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霧山水로 이어지는 雲林山房 4代畵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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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霧山水로 이어지는 雲林山房 4代畵脈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2.10.2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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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난으로 가는 길

요즘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이 그림을 배운다.
지금으로부터 백년(百年)만 거슬러 올라가도 화가(畵家)를 화공(畵工)이라 하여 그 등급이 평민보다 낮은 환쟁이 시대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클 무렵만 하더라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가난의 상징이요 배고픔의 지름길이었다.

친 자식 8남매에 나까지 키우시던 백부님께서는 그럼에 자질이 있는 자식들이 있었는데도 한사코 반대하셨던 것은 젊은 날의 자신을 그때까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음악가라고 배부른 시절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니는 음악에 소질이 있으니 음악가가 되거라” 하시면서 끝내 그림 그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 무렵의 내 생각은 화가가 되는 것은 아버지와의 정신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아버지께서 못 다한 한을, 그림을 통하여 서로가 일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있을 때였다.

그로부터 나는 방학 때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신안군 암태도에 있는 친구 집에 머물면서 내 나름대로 그림을 시작하였다. 그나마도 어깨너머로 익힌 것을 눈대중으로 그렸으니 오직했겠는가마는 어찌됐던 기초도 없이 시도(試圖)한 조잡한 그림들을 황금덩어리 모시듯 벽장 깊숙이 숨겨놓았는데 며칠 후, 벽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불숙 튀어나와 버렸다.

백부님께서는 그림을 한참보시더니 “썩을 놈-그림 그리지 말라니까” 화를 내시면서 그림을 전부 찢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너는 죽었다.” 현장을 목격한 누나들의 말이었다.
지레 겁을 먹고 그날 하루는 친구 집에서 비몽사몽 기나긴 하룻밤을 지샜다.
다음날 ‘나 죽었소’ 하고 들어갔더니 좋은 안색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싶냐?” 하시면서 마지못한 듯 승낙을 해주셨다. 이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날 하루는 온 종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방방 뛰어다녔다.

아마 백부님께서는 “그림 같잖은 그림에서 노력하면 되겠구나” 하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보시지 않았을까?

“기왕에 붓을 들었으니 가문의 전통과 그 위상을 누대에 빛낼 각오가 되어 있어야하고 특히
선대(先代)들의 명성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하신 것이다.
한마디로 ‘수신제가 화맥 평천하(修身濟家 畵脈 平天下)’를 강조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더하여 미산 할아버지께서도 화가의 길을 원했으나 소치 증조부님의 반대로 숨어서 그리다가 나중에야 승낙을 받으셨다는 이야기까지 해주셨는데 이것은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위한 격려의 말씀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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