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작가 이성관의 두근두근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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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작가 이성관의 두근두근 옛이야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2.09.1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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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십대의 어린시절 고향은
▲ 이선관 작가

                                                           초가

초가지붕 하얀박꽃 별을 헤던 누이야울타리 담장 너머 볼 붉히던 누이야발돋움, 발돋움 하며 설레이던 누이야.모람모람 저녁연기 시래기 국 끓여놓고오순도순 산비알 산마루를 오르면노을은 등불을 켜고 커튼 드리우느니

포름포름 포르르 노을이 출렁인다소 모는 아이들의 딸랑딸랑 풍경 소리그 누가 쏟아놨을까, 하늘 가득 별보석.섬돌엔 코고무신 하양 까망 고무신흙돌담 등잔불 다듬이 물레 씨아또닥딱 다듬이 소리 어둠이 밀려오면

할아버지 아들 손자 등잔불 둘러앉아 밤하늘 잔별 돋듯 향내 나는 얘깃소리참새들 귀 기울이다 처마 끝에 잠들고.

오륙십 대의 어린 시절 쯤 이라고 할까요?
한참이나 오랜 시절이긴 하지만 눈앞인 듯 화안이 떠오르는 여름날 해질녘의 저녁풍경에 이어 이슥한 겨울밤의 시골집 풍경이 겹쳐집니다.

뜨겁게 뜨겁게 대지를 달구던 태양이 꼬올깍 산마루에 걸치면서부터 뉘네 집이랄 것도 없이 초가지붕엔 짙은 옥양목빛 새하얀 박꽃이 피 나기 시작하지요.
대체적으로 해질녘 이후에는 아녀자들의 바깥출입을 금기시했던 지난 시절.

울안에 갇히어(?) 나들이가 아쉬운 시골 처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건너집이나 이웃마을 총각이라도 생각이 나는지, 무어라고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아스라한 그리움이 밀려드는 걸까요. 얼마나 숫기가 없었던지 생각만으로 얼굴이 활활 달아오르면서도 발돋움 발돋움에 목을 내밀며 연신 울타리 담장 너머 세상으로 눈길을 모으며 설레는 가슴으로 부풀어 오르는 해질녘.

밥 짓는 저녁연기. 집집마다 굴뚝을 타고 모람모람 피어오르는 저녁연기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연기는 머릴 풀어헤치고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들을 지나 스멀스멀 골짜기로 숲으로 스며드는가 하면, 등성이 마루를 타고 멀리멀리 나랠 펼치며 높이높이 하늘로 하늘로 피어오르곤 했지요.

바로 그 시간 시냇가나 산골짜기에 소 먹이던 아이들은 발길을 뗄 때마다 놀빛이 자잘히 자잘히 부서지는가 하면, 둥지를 찾아 날아드는 새소리며 딸랑딸랑 울려퍼지는 풍경(워낭)소리에 출렁이는 노을빛 물결에 장단 맞추며 산길 들길 오솔길 따라 집으로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노을빛은, 몰래몰래 견우직녀의 신방(新房)이라도 차리는지 아무도 보지 말라는 듯 진분홍 커튼을 해넘이 서녘하늘을 중심으로 하늘 가득히 펼치더니, 이내 금방 하늘은 선홍(鮮紅)을 넘어 검붉은 빛깔로 변하더니 이내 곧 어둠으로 채워지면, 아! 언제보아도 황홀경에 빠져들듯 빛나는 보석들이 유리알처럼 빼곡이 박힌 말 그대로 별천지.

이렇게 소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시간에 맞춰, 집 안에서는 엄마, 누나들의 일감들이 참 많기도 합니다.
저녁 준비를 중심으로,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이 바람에 햇살에 보송보송 마른 옷가지. 옷의 종류에 따라 일부 옷감은 저녁이슬을 맞추어 다리미질이 시작되지요. 다리미질은 반드시 두 사람이 마주 앉아야 이루지는 것으로, 옷감이 팽팽해지도록 옷자락의 가장자리를 서로잡아당기며 엄마는 숯불이 발갛게 달아오른 다리미로 옷을 다리는가 하면,  또닥딱 다듬이 소리(이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가 이집 저집에서 음악처럼  울려 퍼지곤 하였습니다.

이제 계절이 바뀌어 가을에서 겨울밤.

저녁을 마치고 칠 흙의 어둠이 깔리면 가족들 모두 희미한 등잔불을 가운데 두고 비잉 둘러앉아, 어느 밤도 빠짐없이 그렇고 그런 일상의 얘기들이 시작되는 시간. 안타깝게도 산간벽지 마을엔 교과서 밖의 읽을거리마저 전무하다시피 하였던 그 시절. 가족들의 얘기를 들으며 숙제라도 있는 밤이면 얘깃소리 귀로 들으며 희미한 등잔불 아래 엎드려 공책을 펼치곤 했던 그 시절.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중에도 무슨 얘기가 그리도 끊임없이 밤마다 샘솟듯 이어지곤 하였을까요.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지요?

초가집은 대체로 방이 한정되어 적게는 단칸방에 많아야 두세 개의 방이 일반적이었지요. 이 경우 대체로 온 식구가 거쳐하는 안방에 별실에는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거쳐하는 정도의 방이면 족했답니다.
특별히 좀 넉넉하다싶은 집에는 주로 머슴들이 거쳐하는 사랑방이 별도로 있었구요.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라치면 온 식구가 방 하나에 이불을 펴야 했으니 온돌이 식기 시작하는 새벽녘이 되면 서로 이불깃을 자기 쪽으로 하기 위하여 밀고 당기기 경주(?)가 시작되기도 하였지요. 그러다보니 온도가 내려갈수록 식구들은 몸과 몸을 가까이 가까이 댈 수밖에 없어, 이렇게 살과 살을 맞대고 사는 생활이 날마다 계속되었으니 그 가족애가 오죽했겠습니까.

아울러 사랑방에서는 멍석이나 가마니를 짜며 소쿠리나 짚방석 등을 얽기도 하는, 침실이자 다목적 작업장 구실까지 겸하였지요. 사랑방은 이러한 구실도 하였지만 밤마다 이어지는 구수한 얘기 하며, 농사는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거름을 모으기 위하여, 장독보다 훨씬 크고 넓은 옹기를 가까운 장소에 두고  거기에 소변. 그리고 칙간(측간-변소)에 소변받이보다 더 큼지막한 옹기를 묻어 사랑방에 드나드는 분들의 인분을 받아 농토에 거름으로 요긴하게 이용하였답니다.

이렇게 깊어가는 칠흑의 밤에 심심한 산짐승들이 마을로 내려와, 창틈으로 새어나는 얘깃소리에 취하여 사립밖에 앉아 귀 기울이며, 저도 몰래 잠에 떨어져 단꿈 꾸다가 "꼬끼오!" 새벽닭 소리에 깜박 깨어 다시 숲속으로 발길을 옮기지는 않았을까요.

너나 나나 없이 가난한 생활에 춥고 배고팠던 시절. 그래도 가난이 가난인 줄 모르고 불편도 불편인 줄 모르며 마냥 즐거웠던 시절들이 아련히 아련히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리움으로 떠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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