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금을 울리던‘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흘러간 옛노래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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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을 울리던‘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흘러간 옛노래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8.05.0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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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사·공인중개사 강두원

정녕코, 한반도에도 봄이 왔다!

2018년 4월 27일 그날! 오전 9시 30분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20초간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악수와 ‘문 대통령도 월경해 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깜짝 이벤트에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10초간 월북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전파를 타는 순간 온 세계가 숨을 죽였고, 한민족의 가슴이 멎었다.

유사 이래 가장 충격적이고 한민족의 미래에 커다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발판을 디딘 날이다. 공평하게도 1953년 7월 27일 휴전이후 65년 만에 분단의 상징 38선 판문점에서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문 이른바 세계열강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전략적 이해와 맞물린 남북대치와 핵미사일 등 한반도의 화약고를 품에 안고서 남북정상이 함께 허리띠를 풀었다.

한때 구소련의 수도였던 러시아 북서부에 있는 북유럽의 베니스, 레닌이 죽자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레닌의 땅이라는 뜻의 레닌그라드라고 불렀다가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표토르(피터)대제가 만든 계획도시 이름인 1991년 그 옛 이름을 되찾아 지금은 러시아 황제 피터대제의 이름이 저절로 떠오르는 성스러운 어원인 산타(Santa)를 상트(Saint)라는 같은 어원과 성 베드로 이름에 도시라는 표현을 붙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현지어로 ‘쌍뜨뻬쩨르부륵’이라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 속 네바강에 1900년에 건조된 당시 7000톤급의 위용을 자랑하며 1905년 러일전쟁 때 우리나라 동해바다까지 참전한 그 유명한 군함 오로라호는 지금은 비록 정지해 있었지만 관광객들을 맞이하면서 박물관으로 활용하면서 엔진을 가동시키고 있었다. 순양함 오로라호 뒤로 선명한 우리 기업의 거대한 영문글자 광고판 SΛMSUNG...! 세계 곳곳에 대한민국의 경제적인 국력과 스포츠 국위선양은 1등급인데, 일부 정치인들의 수준이하의 적폐와 너무나 비만해진 우월한 행정권력은 아직은 멀었다.

1917년 호수처럼 잔잔한 발트 해 핀란드만에 정박 중이던 군함 오로라호에서 발사된 대포 한발이 겨울궁전인 에르미따쉬 궁전을 향해 떨어졌고, 그 새로운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강력한 공포탄 한발로 제정 러시아가 최후를 맞고 볼세비키혁명이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인류 최초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여 중국과 구한말에 까지 사회주의 공산당이 세력을 뻗친 볼세비키혁명으로 탄생한 구소련 소비에트도 1989년 약 70여년 만에 윈스턴 처칠이 발트 해의 슈테틴에서 아드리아 해의 트리에스터까지 ‘철의 장막’이 대륙을 가로질러 드리워졌다던 구소련에 예속된 그 공산체제가 붕괴됐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을 맞이했던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멸망했던 우리 대한제국은 공산체제 러시아와 민주체제 미국이 식민지 조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주둔하게 되고, 결국 우리는 1948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과 사회체제 헌법의 조선인민민주의공화국 두 개의 남북으로 분할된 지 어언 70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가슴이 멈춤 없이 설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꿈만 같고 반갑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김 위원장과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길동무”, “이제 만났으니 헤어지지 맙시다. 다시는 이 수난의 역사, 피눈물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맙시다.”, 남한 문재인 대통령의 “영변의 진달래 봄이면 해마다 만발할 것이고, 남쪽 바다의 동백꽃도 걱정 없이 피어날 것입니다”라는 2018년 4월 27일의 남북 두 정상이 꺼낸 화두는 그동안 일본 제국주의 35년의 어둡고 기나긴 터널을 뚫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연합국의 승리로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우리 대한제국은 미국과 구소련 등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 끼여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진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채,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유소년들과 정부 광복절행사 때 합창단이 부르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어서 오라’는 노래는 이제 흘러간 옛 노래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다!

8.15광복과 함께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은 둘로 갈라졌다. 해외파 김구선생과 이승만을 비롯한 민족지도자들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파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조선 건국준비위원회로 나뉘는 혼란을 틈타, 일본군을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통치하기로 하면서 한반도 남북대치의 첫발을 내딛고, 이후 민족사에 불운이었던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도선을 남침함으로써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는 전란으로 소중한 목숨과 귀중한 문화유산을 많이 소실했고, 그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오늘 우리는 암흑 같았고 악몽 같던 남북 사이의 얼어붙은 긴긴 겨울과 영영 이별한다고 선고했으며, 따뜻한 봄의 시작을 온 세상에 알렸다.”, “불신과 대결의 북남관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함께 손잡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구소련의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고, 아직 중국 공산당의 ‘죽의 장막’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 미처 70년이 안되어서인지 꿈쩍하고 있지 않지만, 보천보전투의 항일투사 김일성의 3대째 내려오는 백두혈통 ‘혈통의 장막’도 걷어지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지난 4. 8.자 본보 8면 오피니언 특집란에 다음과 같이 봄을 알리는 전령사 두견화(=진달래꽃)를 노래하면서,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면 머나먼 남방에서 날아오는 두견새가 늦은 밤에 너무나 슬프게 울어 듣는 이의 가슴을 찢어 놓는다고 해서 중국 촉나라 임금 망제(望帝)의 넋이 붙은 전설을 가진 두견화(杜鵑花)그 진달래 꽃잎을 따서 설탕에 버무려 술과 함께 항아리 담가두었다가 발효가 되면 달착지근한 진달래꽃술에 남녀 모두가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던 진달래꽃축제(?)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렸다’면서 두견화를 화두로 삼았다. 그때 필자는 ‘이제 어떠한 조건이든지 11년 만에 오는 4. 27.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판문점 ‘평화의 집’ 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이 카운트다운 되었다. 남쪽 땅과 북쪽 땅을 향해서 각자 10분씩만 걸어보라! 한 발짝 한걸음 내 딛을 때 마다 남북한 우리 한민족은 물론, 온 세계인의 심장이 고동칠 것이다. 통일의 첫발을 내 딛음으로써 그야말로 언젠가는 740만명의 해외동포를 비롯 중국, 러시아 등에 흩어진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를 포함한 우리 한민족이 세계열강 대열의 중심에 우뚝 설날이 머지않을 것이다.’라고 제안했었다. 판문점 자유의 집 사이에 Temporary ‘임시의’라는 뜻을 가진 TI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과 T2, T3 사이의 폭4m 사잇길에 높이5cm, 폭50cm의 콘크리트의 경계석을 넘자마자 다시 문대통령은 김위원장의 제안으로 손을 잡고 북쪽으로 깜짝 월경! 4.27.남북정상회담을 압축하는 백미였다. 그 순간은 10초라도 충분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찬 두견주로 진달래 꽃잎과 찹쌀로 빚은 ‘면천 두견주’를 택했다. ‘면천 두견주’는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과 그의 딸 영랑의 설화속에서 충남 당진의 면천에 살고 있던 복지겸 장군이 투병 중 백약이 무효하자, 어린 딸 영랑은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는데, 100일째 되는 날 신선이 나타나 두견주를 담아 100일 후 장군에게 마시게 한 뒤 은행나무를 심었더니 영랑의 효성이 깃든 두견주를 마신 복지겸 장군은 거짓말처럼 병이 치유됐다고 하는 ‘면천 두견주’는 우리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는 상징적인 것이다.

뉴욕타임즈(NYT)는 ‘김정은이 북한의 덩샤오핑이 될 수도 있다.’는 한국의 한 연구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발전에 주력하겠다는 김위원장의 의지가 보인다.

1989년의 중국은 우리나라가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고, 현재의 헌법인 직선제헌법으로 개헌한 정치분위기와 유사하다. 베이징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탱크와 기관총을 동원한 무차별적인 살상으로 6.4 천안문광장의 유혈사태를 겪은 덩샤오핑은 엄청난 사회 혼란에 빠지자, 1992년 1월 남순강화이후 경제특구인 선전, 광저우, 상하이 등 자유시장 정책을 모델로 개발하고 개혁개방을 표방함으로써 급속한 경제성장의 중국의 사회주의체제의 정책적 모순을 탈피하고 오늘날 경제대국 미국과 함께 G2국가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북한의 김 위원장도 무력도발과 핵노선을 가지고 더 이상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함에 따라 같은 민족인 남한과의 평화와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절실했을 것이다. 그게 만고 역사의 순리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 우리가 한반도의 안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로 필자가 기억하는 대표적인 북한의 침투사건과 만행들을 다시 되새겨 보는 것은 1968년대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 목적 1.21 김신조 일당 사태, 푸에블로호 피랍사건(1. 23.) 신안군 임자도 고정간첩단 사건(7. 20.), 1969년대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12. 11.),  신안군 소흑산도(가거도) 근해 간첩선 격침사건(6. 1.),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8. 18.)- 이 사건으로 필자는 10.1 국군의날 4군 여의도광장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여름 포항해병사단에서 진땀을 흘리는 훈련을 하던 중 1976년 국군의날 여의도광장 행사가 전격 취소되었다. 1978년 영화배우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 1980년 완도군 횡간도 무장공비 침투사건(11. 4.),1983년 당시 버마를 순방중인 전두환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10. 9.), 1987년 탑승객 115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제1연평해전(1999. 6. 15.), 2002년 북 경비정 NLL침범, 제2연평해전 발생(6. 29.), 2004년 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함포사격)(7. 14.), 2006년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7기 미사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발사장서 시험 발사 실시.(7. 5.), 북한의 1차 핵실험(10. 9.), 2008년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7. 11.), 2010년 46용사가 순국한 천안함 피격사건(3. 26.),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2. 12.),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 2015년 서부전선 포격 사건(8. 20.),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1. 6.):'자칭' 수소폭탄 실험, 2016년 북 경비정 서해 NLL침범(2. 8.),백령도 북방에서 해안포 수발 발사(2. 20.), 2017년 신형중거리탄도미사일 (ICBM) 발사 700여km 비행한 후 배타적 경제수역에 떨어짐. 동해를 항해서 ICBM을 발사했으며 933㎞의 거리를 비행, (8. 29.) 오전 05시 57분경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화성 12형을 발사한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통과한 뒤 약 2,700km를 날아가 북태평양에 낙하 등 헤아릴 수 없는 도발들이 있었기 때문에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앞으로 한 달 정도 있으면 몽골이나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미국 트럼프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회담 테이블에서 미 국방장관이 주한 미군 철수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고 밝혔으므로, 4.27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비핵화 선언이후 불가역적(irreversible)인 북한의 대량파괴 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확실한 검증 없이 폐기하지 않는 이상은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그동안 분단의 폐해인 빨갱이, 종북좌파, 수구꼴통, 극우보수 등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탈피하고, 70년 동안 분단으로 얼룩진 정치·경제·군사적 분리 및 대립뿐 아니라 사회·문화·심리 등 여러 차원의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사유 방식과 적대적인 의식들을 풀어 나가면서 분단의 병폐들을 털어 나가야 한다.

통일이 되면 그야말로 북한지역은 천지가 개벽하는 사회간접자본(SOC)투자가 일어난다. 홍순직 국민대학교 한반도미래연구원은 2018년 4월 29일자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필요한 연간 약 307억8천만 달러 규모의 광물자원 중 절반만 북한에서 조달해도 연간 153억9천만 달러(약 16조6천억원)의 수입대체효과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세계적으로 우수한 북한지역의 지하자원의 잠재가치는 무려 7,000조원, 우리나라의 22배에 달하며, 주요 광물인 마그네사이트는 40억 톤으로 세계 2위, 흑연은 200만 톤으로 세계 3위 등 그 풍부한 매장량은 세계적 규모인데다가, 농업의 현대화 및 기계화에 따른 우리 기업들의 투자가치는 감히 수치로 계량화할 수가 없고 한반도의 경제수요와 경기부양은 과히 폭발적일 게다.

이제 한반도의 평화의 무드와 통일의 물꼬는 트였다. 당장의 통일보다는 여유를 갖고 정부와 통일전문기관 그리고 민간단체나 일반 국민들도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접촉하고 지원하고 협력해 나가면서 자유로운 발상, 창조적인 통일 방안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정부 당국은 물론 공공기관, 대학, 기업, 사회단체, 정치인, 공직자, 국민모두가 통일의 ‘비용’과 ‘편익’을 염려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 주민도 어느덧 스마트폰 보유자가 400만명 규모를 돌파했다. 물론 외부 인터넷으로부터 차단됐지만, 북한 인구의 약 6분의 1이 휴대폰을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북한도 정보화세계에 바짝 다가섰다. 당장의 통일은 어려울 지라도 자연스럽게 고착화되고 박제화된 남북분단과 통일의 개념들이 무너지고 하나가 되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구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무너진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옛 소련도 막강한 핵무기로 무장하고 있으면서도 무너진 것은 경제, ‘빵’때문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정은 위원장 체제이후 북한은 쌀값, 환율이 갑절로 치솟아 국제적인 식량거부권 문제가 더 심각하다. 북한은 식량부족으로 기아와 영양실조에 걸린 주민이 수 백 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이다. 그래서인지 핵무기도 던져버리겠다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와서 문 대통령과 평화의 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솔직히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아 비행기로 평양을 오라고 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초청해 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고 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조례도 제정하고 기금도 마련하여 북한지역과 자매결연방식의 선진농법과 농기계기술 등을 전수보급 ? 수리하는 인력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준비를 하면 어떨까? 일부 지자체에선 ‘안보 보좌관제’란 것도 도입하고 있다. 통일 후 북한지역에 공급할 식량을 남한 지역의 농수산물 등의 판로차원에서 대비하고 선점하자는 시장경제의 논리이다. 박사급 R&D연구원들을 각 분야별로 다수 확보하여 영농 ? 영어의 새로운 경영체제를 도입하고, 아울러, 그 준비된 것으로 우선 지역주민들에게 영농을 지원해 주면서 농기계운용 등 영농기술 인력을 확보해나가면, 당장에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고, 기업들로부터 지원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미래 농수산업의 고부가가치를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는 길이 될 것이다. 한편, 국정을 농단한 정부가 한반도문제의 완충역할이 될 개성공단을 철수시켰지만, 우리는 민간기업의 북한 진출과 민간단체에서 북한지역에 영농기술지원과 농기계를 보급해 주고 교류를 해온 사례들도 있다.

이제, 우린 한민족은 그동안 서로를 비판했던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통합과 통일에 장애가 되는 분단체제에서 고착화된 사유를 과감히 떨쳐 버리고 당장의 남북한 ‘평화의 무드’에 걸 맞는 정책과 담론을 내 놓고 남북협력 관계들을 실천해 나가고, 전 국민들이 동참하는 아이디어도 공모하면서 미래 통일에 수반되는 통일의 ‘비용’과 ‘편익’을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여 남과 북이 소통하면서 7400만명의 남북한 주민과 해외동포 740만명 등 8000만명이 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함께 걸어가며 만들어 나가야 할 길이 비로소 열린 것이다.

남북이 하나가 되는 날, 푸른색의 한반도 통일국기에 통일의 꽃은 4.27판문점 남북정상 환영 만찬주에 등장한 척박한 땅 한반도 방방곡곡에 어디에도 굳세게 자라는 진달래꽃(두견화)으로 통일의 축제를 하면 어떨까.

광개토대왕이 확장했던 우리의 핏속에 끓고 있는 두만강 끝자락의 연변지역부터 안시성까지 고구려라는 광활한 세계의 대영토를 보라! 동북아의 축 고구려는 중원(中原)에 대한 변방이 아니라, 조선과 만주의 옛 상고사 우리의 문명이었다. 목포에서 승용차로 평양을 거쳐 압록강을 가로 질러 한때 발해의 영토였던 연해주 곡창지대와 물자가 풍부하고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중원이라는 만주벌판에서 광개토대왕처럼 한번 호령을 해보고 싶다. 나는 (고려 때 고승 一然이 쓴 삼국유사에 나오는 우리민족의 시조 檀君의 건국 이념인)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로다~!
행정사·공인중개사 강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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