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목포 방문객이 남긴 낯선 도시의 여행-양승희 칼람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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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목포 방문객이 남긴 낯선 도시의 여행-양승희 칼람리스트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8.11.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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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작년에 전주에 사시는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기독교와 관련된 건물과 역사자료를 연구하는 분이었다. 같이 온 동료와 함께 정명여자 중학교 내에 있는 선교사 사택을 찾아갔다. 토요일이어서인지 학교는 고즈넉했다.

정명여학교는 1903년에 개교했다. 1919년에는 전교생이 시민들과 함께 독립만세 운동을 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폐교했다가 해방 후에 복교한 학교다. 그래서 역사적 건물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학창 시절을 일깨우는 교정에는 나무가 뿌려준 낙엽으로 가득했다. 특히 묵직한 시간이 거쳐 간 석조 건물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추억을 더듬게 했다.

문화제 114호로 지정된 양동교회도 갔다. 19세기 말에 선교사들이 세운 곳이다. 그 외에도 도움이 될 만한 건물과 목포의 풍경을 안내했다. 안내자인데도 덩달아 즐거웠던 시간이 되었다.

그분은 자신도 바다가 보이는 어촌에서 자랐는데, 근대도시로서의 목포를 보니 참 좋다고 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이곳 목포에서 한두 달 지내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오겠다더니 동료들과 다시 왔다. 기독교 관련 자료를 찾아서였다. 그리고 한 달 전쯤에 또 다시 찾아왔다.

그때처럼 오거리 식당을 찾았다.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식당에 왔을 때는 10시가 다된 늦은 밤이었다. 밤 12시 30분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동료들과 제주도로 가는데 잠시 시간을 낸 것이다.
어쩌겠나. 음식이 다 떨어졌다며 고민하던 우리의 여주인은 음식을 새로 만들었다. 그분들이 이 식당의 음식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그분의 목포 사랑이 엄청 고마웠다. 역사 자료를 찾으러 왔다가 목포를 좋아하게 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목포는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감칠만한 곳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헤어지면서 연락처를 받아갔는데, 얼마 후 책을 보내주었다. ‘천년 암자에 오르다’라는 책이었다. 기독교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프로필을 보니 대학에 근무하시고 한문학을 하셨는데 관련 서적도 여러 권이다. 책 첫 면에 아래와 같은 멋진 말씀도 함께 보내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호남선 끝자락의 목포는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더 이상 낯선 도시가 아니라, 왠지 푸근하고 정다운 도시가 되었네요.’

시간이 나면, 교수님이 찾아갔던 그 길을 따라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설악산 ‘봉정암’부터 원효의 사랑이 담긴 소요산의 ‘자재암’, 그리고 나로서는 가도 가도 싫지 않은 금오산의 ‘향일암’을 친구랑 찾아가고 싶다. 그분은 ‘향일암’이 신비하고 아름다우며,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우리가 놓치는 것들, 그래서 다녀오는 것이 싱겁게 느껴지는 것과 달랐다. 조금은 한가한 시간을 만들어서 여행을 하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곳만이 지닌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과거가 주는 중후함을 찾아 여유롭게 전국을 다니는 것이 대단한 행복이 될 것이므로.

자발적인 여행을 통해 깊은 맛을 누리는 분도 있다. 목포 문학관에서 알게 됐는데, 수원에서 사시는 분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생활처럼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도는 분이다. 공무원인데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여행 기록은 ‘시’이다. 어설프나마 ‘시’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더니, 문자로 자신의 시를 보내곤 하는 분이다.

여행이 일상화되었다. 세계로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여행기는 쓰고 싶어서이든, 보고 싶어서이든 필요하다. ‘좁은문’을 쓴 앙드레 지드는 출판사에서 작품비를 선불로 받았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시간 제한도 없었다. 그래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작품을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시스템도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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