 상징적 역사 유물이라 할 수 있겠는데, 목포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해양유물전시관)에 소장?전시되어 목포와 다도해의 운명적 상관성을 증언하고 있다.

이상에서 목포의 정체성으로 ‘다도해의 모항 목포’를 내세워 이에 대한 현실 진단과 3단계의 인문처방을 시도하고 이를 통하여 ‘목포 희망 만들기’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제 ‘다도해의 모항 목포의 희망 만들기’를 실질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목포 인문도시 프로그램을 어떻게 설계하고 실행에 옮길 것인가를 논의하는 ‘인문담론’의 단계로 들어갈 차례이다.
<목포대도서문화연구원 강봉룡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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