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천(天)인(人)지(地) 한방병원 박인수 원장
상태바
목포 천(天)인(人)지(地) 한방병원 박인수 원장
  • 최지우
  • 승인 2017.09.13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불허전!! 지역을 위한 최고의 의사를 꿈꾸다
▲ 박인수 원장.

[목포시민신문=최지우기자]사춘기 시절을 보냈던 4년여 목포에서의 짧은 인연은 지난 반평생 안식처 역할을 하며, 힘들 때 마다 스멀거리는 주책없는 감정을 지배했다. 뜻대로 생각대로 풀리지 않던 젊은 시절 방황으로 시간 속을 허우적일 때에도 어지럽던 속내를 꾹꾹 누르며 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마음 한편에 자리한 목포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머물렀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일들이 있었던 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평생을 가늠하게 될 자아정체감과 정서적 감정 등이 형성되는 사춘기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리라. 12살 때 처음 목포로 유학와 16살 때까지 머물며 꿈을 키웠던 소년이 35년을 달려 한의사가 되어 돌아왔다.
 
점점 적막해져가는 목포 1호 광장을 당당하게 지키고 있는 천인지한방병원 박인수원원장의 이야기다.  천인지한방병원은 지난해 12월 개원한 양·한방 협업 병원이다.

두 명의 한의사와 한명의 가정의학과 의사가 진료를 하고 있으며, 한방침구과, 한방내과, 한방소아과, 한방부인과, 한방이비인후과, 한방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등이 개설되어 있다.

박인수 원장은 “침을 전문으로 하는 우리 병원의 가장 큰 특징은 엑스레이를 통한 해부학을 바탕으로 진단을 하는 것이다. 사람골격에 따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년간의 임상경험으로 정확한 진단과 함께 환자는 빠른 회복력을 보이면서 한번 내원한 고객이나 어르신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며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기 마련이다. 우리병원은 간호사를 비롯해 직원들이 친절과 배려심을 가지고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고통을 덜 느끼게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해부학을 기초로 한 침은  남들보다 더 정확하고 아프지 않으며, 효과성, 특효성 재현성, 답습성 설명가능성 등의 특징을 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인수 원장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치료는 탈모와 퇴행성 관절염, 비염, 아토피 치료이다. 다년간의 임상경험으로 터득한 자신만의 비법으로 탈모, 퇴행성 관절염, 비염, 천식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안겼다.

“원래 우리 몸은 통하게 되어 있기에 하나가 안 좋아지면 모든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한방 침 치료를 하며 모든 기운을 북돋아 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 천인지 한방병원.

박인수 원장은 제주도 추자도가 고향이다. 추자도에는 중학교까지 밖에 없어서 고등학교를 가려면 제주로 가든가 육지로 나와야 했단다. 박원장은 제주 대신 초등학교 때 고모가 있는 목포로 오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목포와의 인연은 유달 초를 거쳐 유달 중학교 3학년까지가 전부다.

실질적으로 광주나 서울에서 산 기간이 훨씬 많지만 12살 때부터 16살 사춘기 시절을 보낸 정신적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에 항상 이곳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추자도가 제주 보다는 전라도 풍습에 더 가까웠기에 정서적으로는 전라도가 맞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고 했다.

박원장의 원래 꿈은 건축가나 한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적록색약으로 판정을 받고 꿈은 그냥 꿈으로 남겨둬야 했다. 당시엔 적록색약의 이공계열 진학은 금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공부에 대한 실망감은 커졌고, 어긋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남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을 했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 이였기에 공부보다는 다른 쪽에 더 열심이었다. 성적도 생활도 엉망이 되어 갔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던 박원장은 아는 선배와 함께 중국 중의대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그렇게나 원하던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3개월 만에 끝이 났다. 3개월 단기 비자만료 후 비자 발급이 되지 않아 더 이상 공부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좌절을 겪었지만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상황에 안주하기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고려대 경영학과에 편입을 하고, 석사, 박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논문을 쓰던 중 지도교수님이 총장으로 가시면서 논문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처음엔 암담했었다. 그래도 뭔가 다시 준비를 해야 했기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중. 중의대에서 함께 공부했던 선배의 권유로 동신대 한의학과에 편입을 하게 됐다.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했고, 합격을 하면서 원하던 공부를 드디어 하게 되었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동기들이 나보다  20년 후배들이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박원장이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던 것은 고집 때문이란다. 정도의 차이나 기질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현실에서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활용하면서 살고 있는데 자신한테 맞는 것을 하고 싶었단다.

졸업 후, 광주에서 진료 생활을 시작해 이곳에 개업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많았지만 마음의 고향인 목포로 내려오면서 이 지역의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박원장은 요즘 새로운 도전 목표가 생겼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의 적성이 공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사람들과 부딪치고 해결해나가는 활동력 있게 살고 싶다. 무엇인가 일을 하고 싶고 이루고도 싶단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지금의 운영은 출발단계이다. 일정기간 이후 여유가 없더라도 자원봉사와,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 35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본 목포의 첫 인상은 더 낙후 되었구나였다. 하지만 이방인들을 반기고 따뜻하게 해주는 마음은 여전했다. 봉사와 나눔은 35년 만에 돌아온 나를 반겨준 목포와 목포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하고 생각 한다”고 했다.

천인지 한방병원은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35명의 직원들이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86병상이 준비되어 있다.
최지우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