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霧山水로 이어지는 雲林山房 4代畵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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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霧山水로 이어지는 雲林山房 4代畵脈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2.12.1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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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것이 생선(生蘇)가게였다면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선배의 주선으로 불광동 산비탈에 몫이 좋고 가격이 싸다는 아홉 평짜리 집을 소개 받았다. 그 집은 4평 정도의 가게를 중심으로 양쪽에 조그만 방이 하나씩 붙어있었고 뒤로는 부엌과 재래식 변소가 있는 허름한 집이었다. 20만원의 은행대출을 안고 25만원만 투자하면 인수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어서 약간 무리하게 장만하였다. 그래도 결혼 후 처음으로 가져본 우리들의 집이였기에 쓸고, 닦고, 고치고, 광내는데 여러 날을 허비하였지만 전혀 피로한 줄을 몰랐다.

산비탈 곳곳에는 당시 유행하던 국민주택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었고 족히 몇 대(代)를 살아온 것 같은 원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었다. 상존하는 인구가 적어 일거리가 많은 동네는 아니었지만 애초부터 세탁소를 겨냥하고 산 집이라 기술자를 두고 다시 시작하였다. 허나 모든 여건이 이문동과 거의 비슷한 수준 이어서 걱정 반, 불안 반으로 하루하루를 이슬아슬 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저씨가 직접 하면 밥은 먹고 살겠소” 하면서 세탁 기술을 친히 전수해주는 착한 기술자 덕분에 눈설미가 있었는지 불과 일주일 만에 기본기술을 터득하여 일선(一線)에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졸지에 이름도 없고 성도 없는 <세탁소 아저씨>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그때 그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겠는가.

그러한 와중에도 화가의 꿈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밤낮없이 짬이 날 때마다 붓을 들었고 영업이 끝나면 거의 자정까지 그림을 그렸는데 그 정성에 비례하듯 그림역시 점점 좋아지고 있었으며 1970년 제5회 백양회전(白羊會展)에 출품해서 특선(장려상)의 기쁨까지 누렸다.
 
그런데 -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당시 유행하기 시작했던 값비싼 세무점퍼를 다리미질의 실수로 옷을 버리게 된 사건이 있었다. 손발을 싹싹 비비는 사정으로 삼만 원이라는 거금을 변상해주고 없었던 일로 입막음까지 마무리를 잘하였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얼마 후 ‘저 집 가면 옷 버린다’는 소문이 인근 동네까지 확 퍼져 그 나마의 일마저 깡그리 없어져 버린 것이다.
어찌됐던 거의 2년에 가까운 세월을 하루하루 잘 버텨왔었는데 이문동 한손, 불광동 한손, 결국은 두 손 다 들고 말았다.
               -그것이 생선 가게였다면 파리라도 날리고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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