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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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08.0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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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동네산책' 책방지기/작가)
윤소희 -'동네산책' 책방지기/작가

한옥이 로망이던 때가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작가의 작고 낡은 한옥과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에 반해 뻔질나게 그 동네를 드나들곤 했다. 한옥에 사는 언니들도 몇 명 알게 되었다. 덩달아 집값도 여러 번 알아보았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 동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20층 넘는 번듯한 아파트가 들어섰다. 한옥 살던 지인들도 옆 동네 빌라로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 구석구석 제각각 아름답던 동네들이 ‘뉴타운’이라는 기이한 이름으로 대동단결하고 있었다. 

아파트가 들어선 동네는 이제 더 이상 내게 매력을 주지 못 했다. 아는 사람이 살고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걸핏하면 그 동네로 발길을 돌렸다. 철거가 시작되고, 기초 공사에 들어가 아파트가 다 지어지기까지 몇 번씩이나 가서 어슬렁거리고는 했다. 그놈의 미련 때문에. 그래봤자,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 왔지만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였다. 서울 어디에나 널린 그냥 아파트였다.

툇마루가 간절히 그리울 때면 북촌 골목을 기웃거리다 삼청동이나 성북동 일대의 한옥 카페에 들어가 잠시 앉아 있었다. 전주한옥마을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한옥들은 금방 시들해졌다. 내가 한옥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옥 특유의 가옥 구조에 있는 게 아니었다. 서까래와 대들보와 대청마루의 낭만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옥에 깃든 일상이, 어쩌면 너저분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 좋았다. 이런 일상에 깃들어 있는 것과 구경꾼이 되어 매끈하게 개조한 한옥을 눈요기 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차는커녕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도 좁은 골목, 가파른 경사와 불규칙한 계단, 경작 본능을 어쩌지 못해 그 좁은 길에 스티로폼 박스며 ‘고무 다라이’를 줄 세워 심은 꽃과 푸성귀들, 무심하게 열린 대문, 디딤돌 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신발짝, 기둥에 걸린 마늘 다발. 서울에서 이런 일상과 마주치는 일은 무척 낯설다.

그 낯섦에 매료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서늘한 자각이 곤두선다. 그 낯선 일상은 아파트가 점령하기 전 어린 시절 우리집의 익숙한 일상이었고, 엄마의 삶이 풍겨내는 친숙한 냄새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일상이 그토록 정겹고 눈물겨운 것인지.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지나가버림으로써 낯설어졌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밖에. 

‘낯설게하기’라는 문학 기법이 있다.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빅토르 시클로프스키가 만든 용어인데,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익숙하고 친숙한 것보다는 낯설고 새로운 것이라야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는 이론에 따라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며 강박에 시달린다.

예술 창작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물건,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건물, 새로운 도시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 한다. 새로움에 지쳐 그 무엇도 새롭지 않다. 결국 과거로 회귀한다. 레트로니 뉴트로니 하는 용어들이 마케팅의 최전선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에, 오래된 미래가 반짝이고 있다.

나에게는 목포가 오래된 미래였던가. 

목포역부터 근대역사문화관 근처까지 걸으며 느꼈던 낯선 매력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이 거리가 아직도 낯선데, 공사중인 건물들이 눈에 띌 때면 행여 이 낯선 매력이 사라질까 염려한다. 설마 저기에 스타벅스가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익숙한 프렌차이즈가 이 낯설고 매력적인 거리를 어디에나 있는 흔해빠진 곳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조마조마한 발걸음은 자꾸만 오래된 미래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북촌 대신 북교동 일대를 걸으며 나만의 ‘낯설게하기’를 즐긴다. 여전히 한옥은 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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