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작가 이성관의 두근두근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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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작가 이성관의 두근두근 옛이야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2.10.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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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불
▲이성관 작가

등잔불

등잔불 가물가물 불빛이야 희미해도
불빛만한 거리에서 책을 읽고, 숙제 하고
엄마는 바늘귀 틔워 해진 옷을 기웠네.

온 가족 둘러 앉아 도란도란 얘기소리
소올솔 바람 타고 창밖으로 흐르면
어둠이 저도 듣고파 창가에 서성이고.

TV가 없던 시절, 라디오도 없던 시절. 아니, 전기가 없어 가로등이며 한여름의 선풍기 에어컨 냉장고. 전신 전화 등의 문명의 이기는 물론이요, 산골마을엔 책이라야 겨우 교과서. 아니, 그마저도 있으면 다행으로 학교 도서관은 생각도 못한 시절이라 지금 생각하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사무칠 만큼, 아무리 책을 읽고 싶어도 위인전이며 동화책 등 교과서 외의 책들은 아예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요약컨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전 시대의 왕이나 임금도 부러움이 없을 만큼 너무도 편안하고 안락하게 이용하고 있는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먼 나라의 얘기로 감히 상상으로만 여기었던 시절.

온 마을이 거의 다 울타리 돌담 사립문 등으로 둘러싸인 초가집으로 집의 구조상 방이라야 온 식구가 한 곳에서 먹고 자는 한두 개. 많아야 두세 개가 고작인 초가집에서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밤이 오면 자연스레 벽을 등받이 하고 온 식구가 비잉 둘러앉아, 화제라야 하루에  일어난 일이랑 이웃이며 마을 누구는 어쩌고 누구는 어쨌다는 등등 그저 그렇고 그런 얘기들이 날마다 반복되었지요.

빛이라고는 오로지 방 한 가운데 놓인 등잔. 눈높이 정도의 등잔에 놓인 초꽂이에서 가물거리는 등잔불 뿐. 하여, 칠흑 속의 한 밤. 마당에라도 나갈라치면 잘해야 손 전구를 켜고 간다거나 아니면 관솔이라 부르는 나무 조각에 불을 붙여 드나들곤 했던 시절.

소변이야 방 안에 놓인 요강이라는 변기에 보면 그만이지만, 잠결에 큰 것이라도 마려운 밤에는 혼자 가기가 무서워, 무섬증 이기지 못하고 뒤척거리면, 엄마는 잠결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일어나 볼일을 다 마칠 때까지 으스스 찬바람에 몸을 흔들며 마당에 서 계시던 어머니를 배경으로, 측간(변소)에 앉아 있노라면 찌이찍 새앙쥐들이 세상 만난 듯 주변을 수도 없이 드나들고, 뒷산 어디선가 들려오는 짐승들의 울음소리에 서둘러 볼일을 본 듯 만 듯 오가곤 했던 시절.

“엄마!/ 어찌 알고 엄마 먼저 문을 열어요.
 처마끝 고드름이 키를 넘는 겨울밤./ “옛날에 옛날에―.”
호랑이 도깨비 여우 이야기./ 생각나 두근두근 가슴 뛰는데
“부엉 부우엉-.”/ 때맞춰 부엉이 밤을 우는데
호올로 마당가에 우리 어머니/ 볼일이 끝나도록 서 계셨어요.
시방도 고향집 변소길 가면/ 그날처럼 마당가에 우리 어머니.(‘변소길’ 전문)

이런저런 가족들의 얘깃소리를 들으며 숙제라도 있는 날이면  희미한 불빛 아래 교과서를 펼치며 책을 읽고 숙제 하는 일들을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시력에 큰 불편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로 그것은 청소년 시절을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오롯이 살아온 값진 선물이 아니고 무엇일까.      

한 땀 한 땀 어머니 해진 옷을 깁습니다
깁는 옷 자리마다 사랑도 넣을까요
바늘이 살아 숨 쉬며 돌아 돌아갑니다.

눈도 귀도 있는지 손도 발도 있는지
해진 골 찾아가며 누벼가는 바늘 끝
기운 옷 다시 입으면 엄마 내음 소올솔. (‘바느질’ 전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숙제를 하는가 하면, 엄마는 그 동안 찢겨지고 해진 가족들의 옷을 깁는다거나, 온 식구가 잠이 들어 밤이 이슥하도록 물레를 돌리며 실 잣는 일을 반복하였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당시 가족들이 입고(솜옷) 신고(버선) 머리에 쓰는 모자(벙거지)들은 대부분이 자급자족. 여름이면 주로 모시길쌈에, 겨울이면 손수 가꾼 목화에서 얻은 솜으로 옷감(목화-솜타기-물레질-실-베짜기-베틀)을 만들어 가족들의 옷을 지어야 했으니 한겨울도 엄마는 깊은 잠을 어찌 이룰 수 있었을까요.
그런가 하면 어머니와는 달리 누나들은 밤이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장에서 구한 색실로 가족들의 겨울나기를 위한 장갑이며 모자 쉐타 족두리 등을 짜는가 하면, 동그란 수틀을 앞에 두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란거리며, 곱디고운 비단실로 시집 갈 때 지니고 갈 고운 천에 밤 깊은 줄 모르고 무지갯빛 고운 꿈을 수놓으며 얼마나 가슴을 설렜을까요.


돌이켜 보면 그때가 언제였냐는 듯 아스라이 멀고 먼(?) 옛날 얘기. 지방에 따라 어디서 자랐느냐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겠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지금 50대 전후 이상 세대들의 거의 대부분이 공통적인 생활이 이러했으리라 여겨지는데. 참으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바로 이런 것인가 하고, 어려웠던 그 시절이 눈앞인 듯 떠올려지면서도 글을 쓰는 이 순간 눈시울이 젖어들듯이 그리워지는 건 또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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