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신문 - 목포고 목포역사 탐구 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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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신문 - 목포고 목포역사 탐구 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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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2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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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역사적 아픔 UCC에 담으로 노력
목포 감화원의 인권침해 사실 알고 국가에 대한 소중함 느껴 

[[목포시민신문=청소년기자/목포고 김주언]지난해 교내에서 주최하는 목포역사탐구 UCC 제작에 친구 3명과 함께 참여했다. 친구들 모두 목포에서 태어나고 목포에서 자란 목포 토박이란 점이 목포 역사를 탐구하기에 안성마춤이라 생각했다. 
특히 교과목에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배우고 있어 역사적 반일 감정이 고조되 상황과 역사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마침 학교에서 ‘역사 바로 알기대회’가 마련됐다.

목포고등학교 김주언 청소년기자
목포고등학교 김주언 청소년기자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기 위해, 우선은 우리 고장 목포를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대회에 지원했다. 친구 3명과 함께 조를 짜서 목포의 역사와 문화를 한층 더 심층적으로 알고 아픈 역사에 대해 알리기 위해 참가했다. 이와함께 우리는 미래에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을 때 우리의 고향인 목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한 마음으로도 참가했다.

먼저 UCC작품 제목을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근대사의 중심지, 목포’로 정했다. 작품에 담을 주제는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이 목포에 했던 수탈.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목포의 저항과 지금까지 남아있는 일제의 흔적들’로 정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주제를 선정에 앞서서 목포 역사의 공통점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목포가 일본 강점기에 일제의 수탈을 위해 강제로 개항된 항구 도시였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목포와 관련된 수많은 역사 중에서 일본 강점기에 목포가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좀 더 집중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이후부터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의 식민지배가 시작되고, 우리의 고장 목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은 목화 1904년 목포 부근 고하도에서 면화 재배를 시작하였고, 일본은 ‘감화원’이라는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감화원은 문제아들이 갔던 교육시설로 알려졌었지만, 세뇌 적인 교육해 병기로 만드는 정신적 생체 실험실과 같았다. 일제는 목화재배뿐만이 아닌 쌀에서도 수탈이 매우 심하게 일어났고, 심지어는 노동력까지 착취하였다. 그 노동력 착취의 결과물이 방공호이다. 방공호는 일본 자신들의 몸을 피하고자 만들었고, 지금 목포에 몇몇 곳에 방공호가 남겨있다.

이러한 수탈들을 견딜 수만 없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1919년 3·1운동을 전개하였고, 목포도 4·8운동으로 일제에 저항하였다. 그 이후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끝으로 우리나라는 조국을 되찾을 수 있었고, 우리나라, 그중에서도 우리 고장 목포에서도 지금까지 일제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무사히 작품을 제작했다. 그리고 목포의 역사적 아픔에 대해 더욱 알게 된 동기가됐다.
청소년기자/목포고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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