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베스트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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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베스트 북>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3.01.2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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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착취자들 - 너의 노동력을 공짜로 팔지 마라!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그림자 같은 존재, 인턴

『청춘 착취자들』은 런던 북부 이슬링턴의 한 비정부기구에서 점심값과 교통비 명목의 용돈을 약간 받으며 인턴 생활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가 불합리한 인턴십 현실에 관심을 갖고, <뉴욕타임스>,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저자 로스 펄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 기업, 대학, 비정부기구들이 ‘인턴십’(어원 프랑스 interne)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청춘의 노동력을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1장에서는 디즈니랜드의 세계 최대 규모 인턴십 프로그램에 대해 살펴보고, 그 다음 장에서는 인턴십 붐이 야기된 경위(산학협동), 인턴십 제도의 원조격인 수습 제도를 다룬다. 그 이후로는 인턴십과 경제(인턴 최저임금제, 인턴십 옥션), 인턴십의 세계화 추세(프랑스, 독일, 중국) 등 인턴십에 관한 현안들을 차례로 보여주고, 마지막 장에서는 인턴십의 미래와 개선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우리에게 인턴은 커피 심부름이나 자료 복사를 대신해주는 등 허드렛일을 대신해주는 이들로 인식되어 있다. 저자는 “이력서의 첫 줄”, “경험을 쌓는 아주 바람직한 방법”, “직업 세계로의 입문” 등 인턴십을 표현하는 흥미로운 표현들 속에 인턴의 애환이 가려져 있다고 본다. 저자는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자원봉사, 수습 제도와 인턴십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인턴’이라는 단어가 지닌 모호성에 착목한다. 그에 따르면 인턴십은 실질적 경험이라는 보상이 따르긴 하지만 보수가 없으므로 ‘베푸는 행위’이고, 노동력과 경험이 맞바꿔지므로 ‘물물교환 행위’이며, 미래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수하므로 ‘신용적립’이라는 비자본주의적 거래에서나 가능한 유형이다. 즉, 물질세계 중심인 현 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례인 것이다.

이 책은 인턴십이라는 한 가지 제도가 노동과 교육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꿰뚫고 있다. 오늘날 인턴은 화이트칼라의 세계로 통하는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인턴 동문회’까지 등장하여 짧은 기간에 형성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수익 사업을 벌이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상당수 고용주들은 임금과 관련해서는 불법 혹은 편법에 해당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인턴십 제도의 피고용인 거의 대부분이 무보수이거나 법정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한 보수를 받고 있다. 말이 좋아 자원봉사지 불법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작금의 인턴은 학생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그림자 같은 존재다. 다시 말해 법의 사각지대에 내동댕이쳐진 ‘법적 소외’ 신분 상태에 있다.

한편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 사회’라는 단어는 이제 사전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다고 말한다. 투자가치가 높은 인턴십 프로그램일수록 자리 경쟁이 치열하며, 출세의 보증수표가 되는 ‘명문’ 인턴십 프로그램은 돈과 명예를 보유한 극소수 특권 계층 자녀들의 차지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주요 공공기관의 인턴은 학연과 지연이 없으면 할 수 없을 정도다. 잘나가는 비정부기구에도 어깨에 힘깨나 쓰는 부모를 둔 자녀들이 인턴십에 참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저자가 제안한 ‘공정한 취업 기회’를 위한 모범적 인턴십 프로그램 운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턴 채용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인턴들에게 적절한 보수(인턴 최저임금제, 연수 임금)를 지급하며, 나아가 인턴십 프로그램(별도 프로젝트, 순환근무)을 통해 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자는 것이다.

요즘 청년실업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청년실업대책으로 연수 및 인턴사업이 예산 및 인력 등에 있어 정부의 중심사업이 되었지만 한계가 많다. 과거 5년 전과 비교해 보면 2006년 청년실업대책 사업 중 연수 및 인턴사업이 12개에서 2011년 22개로 거의 두 배가량 증가했지만, 고졸 대상 프로그램은 3개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고학력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하지만, 고등학생 대상 인턴십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지 못한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책결정자라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턴 과정을 겪지 못한 젊은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끝으로 이 책에서 언급된 프랑스 고용불안 저항운동단체(제네라시옹 프레케르)는 임시직, 파트타임, 인턴 등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아우르는 ‘연합전선’ 운동을 제안하는데 우리 사회단체활동가들이 주목할 만하다. 또한 유럽의 불안정 고용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제시되는 덴마크식 ‘유연안정성 모델’ 논의는 정책결정자들에게 중요한 생각의 단초가 될 듯하기에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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