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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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과 ‘가족’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8.10.0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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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동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3월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설 및 추석 연휴'를 폐지해달라는 국민청원이 곳곳에 등장해 관심을 모았다. 청원자들이 명절연휴 폐지를 주장하는 공통된 요지는 "핵가족 시대의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며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등의 의미가 퇴색됐고 가족들이 모여 형식적인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은 전통문화 계승과 더불어 명절의 의미를 제대로 전승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명절 폐지 청원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의견도 많지만 명절을 없애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청원에 대한 찬반과 별개로 이번 청원은 그간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가장 중요한 기제였던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서,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여 일생동안 가족 구성원
들에게 다양한 지지를 해준다. 그런데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가족의 구조와 기능이 축소되고 변화되어 전통적인 가족기능의 수행이 어려워지고 있다.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핵가족과 맞벌이 가족이 일반화되었고, 이제는 미혼모가족, 다문화가족, 기러기가족, 조손가족, 재혼가족, 1인가족 등 과거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가족 형태들이 이제 우리 곁에 당당히 하나의 가족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2020년에는 1인가족이 부부자녀로 구성된 동거가족을 제치고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전통사회에서 가족이란 인간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었다. 인간은 신분이나 서열, 종교 같은 규정에 따라 '태어나는 것'이었고 가족생활이란 그 규정에 의해 표준화돼 있었다. 산업화 이후에는 '정상가족'(Normal Family)의 신화가 뿌리내렸다. 결혼한 성인 한 쌍과 자녀들로 구성된 동거가족인 정상가족은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유지됐으며 남편은 일자리를 가지고 생계를 책임지고, 아내는 가정과 가족을 위해 소임을 다하는 모델이었다.

그러나 정상가족 신화는 지속되지 않았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대거 참여함으로써 '성별 분업'이라는 이 모델의 핵심 메커니즘이 해체됐다. 또한 결혼은 더이상 '일생의 결합'이 아니라 '취소될 때까지의 결합'이라는 생각이 확산됐으며, 인공수정 기술의 발달은 전통적인 '부모 신분' 개념조차 변화시켰다. 누가 가족인지,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유동성을 띠게 됨으로써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은 점차 현실적합성을 잃어가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벡-게른스하임교수는 정상가족의 신화가 깨어진 현대사회의 가족 개념, 가족관계 메커니즘의 변화를 보고 미래의 가족형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정상가족 모델은 서구 사회를 40년 이상 지배했지요. 하지만 동거가족,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 한부모 가족, 동성애 가족 등 변화는 급격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새로운 '가족들' 입니다. '가족(the family)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가족들'(families)입니다."
물론 과거 수세기 동안에도 수많은 재혼과 결혼으로 이뤄진 부부관계, 양친 중 한쪽만 혈연관계가 있거나, 부모와 혈연관계가 없는 형제 등 다양한 가족관계의 양상을 찾을 수 있었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상황은 높은 사망률이라는 외부적 운명 때문이었고 새로운 '가족들'의 출현은 전적으로 '자신의 결정에 근거한 의도적인 행위'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제 가족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가족들의 등장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가족들의 등장은 현대 산업사회가 가져온 부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을 운명이나 관습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필연적인 상황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가족의 구성원들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사회도 “가족”이 아닌 “가족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명절을 폐지해 달라는 청원 역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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