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신서의 교육이야기] 영화 ‘두 교황’.....좌우 날개를 서로 물어뜯어, 날수 없는 우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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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신서의 교육이야기] 영화 ‘두 교황’.....좌우 날개를 서로 물어뜯어, 날수 없는 우리사회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12.2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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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신 서 (전 전남도교육청 정책연구소 소장)
구 신 서 (전 전남도교육청 정책연구소 소장)
구 신 서 (전 전남도교육청 정책연구소 소장)

[목포시민신문] 한해가 저물어가고 성탄절, 새해에 이르지만 국민모두가 사회전반에 대해 답답함을 감출수가 없다. 정치, 종교, 우리 사회의 지도자 어느 하나가 그 답답함을 해소하고 작은 희망을 찾는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 갈 기회가 있어 가족과 함께 영화 ‘두 교황’을 볼 기회를 가졌다. 금년 4월17일 로마 바티간 공국에서 프란치스코 현 교황을 알현하는 삶에서의 영광과 감동을 경험하였다. 그 자리에서 세월호희생자 가족을 위로해 주신 점에 대한 감사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부탁을 드렸다. 이러한 개인적 이유로 이 영화를 사전에 내용도 파악하지 않고 선택하였지만 내가 본 영화중 ‘인생영화’가 되었다.

베네딕토16세 교황은 2005년 콘클라베를 통해 보수성향으로 언론에 그려지며 교황직에 올랐다. 8년이 지난 즈음 여러 이유로 퇴임을 결심하고 있던 시기에 교회의 타락과 추문에 회의를 느끼고 사직서를 품에 넣고 있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논쟁과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담는다.

2013년 2월 27일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독일출신의 베네딕토 16세와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의 아르헨티나출신이며 최초의 예수회 출신인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주인공으로 한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보수적인, 보수성을 지닌 개혁적인, 두 남자의 관용과 용서의 이야기

엄숙한 종교 영화이라기보다는 신 앞에서 가장 인간적인, 두 남자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다.

베네딕토 교황은 “사랑의 활동에 참여하는 많은 그리스도인 사이에 증대하는 세속주의와 행동주의에 직면하여, 묵상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여야 할 때이다.”라도 말하는 전통적이고 원리적인 입장의 보수성을 견지한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항상 검소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고, 사회적 소수자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관용을 촉구하였으며, 여러 가지 다양한 배경과 신념,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이 오갈 수 있도록 대화를 강조하였다. 그는 소박하고 격식에 덜 얽매인 형식에 따르는 생활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예가 교황공관을 사용하지 않고 신부들이 기거하는 성녀 마르타 호텔을 자신의 거주지로 선택하였다.

새로운 개혁 대 현실의 타협, 권위적인 절대성 대 동의를 획득하는 수용의 리더십, 권력의 무게와 책임 등을 놓고 티격태격한다. 그 과정 중에 베네딕트 16세는 나치의 전력과 교황청의 성추문 은페 의혹을 고백하였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치하에서 소위 ‘더러운 전쟁’ 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군대’가 저항하는 국민들을 체포, 구금, 실종, 살해가 자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비록 사람들을 구하려는 선한 의도일지라도 군부와의 타협이 오랫동안 가슴을 짓눌러왔음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털어놓는다. 그 약점은 단순한 주홍글씨가 아니라 더 나은 인간, 혹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베네딕토16세를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와 프란치스코교황 역의 조너선 프라이스 두 거장의 연기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울 지경이고 실제 인물들과 외모 또한 너무 비슷하다.

두 교황’은 이 세상이 좌우의 날개로 날면서

두 교황은 대화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종교적 신념과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양보 없는 설전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농담 같은 선문답을 주고받는다.

서로의 약점과 고통을 함부로 들추지 않는다.

마음속에 묻어둔 어두운 비밀을 고백할 때에는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다.

둘의 대화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동시에 상대방의 실수를 용서한다.

서로가 그 과정에서 마음을 열고 타협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도 구원의 길로 이끈다.

대화의 품격과 깊은 사유에서 비롯된 행동의 진중함에 매료된다.

그 과정을 엿듣는 우리에게도 정화가 되는 것 같은 진기한 경험을 하게 한다.

우리는 소위 ‘조국정국’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급격한 분열을 경험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을 내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을 치는 것이라 생각하는 세력, 촛불정신을 그나마 지켜내려면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야 하고 그렇다면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세력, 어느 입장도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들로 나뉘어졌다. 평등과 공정성에 대한 담론이 새롭게 해석되는 계기도 되었고 검찰을 비롯한 특정한 권력위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불평등, 꼰대, 청년, 분노, 386이라는 언어가 빈번히 등장하면서 좌파와 진보에 대한 이념적 공격이 강해졌고 민주화, 평등, 진보의 가치를 조롱하고 공격하는 일베의 담론도 활발해졌다.

서로가 또 하나의 자신의 날개임에도 불구하고 물어뜯는 일상화가 진행되어 미래의 희망새가 날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사회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품고, 품격 있는 대안을 설파하는 보수지도자가 더 그리워지는 때이다.

필자가 로마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을 알현했다.
필자가 로마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을 알현했다.

스스로를 보수우파로 자임한 황교안 대표

어느 사회나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변화와 개혁을 하려는 추진력과 정통을 유지하고 합리성을 추구하는 추진력이 모두 필요하다. 시대의 환경에 따라 대중은 진보 쪽에 힘을 보탤지 아니면 점진적 계속성에 무게를 두어야 할지를 결정한다. 모든 것을 선거로만 바라보고 대응하는 지금의 보수적 추진력은 충분할까?

의석수 108석의 거대 제1야당의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 부대를 이끌고 선두에 서서 국회침탈을 지휘하였다. 태극기를 든 이들은 기물을 부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국회를 무법천지로 만들었지만 황대표는 이들을 향해 ‘이미 승리한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과거 군부독재 시대에는 전원 구속되어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을 사안이다.

황대표는 이 땅의 군부독재시대에 저항하는 반독재 민주화 시절이나 노동자 농민 등 소외계층의 투쟁의 한 형태인 단식, 농성, 삭발, 집회를 진행했다. 정당에 가입하고 정치에 입문한지 겨우 1년 밖에 안 되었지만 내내 투쟁의 선봉대장으로, 급기야 태극기 휘날리며 의회를 점령하는 프랑스혁명 전사의 코스프레로 자신을 연출하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시대에 기득권 중에서도 최상의 기득권을 가진 공안검사가 그 시대를 어찌 살았는지는 온 국민이 알고 있다. 독재의 주구로 세상을 살아온 자가 우리사회를 독재시대로 규정하고 투쟁을 지휘하고 있다. 본류 장로교가 아닌 소수 침례교단에서 전도사를 역임한 황대표는 막말과 신성모독논란을 일으킨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와 손잡고 공당인 자한당을 태극기부대와의 일체화를 진행하고 있다. 점점 배타적이고 고립되어지는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다.

보수에서 극우로, 보수우익에서 극우꼴통으로, 계속된 우클릭으로 당내기반을 다지고 제1야당 기득권이라도 유지하려는 수구적 의도에 다름 아니다. 공천권을 쥔 당대표에게 바른 소리 하나 못하는 자한당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가엾기만 하다.

성탄절을 앞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14일, 서울공항에 도착해서 우리나라에서 여러 일정을 소화하고 8월 18일 오후에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그는 소형차를 타고 신도들을 위한 강론을 비롯해 세월호 희생자 가족, 일제 강제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갔다.

“장벽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며 폭력과 편견을 거부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일이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라는 메시지도 한국의 국민에게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바티칸에서 교황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남북의 평화를 위하고 분단 상황에서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해 북을 방문할 것을 약속했다.

2019성탄절을 맞이하여 사제들에게 “교리에 대한 경직적 태도에서 벗어나 시대변화에 순응하여야 한다. 전통은 정태적이지 않고 역동적인 것” 이라고 말하면서 가톨릭은 세상이 요구하는 교회개혁에 나서야 하며, “지속적이고 눈에 보이는 ‘변화’가 교회의 진정한 전통”이라고 설파했다. 또 “오늘날 횡행하는 경직적인 태도가 불평등의 악순환을 이루며 서로를 강화시키고 있다. 경직성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흥한다.”라고 강론했다.

신자가 아니라도 이러한 생각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지금의 세상을 보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갔으면 한다. 새해에는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길들이 열리고 비정규직, 농민을 비롯한 이 땅의 어려운 자들의 걸음이 가벼워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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