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윤소희 작가] 왜 글을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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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윤소희 작가] 왜 글을 쓰는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1.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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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윤소희 (작가‧ ‘동네산책’ 책방지기)

[목포시민신문]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쓴 에세이 <서점의 추억>을 재미있게 읽었다. 오웰이 헌책방에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책방을 드나들던 온갖 유형의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 독립책방 운영의 현실에 관해 가볍게 쓴 글이었다. 손님들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했다기보다 그저 빈번하게 눈에 보이는 몇몇 유형에 관한 가벼운 독설 정도였다.

맞아 맞아, 이런 사람 꼭 있어!’

처음부터 낄낄거리며 읽어 내려갔다. 오웰 특유의 냉소와 위트도 한몫 했지만, 1930년대 서점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내가 재미를 느끼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손님들 중에 작가들은 없었나?

직접 책을 낸 작가들도 제법 있었을 것 같은데 딱히 언급되지는 않았다. 내가 책방을 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는 작가들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책이 안 팔린다며 출판계는 해마다 울상이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각종 통계는 잊을 만하면 집계되고 있는 마당인데, 작가들은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왜 글을 쓰는가.

등단이니 추천이니 하는 문단 권력 시스템에 시원하게 반기라도 들듯 독립출판이 점점 세를 늘려가고 있는 모습도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누구라도 출판사 등록만 마치면 1인 출판사 대표가 될 수 있고, 출판사 없이도 각종 프로그램을 활용해 자신이 쓴 글을 편집 디자인하여 인쇄소에 맡기면 출간이 가능하다. 그렇게 출간한 책은 각종 sns, 펀딩, 플리마켓 등을 통해 소비되기도 한다.

오프라인 서점에 입고하는 길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수백 개의 독립책방들은 독립출판물을 입고하기 가장 좋은 파트너이다.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에는 좀처럼 입고하기 어려운 여건을 가진 책이라도 책방지기 단 한 사람의 검열(?)만 통과하면 얼마든지 책방 서가에 내 책을 꽂을 수 있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글을 쓰는 일부터 책을 만들어 서점에 입고하는 과정, 그 어느 한 가지도 결코 만만치 않다. 이 어려운 일을 해냈는데도 마지막 문턱인 서점에서 입고를 거절하면 그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서점에서 거절당한 소중한 책을 끌어안고 거리를 방황하는 작가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다. 왜 글을 쓰는가.

글이 써지지 않아 골방에서 머리 싸매고 방황하든지, 해마다 신춘문예에 낙선하여 방황하든지, 등단하고도 원고 청탁이 없어 작품을 싸들고 출판사를 전전하며 방황하든지, 독립출판물을 끌어안고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방황하든지, 이래저래 작가는 방황한다. 물론 이 모든 어려움을 별로 겪지 않고도 책을 내서 서점에 입고까지 시키는 경우들도 간혹 있지만, 결과는 뻔하다. 책에는 기운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온힘을 다해 글을 쓰고 거치는 책의 모든 과정에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선한 기운이 고스란히 서려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좋은 책은 반드시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어 있는 이유이다.

이 모든 어려운 과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글을 쓰겠다는 사람들 역시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겠어요. 타고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이른 시기에 그 욕구가 찾아들었습니다.”

소설가 제임스 설터의 이 말은, 글을 쓰고 싶지만 왜 쓰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나는 글쓰기 지도를 할 때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유에 대해 질문을 멈추지 말라고 강조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재능보다 질문이다. 왜 글을 쓰는가.

목포에는 작가들이 정말 많아요.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작가가 살아요.”

책방에 왔던 어느 손님이 한 말이다.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도 목포의 작가들이 쓴 책이 몇 권 들어와 있다. 운문이든 산문이든 이 책들은 대부분 목포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한 조지 오웰을 다시 언급하자면, ‘작가는 자기가 뜻하는 바를 더욱 명료하게 하기 위해 진실을 비틀고 풍자할 수는 있어도, 자기 마음의 풍경을 곡해할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했다면 그는 창의적인 작가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목포 작가들이 책을 쓰는 이유도 이러한 것일까. 그들 마음의 풍경에는 목포가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책마다 서린 목포의 기운이 전국으로 힘차게 뻗어나가기를 기대하며 2020년 새해를 맞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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