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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故 우하 김정재의 생애사김경완 신안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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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3  18: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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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하의 첫 개인전이 열린 밀물다방, 맨 왼쪽이 우하, 세 번째가 서한태 박사(1979년)

얼마 전 신안교육지원청을 방문했다가 2층에 올라가는 계단에 걸려있는 우하 김정재의 작품을 보았다. 단정하면서 힘 있는 해서체 글씨로 학문을 장려하는 글귀였다. 반가운 마음에 “여기 우하선생님의 작품이 있군요?”라고 했지만, 옆에 있던 장학사나 직원들은 ‘우하’가 누구인지, 어떤 뜻을 가진 글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이 건물에서 장학사와 교육장 직무대행까지 역임한 교육자이며, 유명한 서예가인데, 그 후배들이 이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이것이 계기가 되어 20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지역의 대표 서예가 우하 김정재의 삶을 추적하고, 부족한 내용은 주위 분들의 기억을 더듬어 정리해 보았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곧 발간 예정인 『신안문화』 제29호(신안문화원) 특집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섬 출신의 교육자

   
청묵회 제자들의 작품전에 참여한 우하 김정재(1995년)

우하 김정재(宇下 金正財, 1930~1998)는 전남 신안군 비금도 출신으로 평생을 교직에 몸담으면서 비교적 늦은 마흔 즈음에 서예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열정적인 노력과 천부적인 예술적 기질이 있어서인지 곧 두각을 나타내었고, 국전초대작가 심사위원, 현대미술관 초대작가 등 서예가로서 성공한 삶을 살아온 예술가다.

김정재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손윤엽 슬하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자랐다. 해방 직전인 1945년 3월 비금초등학교를 졸업(18회)하고, 1946년 목포동강중학교(현 목포홍일중학교)에 입학해 3회 졸업생이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0년 6월. 1년 과정의 광주사범학교(현 광주교육대학) ‘강습과’에 입학해, 1951년 7월 11일 수료(2회)했다.

김정재는 1951년 영암의 서호북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첫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1년 후인 1952년 목포서부초등학교로 발령받아 2년간 근무할 때 당시 암태도에서 생활하던 4살 연하의 박복단(1934년생, 당시 21살)을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신부의 친정은 신안군 안좌도 대척리였지만, 어릴 적 일본과 인천에서 생활하며 여학교까지 나온 보기 드문 엘리트 여성이었다. 이후, (영암)장천초, 북교초에 근무하다가 홀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인 비금도에 들어가 비금동초(1962, 63년)에서 근무할 정도로 효자이기도 했다.

평생의 스승 남정 최정균

   

작품에 열중하는 우하 김정재(1986년)

1968년 중앙초로 발령받은 후에야 우하는 서예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동료교사였던 평보 서희환(平步 徐喜煥, 1934~1995)이 국전에서 연이어 특선을 하고, 대통령상까지 받은 후 서울 수도여자사범대 부속고로 영전해 간 사건이 있었다. 서예 때문에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되는 것을 지켜본 우하는 큰 자극을 받았다. 1973년 청호서예원을 다니던 우하는 익산에서 내려와 지도해 주는 남정 최정균을 만났다. 평생의 스승 남정 최정균은 1924년 전북 임실 출생으로 소전 손재형의 제자이며, 나중에 원광대 서예과를 설립한 서예계의 대가이다. 다행히 목포에 ‘남정’의 작품이 금석문(하동현시장공적비)으로 남아 있어 그 인연이 새삼 주목을 받는다. 우하는 법첩을 두루 섭렵했지만, 전서와 해서에서 특별히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1986년 두 번째 개인전에 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8~1987) 선생은 ‘우하의 끊임없는 서법 연구와 쉴 새 없는 연서는 물론이거니와 『대학』과 『채근담』을 좌우에 두고 인격도야에도 소홀함이 없다’라고 특별히 칭찬했다. 우하는 스승의 가르침을 늘 새기며 기교에 앞서 인품이 중요함을 늘 강조했다. 보통 글씨 쓰는 것에 능하거나, 아는 것이 좀 많아지면 경거망동하기 쉬워 주위의 눈총을 받게 되니 짐짓 경계할 바가 아니겠는가. 우하가 자신의 마지막 제자, 한솔 김광숙에게 준 호가 백야白也인 것도 ‘먼저 착하게 살며 글씨를 쓰라’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목포의 묵향 우하
우하는 1972년 전남도전 서예부 입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 시작해 3년 연속 도전에 입선했다. 1974년에는 제1회 한국서예공모전에서 특선을 하고, 드디어 1975년 국전 서예부에 입선했을 뿐만 아니라 전남도전에서 처음으로 특선을 거머쥐었다. 또, 1977년, 78년 국전에서 연속 입선의 성과는 거뒀다. 그리고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했을 때 김정재 부부는 서로 얼싸안으며 ‘인자는 원 풀었네’라며,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이후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까지 먼 길을 쉼 없이 달렸다.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한다는 것은 결과만 봤을 때 영광스럽고 기쁘지만, 그 과정이 무던히 길고 고통스런 시간들로 점철되었다. 교사의 급여가 많지 않아 가정을 꾸리는데 벅찼던 탓에 우하선생님이 외부로 사사를 받으러 다니는 비용은 아내 박복단이 별도로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글을 쓸 수 있게 몇 시간이고 먹을 갈았던 이도 아내 박복단이었다. 우하에게 가장 가까운 비서이자,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아내는 우하가 돌아가신지 20년이 되었지만, 생존 당시의 모습 그대로 2층 작업실을 보존하고 있다. 한 예술가의 흔적을 쉽게 없앨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다. 

우하서예기념관 건립 기대
1996년 12월 유달산 노적봉 아래에 자택을 2층 양옥으로 신축했다. 그동안 작은 관사에서만 오랫동안 살았기에 2층에 ‘우하 서예연구실’을 마련했을 때는 너무 기뻤다. 밤에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2층에 올라가 글을 쓰는 날이 많았다. 그곳에서 문하생들의 모임인 청묵회 회원들과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젊은이보다 더 푸른 꿈을 키웠다. 목포대학 미술학과에서 15년간(1983~1997) 제자들을 지도하고, 1997년부터 우하예술문화상을 제정해 예술인들을 지원해 준 것도 큰 귀감이 되었다.

1997년 2월 산정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하고, 1998년 8월 전라남도교육위원에 당선되었다. 드디어 제2의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택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리고 3개월 여가 지난 1998년 12월 12일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목포의 묵향으로 더 오래 향기를 내품어야 할 예술가가 그렇게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2007년 갓바위 문화의 거리에 우하 선생이 평소 아끼던 국전특선작품을 비표에 새겨 행적비를 세웠다. 제자들과 목포예총에서 정성을 모아 세운 비석이다.

우하 선생의 서예세계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제기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는 방법들이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논의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예향목포나 고향 신안군에서 그 뜻을 충분히 받아들여 ‘우하서예기념관’을 추진하길 제안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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