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 조준 동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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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다”  - 조준 동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09.1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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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 교수
조준 교수

얼마 전 직장인이라면 매년 의무적으로 받아야만 하는 가정폭력예방교육을 받았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강의를 듣는 태도가 별로였던 것 같은데 그날은 200명이 넘는 교수들이 참여했으나 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던 것 같다. 그날 강의를 담당했던 분이 “부부관계는 로또와 같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지지리도 안 맞는 것이 꼭 같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그 말에 다들 격하게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요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가 모 케이블 TV에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고 한다.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의 원작자는 유명한 실존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이다. 사르트르는 그의 희곡 ‘출구 없는 방’(1944)의 대사를 통해 “지옥, 그것은 타인들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고 주장한다.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에 따르면 이 지옥은 피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근거를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인간은 타인이 있는 한 그 시선과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걸 의식해 완전히 주체적일 수 없게 되므로, 타인의 존재 자체가 지옥이다. 

공공장소에서 무례한 사람 때문에 기분 상할 때, 직장에서 갈등을 겪을 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했을 때,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과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 우리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소환하곤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타인에게서 지옥을 경험하고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준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인다. 즉 자신의 필터로 세상을 해석한다. 문제는 이 필터는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걸러서 듣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옥’이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사람들이 내 맘 같지 않다”,“저 사람은 말 귀를 못 알아 듣는다”. 그러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자신의 필터를 통해서 알아들을 뿐이다. 

괴테가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밖에는 들을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필터를 통해서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불통이 오고 갈등이 생긴다. 얼마 전 있었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두 집단이 너무나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을 보았다. 소위 ‘진영 논리’에 의해서 말이다. 팩트는 분명히 있지만 우리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해석이 극명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고 극단적인 갈등으로 진행되어 가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말이란 표현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 의도와 전혀 다른 말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검소함이 인색함으로, 성실함이 여유없음으로, 배려심이 우유부단함으로, 추진력이 독선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결국 나의 실존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타인의 해석에 의해 상처받고, 우리의 괴로움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주장처럼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존재한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렇다면 이 관계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서로의 다른 생각을 인정해주고 존중해 주는 것,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독립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사르트르는 “타인의 굴레와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한 참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군가로부터 강요된 삶을 살고 있다면 바꾸라”고, “우리는 지옥을 깨고 나올 자유가 있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우리의 이‘지옥 같은’ 삶을 바꾸어보자.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그들의 말이나 행동으로 지옥을 경험 할 때, 타인이 주는 상처를 원망하는 대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인정해 주고,  타인의 시선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내 삶속에서 스스로 내가 지향해야 하는 참된 나를 찾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옥을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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