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이 17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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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이 17년에게···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12.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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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손영득 목포시 용해동)

철학자 헤겔은 역사란 반복되며, 한 번은 희극이고 다른 한 번은 비극이 된다고 경고했다.
2017년과 1987년에 항쟁은 반복되었지만 다행히 두 번 대체로 희극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두 연도 간 에는 분명히 어떤 역사적 알고리즘이 있다고 믿어지는데 의심할 여지 없이 두 번 모두 시민의 위대한 승리로 기록될 것이지만, 30년 터울을 멀리 돌아온 느낌도 지울 수는 없다.
내일 모레 개봉하는 영화 1987의 주제처럼 87년은 박종철의 죽음으로 시작되어 이한열을 거쳐 노동자 대파업을 낳고 12월 대선 패배로 마무리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민주진보세력의 집권과 개혁으로 저무는 2017년은 이 묵은 민주화의 과제를 완결지은 성공작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민주에서 평등민주로

그래서 나는 87년이 정치적 근대화의 시작이었다면 17년은 형식적 절차적 민주화(레닌Lenin 표현을 빌리면 ‘일반민주주의’)가 완성된 해라고 부르고 싶다.

그런 점에서 87년 6월항쟁이 체제에 대한 정면도전이었고 17년 촛불은 87년 마련된 근대적 입헌민주체제에 대한 박근혜의 파괴를 진압한 체제 수호항쟁이었다는 어느 헌법학자의 진단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촛불을 혁명으로 인식하는 일부 진보세력의 인식은 옳지 않고 과도하다. 혁명이란 무릇 체제를 전복해야 하는데 지금 집권세력은 누구보다 기존 헌정체제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현재 문정권의 개혁 정책이 혁명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명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퇴행적이고 무능했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적 착시현상일 뿐이다.

비장했고 긴박했던 87년 항쟁에 비해 촛불은 비교적 차분하고 예정된 승리였다. 촛불항쟁 초기에 이미 종편 등 보수 언론과 논객들이 박근혜에게 등을 돌린 것도 17년의 항쟁과 승리가 보수기득권도 동의하는 체제 내적인 개혁이 그 본질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6월 시민항쟁의 핵심주장이 자유에 있었다면 민주주의의 또 한 기둥인 실질적 평등은 7~9월 노동자 대항쟁에서 본격 제기 있었다.

노동기본권과 직장 민주화, 대자본권력의 횡포 저지 등 노동자 대항쟁의 본질이 먹고사니즘(민생)과 생활 민주주의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할수록 풍요롭고 평등해야만 민주와 진보가 성공할 수 있음을 우리는 지난 민주정부의 성공과 실패에서 뼈아프게 학습한 바 있다.

그 실질적 민주주의와 평등이 실현되지 못하면 박근혜 정권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삼류 파시즘이 재림하는 것이다.

다시 살펴보면, 촛불항쟁으로 한국사회는 자유민주라는 소중한 가치를 회복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제 공정국가라는 기회의 평등과 갑질 근절이라는 경제인권보장 및 분배 정의등 평등민주를 열망하고 있다.

노동자 대항쟁 정신에서 배우자

자유와 평등은 민주공화국의 영대 기둥일진대, 우리 사회는 지난 30년 자유주의에만 치중한 민주화의 길을 편애했고 따라서 노동자 서민들의 먹고사는 민주화는 큰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87년 6월은 실현되었을망정 7,8,9 노동자 대항쟁의 문제의식은 2017년에 아직 진행 중이다.

죽어가는 친박세력 혼내주기가 진정한 적폐청산이 아니다. 그 핵심은 먹고사는 현장에서 대자본의 독주를 막고 서민대중의 노동권 보장과 경제정의라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진정시키는 길이다.


(박종철 고문치사가 폭로될 당시 영등포 구치소에 있었던 것과 노동자 대항쟁을 목포의 고무공장에서 온 몸으로 부대끼던 날들을 기억하는 어느 목포시민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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