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다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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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다산이야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2.12.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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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 줄 아는 지혜

근래에 유독 다산 선생의 지혜가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다산이 생존해 계시던 당시에도 다산을 직접 만났거나 다산의 저술을 접한 사람치고 그의 높고 뛰어난 학문수준에 경탄을 발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탄생 250주년을 맞는 올해는 모든 언론매체에서도 특별히 자주 다산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옳고 바르게 살고 진리탐구를 위해 생애를 바친 그의 독실함 때문에 세월이 가도 그에 대한 찬사가 그치지 않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이 처한 환경으로는 최악의 상태인 귀양살이라는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끝내 좌절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당당하게 버티며 이겨낸 결과로 얻어진 복이라고 여겨져, 그분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다산은 그렇게 훌륭한 지혜를 터득할 수 있었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다산은 일찍부터 ‘사(俟)’라는 글자 하나를 가슴 속에 담아놓고 살았습니다. ‘기다린다’라는 그 글자를 가장 의미 깊게 생각하고, 자신의 아호(雅號)를 ‘사암(俟菴)’이라 자호(自號)하였습니다. 한창 벼슬하던 시기를 지나 유락(流落)한 때로부터는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모든 논리는 ‘기다림’이라는 말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경세유표』라는 책 이름의 유(遺)라는 글자도 죽은 뒤라도 기다릴 테니 제발 국가정책으로 활용해주라는 뜻이었고, 『목민심서』라는 책 이름의 ‘심(心)’이라는 글자도 당장 실행은 못하지만 마음으로라도 백성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뜻이니 실행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리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나를 알아주건 죄를 주건          / 知我罪我
         뒤에 올 학자들이나 기다려지네 / 以俟來後


이런 구절에서도 ‘기다린다’는 다산의 넉넉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주자(朱子)의 「주역오찬(周易五贊)」에 화운(和韻)한 글의 한 대목입니다. 그렇다고 감나무 아래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속담 같은 기다림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성인이 주역을 연역(演譯)했음은                  / 唯聖演易
        마음을 깨끗이 씻으려 함이니                      / 于以洗心
        하늘의 큰 명(命)을 우러러 보며                   / 對越景命
        얇은 얼음을 밟듯 깊은 연못에 임함 같아야지 / ?履淵臨
        순결하고 고요하고 정미하여야만                 / 潔靜精微
        그때야 마음에 얻음이 있으리라                   / 乃有心得


천명(天命)을 따르며 마음을 깨끗이 씻고 살얼음을 밟고 깊은 물가에 서있는 것처럼 조심하고 삼가하며 고요한 마음으로 정확하고 치밀하게 연구를 거듭해가야만 얻은 것이 있지, 그냥 기다린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40세에 귀양살이를 시작하여 18년을 지내고 고향에 돌아와 18년, 36년을 기다리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가 75세에 세상을 떠난 분이 다산입니다. 그 긴 기다림으로 끝내는 학문적 대업을 이룩하여 후세의 학자들이 그를 극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기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고 자기만이 가장 잘났다고 떠드는 사람들, 빠른 성공만을 바라지 말고, 제발 다산처럼 기다리는 지혜도 가져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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