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감화원 원혼 달래는 진혼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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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감화원 원혼 달래는 진혼제 열려
  • 김영준
  • 승인 2019.08.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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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고하도에서... 잊혀진 역사 밝히는 작업 서둘러야

[목포시민신문=김영준기자] 일제강점기인 1938년 목포 고하도에 소년범죄자들을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목포 감화원’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세워졌다.

하지만 명목과는 달리 연고가 없는 발달장애인들이 수용됐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들의 행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지난 24일 이곳에서 수용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진혼제가 처음으로 열렸다.

지역 사학자들에 따르면 목포 감화원은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조선감화령에 근거해 원주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졌고 5만여 평이 넘었다는 학교부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학교정문 기둥과 학교축대, 우물터 등만이 남아 있다.

철저히 외부세계와 격리돼 고하도 섬에서도 외딴 곳에 세워졌고 학교 정문마저 바다를 향해 있어 선박이 아니면 오도가도 못하는 곳이었다.

목포 감화원은 해방 이후 22년 동안이나 시설이 유지됐지만 설립초기 발달장애인 24명 등 모두 33명이 수용됐고 의무요원 2명 등 관리자만 18명이 배치됐지만 해방이후 지금까지 수용자들의 행적은 밝혀진 게 없다. 대도 조세형은 유년시절 이곳에서 생활했던 자신의 끔찍했던 기억을 증언하기도 했다.

최성환 목포대 사학과 교수는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강제로 이쪽에 모아놓고 인권을 유린하고 사회적으로 격리를 시켰던 그런 장소 기능이 강했던 곳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죽은 아이들의 경우 장례를 제대로 치러주지 않고 팬티에다 이름만 써가지고 저 바다로 떠내려 보내는 그런 것들을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을 하신 적이 있다“고 밝혔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에 의해 어린 원혼을 달래주는 진혼제가 오래 처음 열리는 등 목포 감화원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곳을 둘러싼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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