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려건국 1100년’을 주목하자
상태바
전라남도, ‘고려건국 1100년’을 주목하자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8.03.28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라도 正名 1000년 이름 바로세우고 정체성 찾아
 

[목포시민신문]이번 연재는 도서문화연구원이 진행하는 인문아카데미에서 강봉룡 교수(목포대 사학과, 도서문화연구원장)가 지난 6일 첫 번째 강좌로 강연한 내용을 3회로 나누어 게재한다. 도서문화연구원 인문아카데미는 5월 22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도서문화연구원(목포대 목포캠퍼스) 2층 대회의실에서 시민 대상의 ‘열린 무료 강좌’로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전라남도, ‘고려건국 1100년’을 주목하자”란 주제로 게재되는 글은 첫 번째 순서로 ‘전라도 1000년과 고려건국 1100년’이 독자를 찾아간다. 이번 호를 시작으로 3회에 걸쳐 연재된다. 558호엔 두 번째 순서로 ‘왕건, 장보고의 유산을 계승하여 고려를 건국하다’가 339호엔 마지막인 세 번째로 ‘고려와 전라남도의 친연성’이 각각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전라남도, ‘고려건국 1100년’을 주목하자

<글 게재 순서>
① 전라도 1000년과 고려건국 1100년
② 왕건, 장보고의 유산을 계승하여 고려를 건국하다
③ 고려와 전라남도의 친연성

전라도 正名 1000년 이름 바로세우고 정체성 찾아

1018년 고려 때 전라도 지정… 건국 나주 해양세력 추축 이뤄
고려 왕건 훈요십조 전라도 정치적 악용 위한 잘못 알려진 진실
영산강 해양세력 장보고 기반 성장 고려 해양강국 중요 원동력

△ 2018 전라도 1000년
전라도는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강남도(오늘의 전라북도)와 해양도(오늘의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를 합해 처음 획정되었으니, 올해는 전라도 개도(開道) 1000년이 되는 해이다. 경상도는 고려 충숙왕 원년(1314)에 처음 열렸고, 현존하는 나머지 도들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정해졌으니, 전라도가 올해에 개도 1000년을 처음 맞는다는 것은 매우 진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전라도인에게 2018년은 매우 의미있는 해임이 분명하다.

하여 전라도에 같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와 광주광역시는 저마다 혹은 공동으로 전라도 1000년을 기리는 준비를 해왔다. 그 공동의 출발점은 전라도 1000년을 상징하는 슬로건과 앰뷸럼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전라도인은 물론이고 전국민의 공모를 거쳐 “천년을 품다, 새천년을 날다”를 슬로건으로 정하였고, 이에 맞춰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앰뷸럼의 도안도 확정하였다. 세 시도는 작년 12월 31일에 확정한 슬로건과 앰뷸럼을 발표하고 2018년을 ‘전라도 방문의 해’로 선언하는 것으로 ‘2018 전라도 1000년’의 해를 맞았다. 10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 1000년을 내다보면서, 전라도의 역사를 성찰하고 미래의 발전을 설계하는 노력을 함께 기울이는 것은 즐겁고도 의미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 1018 전라도 획정

전라도는 1000년 전 고려시대에 두 중심도시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처음으로 명명되었다. 고려에게 전주와 나주는 특별하고도 대조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주는 고려 건국에 핵심적 지원세력이었고, 전주는 고려에 맞서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던 후백제의 중심세력이었다. 그런 만큼 고려에게 나주와 전주는 애증이 교차하는 도시였다. 이러한 애증은 고려의 건국자 태조 왕건이 후대 왕에게 유서로 남긴 훈요십조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훈요십조의 제8조에 의하면 “차현 이남, 공주강 밖 사람들은 변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으니 등용이나 왕실 혼인을 하지 말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차현은 지금의 차령산맥, 공주강은 금강에 해당한다 할 수 있으니, 그 ‘이남’과 ‘밖’이라 함은 오늘날의 전라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제8조의 이 구절을 태조 왕건이 전라도를 차별하여 배제하도록 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근거로 전라도 차별대우의 연원이 멀리 고려 초부터 시작되었다 하여, 오늘날의 전라도 차대 역시 역사적으로 정당하다는 악의적 지역감정으로까지 비약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8조는 전주 중심의 후백제 핵심세력에 한정하여 일시적으로 정치적 견제를 해야 할 것을 경계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전라도 차대라는 지역감정의 역사적 연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황당하고도 엉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이를 변론해 보기로 하자.

먼저 태조 왕건이 나주를 특별히 배려했던 몇 가지 사례이다. 태조는 말년에 아들 왕무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여 고려의 2대 혜종이 되게 하였다. 혜종 왕무는 고려 건국에 크게 기여한 나주 출신 오다련이란 자의 딸(장화왕후)과 왕건 사이의 소생이다. 또한 태조는 나주를 ‘나주도대행대’라는 특별 행정구역으로 편제하고 나주에 파견한 지방관을 ‘시중’이라 칭하게 하였다. 시중이란 오늘날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직함으로 통상적으로 중앙에 1인만이 있어야 했으나, 일시적으로 중앙과 나주에 각각 1인씩, 2인의 시중을 두는 파격을 결행하였으니, 나주에 대한 태조의 애정이 얼마나 각별했던가를 보여준다. 태조에게 전라도를 통째로 차대할 의도가 있었다면, 나주를 외가로 둔 왕무를 후계자로 지목하여 마침내 후계 왕이 되게 하거나 나주를 특별 대우하는 일 등은 만무했을 터이다.

다음에 전라도를 획정한 현종 때 있었던 일이다. 현종은 즉위 원년(1010)에 거란의 침략을 받아 수도 개경을 버리고 남으로 피난한 일이 있었다. 삼례역에 당도하여 전주에 들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주는 (후)백제의 옛 땅일 뿐 아니라 성조(태조 왕건)께서도 이를 미워했으니 행차하지 말 것”이라 진언한 박섬의 주장을 받아들여 전주를 들리지 않고 나주로 직행하였다. 반면 현종은 나주를 ‘부흥의 공을 이룬 곳’으로 극찬하였다. 현종 대까지 전주는 고려왕조의 경계의 대상이었던 반면, 나주는 특별한 우호세력으로 간주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종은 곧 전주 세력에 대한 오랜 경계심을 풀고 그들을 포용하는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그는 1011년 나주에서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주에 들러 7일 간 머물렀으니, 이는 나주로 내려갈 때 전주를 위험시하여 들리지 않았던 전례와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현종의 전주 방문은 이제까지 적대시했던 전주세력을 무마하여 고려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포용하려는 정책 전환의 신호탄으로 간주해도 좋을 듯싶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현종은 1018년 전주를 안남대도호부로 승격시켰고, 바로 그해에 강남도와 해양도를 통합하여 전라도로 획정하기에 이르렀다. ‘1018 전라도’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훈요10조 제8조를 둘러싼 엉뚱한 오해, 혹은 악의적인 과잉 해석은 더 이상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

△고려건국 1100년

고려를 건국한 것은 918년이니, 올해로써 1100년을 맞는다. 왕건은 태봉의 ‘해군장군’으로서 후백제의 견훤과 대결하여 나주의 해양세력(서남해 및 영산강유역)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쿠데타(혁명?)를 일으켜 자신이 모시던 태봉의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그러니 오늘날 서남해 및 영산강유역의 해양세력은 고려 건국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자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왕건과 치열한 대결을 벌였던 견훤은 순천과 광주세력을 섭렵하여 전주에서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고려의 건국과 초기 발전의 과정은 왕건이 전라남도 서남부(서남해 및 영산강유역)의 해양세력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대?결집하여, 전라도의 여타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던 견훤세력을 타도해간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왕건의 고려 건국은 서남해 및 영산강유역의 해양세력에 힘입은 바가 매우 컸고, 왕건과 견훤의 초기 대결은 전라도 전역에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서남해와 영산강유역에는 전대(前代)에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석권했던 장보고의 유산이 집적되어 있었다. 당시 이 일대는 아시아 해상교통로의 중추로 기능하고 있었고 당시 최고의 히트 무역상품인 청자 생산의 중심지였으니, 이것이 바로 장보고가 남긴 유산의 요체였다. 이러한 장보고의 유산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이후에 고려가 해양강국으로 발전해 가는데 주요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 결론을 맺기로 하자. 먼저 전라남도는 전라도의 일원으로서 ‘전라도 1000년’을 기념하고 선양하는 대열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그치지 말고 ‘전라도’를 처음으로 획정한 그 고려왕조를 건국하는데, 전라남도의 해양세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선양하는 일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전라도 1000년’의 해이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고려 건국 1100년’의 해이기도 하니, 전라남도가 해양의 세기를 맞아 해양강국 고려를 계승하여 해양강성의 날개를 활짝 펼쳐갈 진귀한 쌍축의 운명적 전기를 맞은 것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